‘인기 영합’ 버리고 시장 원리 따르라
  •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 및 부동산학과 교수) ()
  • 승인 2007.08.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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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정책, 잘 다듬으면 ‘보약’…법안 통과도 서둘러야

 
지난 몇 년 사이 묘한 ‘반값 유행’이 일고 있다. 반값 아파트, 반값 골프, 반값 등록금, 반값 통신요금 등이 그러하다. 어찌 보면 허황한 상술이거나 호객하는 광고 같기도 해 소비자들은 ‘반값’을 반기면서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합당한 이치와 방안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다듬으면 현실화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반값 아파트는 아파트 공급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땅을 정부가 가진 채 임대만 해주거나(토지임대부 분양) 되팔 때 정부가 우선 매입하는 조건으로 분양함으로써(환매조건부 분양) 시세의 절반으로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을 말한다. 이는 스웨덴·싱가포르·영국 등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택 공급 제도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건교부나 주택공사 등 정부 기관이 공식적으로 검토해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현재 확대 실시를 위한 입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반값 골프는 농민들이 농지를 출자하면 세제 혜택(예:농지전용부담금·특별소비세·법인세·취득세 등 경감) 및 규제 완화 이점을 이용해 골프장 사업자가 대중 골프장을 저렴하게 지어 반값으로 운영하면서 발생한 이익을 농민들에 돌려주는 방안을 일컫는다.
반값 등록금은 1~2조원 규모의 국가 장학 제도를 도입하고 세액 공제를 통해 대학 기부금 등을 마련해 10조원이 넘는 등록금 총액 가운데 약 8조원에 달하는 일반 가정 부담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을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기보다 가정의 대학 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으로서 제안된 것이다. 이 또한 입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값 통신요금은 통신 회사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유통 구조를 파괴하며 마케팅 비용을 줄여 인터넷 및 이동통신 이용료를 시중 가격의 반으로 낮추어 판매하는 통신 제품을 말한다. 신용불량자, 외국인 노동자, 통화량이 적은 노인층 등을 겨냥해 나왔지만, 최근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전체에 서비스되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가격 파괴 통신 제품인 셈이다.
이렇듯 반값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안으로 제안되어 있거나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누구나 솔깃해하는 것이다.
문제는 반값이 과연 가능할 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다. 실제 정치권이 내놓은 것 중에는 실행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선거철을 맞이해 대중적 인기에 영합해 내놓은 경우가 많다. 정치권이 반값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동시에 정파들 사이에 정쟁 사항이 되어 서로 흥정하거나 더 중요한 사안에 파묻혀 약속대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반값 관련 입법안들이 대부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연 때문이다.
반값 정책이 현실화되면 민생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분야의 기존 정책에 많은 지각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국민의 처지에서 볼 때 반값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의 강구가 시급하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면 다음과 같다.

사과 반쪽 팔면서 반값 받는 식이어선 곤란

 
첫째, 반값 정책은 기존의 가격 구조나 정책 구조에 견주어 파격적이고 국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살 수 있는 것이어서, 자칫 실체가 없는 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데 이를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반값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한 건 하기’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정치권에서 내건 반값 등록금은 4조원에 해당하는 교육 재정 확보 방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그리고 반값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반값 등록금’을 내걸고 청년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둘째, 반값이 사과 반쪽을 팔면서 반값으로 현혹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과 반쪽에 부여되는 값이 진정한 반값이 되려면 4분의 1 값이 되어야 하며 2분의 1 값은 값을 다 받는 것이다. 반값에는 파는 몫을 줄이는 경우도 있지만, 비용을 다른 데로 전가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반값 골프는 샤워실·카트 같은 부대 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 공급되는 값일 뿐 아니라, 농지를 골프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각종 환경 비용을 숨기거나 전가한 채 공급되는 값이기도 하다. 숨겨지고 전가된 비용은 언젠가 소비자가 다시 치러야 할 것이어서, 사실 값을 다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반값이 되려면, 현재의 값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온전히 유지되는 상태로 값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
셋째, 반값 정책은 현재의 재화와 용역 공급 구조를 혁파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의 현실화를 위한 제도화에 실질적인 힘이 실려야 하지만, 선행적으로 사회적 명분과 합의가 분명해야 한다. 가령 반값 아파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분양 주택 공급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추진하면 구매자들의 관심을 못 끌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 투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지지도 이끌어낼 수 없다. 주택을 복지재로 다루는 주책 정책의 패러다임을 분명히 설정하고,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은 공공 보유 주택을 전체 주택 재고의 20~40% 수준으로 높이는 주거복지 중심의 주택 정책을 펴는 틀 속에서, 이를 실행하는 한 수단으로 반값 아파트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반값 등록금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을 교육복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를 공급할 국가 책무가 어느 것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적 명분과 합의가 뚜렷하다면 심지어 국방비마저 줄여서라도 교육 재정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반값은 민간 부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으므로, 이를 국가 정책과 시장 경쟁을 통해 유인하는 방안이 다양하게 강구되어야 한다. 반값 통신요금은 통신 회사들의 경영 합리화나 공급 기술 및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해당 기업들이 스스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를 현실화할 수 있다. 한편 거대 통신 회사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가 어렵다면, 정부가 정책으로 개입해 보완하면 반값 통신요금은 더욱 쉽게 현실화된다.
다섯째, 공공 부문이든 민간 부문이든 반값을 제시했다면 이를 끝까지 지켜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자기 책임성을 다해야 한다. 반값은 파격적인 것이어서 소비자들이 의구심을 갖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급자들이 반값 현실화의 가능성과 방안을 처음부터 제대로 고민하고, 또한 약속한 대로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에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유행하고 있는데, 반값을 현실화하고 이를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정쟁 등의 이유로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반값 관련 법안은 국민과의 약속, 민생이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도록 해야 한다. 법이 마련되면 반값을 현실화할 수 있는 변수들의 통제가 용이해져, 그렇지 않을 때보다 반값의 현실화가 더욱 쉬워진다. 물론 이러한 입법화 과정에서는 그간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거나 합의되지 못했던 부분을 최대한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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