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밥상’ 차리기 팔 걷은 기업들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08.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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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간 섬유, 신발, 건설과 전자, 자동차, 반도체, 중공업, 화학 등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쟁이 치열한 지구촌에서 ‘미래 먹을거리’를 찾지 않고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령화 급진전, 세계 최저 출산율, 자원 부족 등으로 우리 경제는 또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다. 게다가 무섭게 달려오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등 주변국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샌드위치 위기’도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당장 먹고 살 것보다 10~20년 뒤를 내다보는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IT(정보 기술), BT(생명 공학 기술), ST(우주 항공 기술), NT(나노 기술) 등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곳은 기업이다. 주요 그룹들이 미래 먹을거리 찾기와 전략을 세우는 것도 그런 흐름에서이다. 새 업종을 찾고 기업 색깔을 바꾸면서 자신 있는 분야를 더 키워가는 추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체질 개선 비상
성장 동력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는 2년 전 8대 성장 동력 사업을 정했다.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등이 그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처럼 세계 1등을 하는 부문은 사업 역량을 더 키운다는 전략이다. 또 에어컨 공조 시스템을 포함한 4개 사업군도 2015년까지 세계 으뜸이 되게 한다는 것이 사업안의 뼈대이다.
하지만 요즘 삼성전자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보통신 총괄 부문에 이어 그룹 핵심인 반도체 분야까지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전략기획실 경영진단팀이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부문 경영 진단에 들어갔다”라고 밝혔다. 반도체 총괄에 대한 그룹 차원의 전면적인 진단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일본 업체들의 반격에 맞서 시장 리더십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도 찾고 있다. 또 올 초 삼성SDI에 대한 경영 진단을 통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 발광 다이오드와 PDP 분야 연구·개발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그룹도 성장 사업을 밀고가고 있다. 프리미엄급 제품 라인 체계 확보, 튼실한 생산·판매망 구축, 미래형 기술 개발 등 글로벌 기업으로서 내실 다지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9년까지 8종의 신차를 선보인다. 기아차도 그 기간까지 준대형 VG, 준중형 TD 등 4개 차종을 내놓는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2000㏄급 CUV 컨셉트카 ‘소울’의 양산 모델 AM도 내년 중 나온다.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는 제동·에어백·조향 부문 기술 개발에 힘쓴다. 에어백은 연산 2백20만대 규모를 2009년까지 3백25만대로, 조향 장치 대표 부품인 스티어링 칼럼은 45만대에서 2008년까지 100만대로 늘린다.
현대는 특히 하이브리드카를 ‘생존 과제’로 삼고 있다. 차세대 차인 하이브리드카 개발은 성장 동력을 따지지 않더라도 시급한 과제이다.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들이 세계 시장의 94%를 차지하고 미국·유럽 대형 업체들도 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화석 연료(휘발유·LPG)와 전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전기차’, 대체 연료(수소)와 전기를 같이 쓰는 ‘연료 전지 차’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동통신 등 내수 기업의 대표 주자였던 SK그룹도 성장 사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생명 과학(LS) 분야를 미래의 먹을거리로 선정했다. 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지주 회사 안에 LS사업부를 두어 그룹 성장 교두보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라고 말했다. 최근 닻을 올린 사업부는 100여 명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신약 연구개발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중추 신경계·대사성 질환·항암·우울증·치료제 신약 물질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SK(주)의 신약 개발은 상당히 진전되어 있다. 정신분열증 치료제를 개발해 임상 1상 시험을 끝냈고 불안증 치료제도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SK그룹은 에너지와 이동통신 사업을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을 꾀해왔다. 하지만 지주회사 안착 등 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다. 그래서 SK텔레콤은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성장 사업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 이동통신사인 스프린트와의 인수·합병설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측은 부인하지만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LG그룹은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이다. 태양열·지열 등이 미래 아이템이 될 것으로 보고 계열사별로 전략을 짜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국내 처음으로 지열 히트 펌프 기술을 이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냉난방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수냉·공랭식 냉·난방 시스템에 지열 히트 펌프 기술을 접목한 것. 땅 속 온도가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일정한 점을 이용해 여름에는 실외보다 낮은 온도의 공기가, 겨울에는 바깥보다 따뜻한 공기가 실내로 흘러들게 만든 장치이다. 땅 속 에너지를 이용하므로 에너지 소비가 30~50% 준다. LG화학은 차세대 에너지원인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건축 외장재와 결합시키는 새 사업에 뛰어든다.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건물 외관에 태양광 발전 모듈을 붙여 전기를 생산해 쓸 수 있게 해준다. LG CNS도 IT분야 시스템 통합 기술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 산업 단지 조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신재생 에너지 사업 분야 사업 개발부터 구축까지 업무를 총괄하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이 회사는 올 4월 경북 문경시에 아시아 최대인 2.2㎽(시간당 전력 생산량) 태양광 발전소를 지었다. 이어 △영주시 태양광 발전소 △신안군 태양광 발전 산업 단지 △태안군 친환경 종합에너지 단지 △장성군 태양광 발전소 건립 사업도 추진 중이다.
GS칼텍스, 중질유 분해로 ‘지상 유전’ 꿈꿔
보수성이 강한 롯데그룹도 미래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변신과 포석에 열심이다. 현대석유화학·KP케미칼 인수에 이어 홈쇼핑·여행 업계에도 뛰어들었다. 성장의 한 기둥인 외식업이 시들해지고 매출액이 제자리걸음(30조원대)을 걷는 등 성장이 한계에 부딪쳐서이다.
LG그룹에서 분리된 GS그룹 역시 성장 사업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 선두에 나서 있다. 이런 노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를 통해 불이 붙었다. 이 회사는 중질유 분해 설비를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값싼 벙커C유를 원료로 값비싼 휘발유·등유·경유를 만들 수 있는 중질유 분해 설비에 무게 중심이 주어져 있다. ‘지상 유전’으로 불릴 만큼 높은 수익성을 내는 미래 성장원이다. GS칼텍스는 여수 공장에 제2 중질유 공사를 벌이면서 제3 중질유 분해 시설까지 짓는다. 또 해외 유전 개발 사업에도 나서 하루 정제 능력인 72만2천5백 배럴의 10~15%를 자체 조달한다. 지난해 서울 성내동에 ‘GS칼텍스 신에너지 연구센터’를 연 것도 성장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가정용 연료 전지, 수소 스테이션 등 신재생 에너지를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키운다는 것이 GS칼텍스의 복안이다.
GS리테일은 인수·합병과 신사업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만들 예정이다. 또 GS홈쇼핑은 와이브로 홈쇼핑이나 가정용 인터넷 전화를 활용한 홈쇼핑 등 뉴미디어를 활용해 새 쇼핑 서비스를 선보인다. 케이블 TV 가입자가 늘면서 고성장을 누렸던 ‘홈쇼핑 신화’를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 개막과 함께 재현해 보겠다는 것. 이를 위해 업계 최고 미디어 사업자들과 손잡고 있다. 중국 현지 법인(충칭GS쇼핑)을 앞세워 해외 시장도 파고들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성장 사업은 레저 분야. 수도권에 골프장을 더 만들고 충무 마리나 리조트 부근에 5성급 호텔을 짓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기 남부 약 1백60만㎡에 18~27홀 골프장을 포함한 종합 리조트 단지를 세운다. 또 물놀이 시설인 충남 아산스파비스에 2010년까지 2백~3백 실의 콘도미니엄을 짓는 등 ‘레저 왕국’ 건립도 본격화한다. 이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리조트 단지 개발도 강화한다. 대우건설의 하노이호텔, 베이징 구이린호텔 등을 아시아나레저에 넣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성장 사업 효율화를 위한 기업들의 발 빠른 변신도 눈길을 끈다. 창립 1백11년째를 맞은 ‘국내 1호 기업’ 두산 그룹이 한 사례이다. ‘전통’ ‘역사’ 등의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고 그룹 모태인 식음료 사업을 과감히 팔고 중공업·건설 등 ‘중후 장대’한 회사들을 사들였다. 국내 기업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신’으로 두산을 꼽는 데 토를 다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두산은 올해 ‘글로벌 두산’ 달성을 위해 창사 이래 최대인 1조5천억원을 투자한다. 계열사들의 사업도 글로벌 경쟁력에 중점을 둔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세운 두산밥콕과의 공조로 2030년까지 7천5백억 달러 규모의 미국·유럽·중국 발전 설비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제일모직은 패션 회사에서 첨단 소재 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회사의 케미컬 사업은 모니터용 ABS, 냉장고용 압출 ABS 수지 시장에서 세계 1위이다. 휴대전화 외장재로 쓰이는 컴파운드도 국내 1위, 세계 2위 점유율을 보여 성장 사업으로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다.
 
포스코, 획기적인 파이넥스 공법 개발
포스코는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었던 철강에서 혁신적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해 미래 성장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세계 철강사에 획을 그은 이 공법은 가루 형태의 석탄과 철광석을 써서 쇳물을 만드는 것. 원가 절감, 친환경 공법으로 미래 먹을거리 확보에 보탬이 된다. 마그네슘 사업도 미래 성장을 이끌 사업으로 주목되고 있다. 생산성이 낮고 제조비가 많이 들던 마그네슘 생산 공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용융 마그네슘을 압연하는 ‘스트립 캐스팅’ 기술을 개발했다. 포스코는 또 대체 에너지인 연료 전지 사업도 펼치고 있다. 포스코는 원천 기술 확보와 동시에 선도 기업인 미국 FCE로부터 생산 기술 도입을 추진 중이다.
CJ그룹, 대상그룹, 삼양사그룹, 애경그룹도 마찬가지이다. 식품·유통 비중이 높은 CJ그룹은 바이오 사업, 부가 가치 의약품 생산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에 대규모로 투자해 2013년까지 아미노산 사료 첨가제 분야의 최고 기업에 도전한다. 대상그룹 또한 대상(주)의 배양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클로렐라 사업을 키우는 중이다.
클로렐라는 뼈 엉성증(골다공증) 예방, 중금속 배출, 장 기능 개선에 효능 있는 건강 기능 식품. 국내 시장의 80%, 세계 최대 클로렐라 소비국인 일본 시장의 40%를 대상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삼양사그룹은 식품 및 화학 제품을 만들면서 확보한 고분자 화학 기술을 바탕으로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다. 특히 대덕연구단지 의약연구소를 중심으로 항암제를 만들고 있다. 애경그룹은 피부 생리 활성 물질인 ‘세라마이드’ 합성 기술을 응용해 아토피 치료제를 개발한 데 이어 바이오 기술을 이용한 오염 토양 복원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동부제강, 동부건설 등 주력 회사 중심으로 뛰고 있다. 2010년 매출 6조원 달성이라는 ‘2010 비전’을 내놓았다. 화학, 식품, 의약을 핵심으로 꼽았다. 
KT도 성장 사업 추진에서 예외가 아니다. 로봇 사업이 그것이다. KT는 한국과학기술원과 감성형 로봇 공동 연구와 기술·인력 교류를 위한 양해 각서를 주고받았다. 산학 합동 연구실 ‘KT 로봇연구소(Robot Lab)@KAIST’를 운영하면서 인간 친화형 로봇 기술을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로봇 사업에 뛰어든 KT는 내년부터 도우미 로봇 보급·임대 사업에도 나선다.
이밖에 한진그룹, 한화그룹, 동양그룹 등도 정부가 정한 10대 미래 먹을거리 사업과 관련된 성장 동력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들 그룹들은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국제 흐름에도 대응하면서 우주 산업, 첨단 화학제품 등 차세대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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