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대출’ 부메랑 맞은 미국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8.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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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후유증, 내년까지 이어질 듯…융자 시장 선점 경쟁이 원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북쪽 외곽의 신흥개발도시 산타 클라리타 시에 이민 10년 만인 지난 2005년 힘겹게 집 한 채를 장만한 박지선씨(45, 가명)는 걱정이 많다.
 중학생 딸 하나 등 식구가 셋인 박씨는 2천4백스퀘어피트(실평수 약 240㎡) 크기의 2층 단독주택을 구입하면서 은행 융자를 얻어 주택 구입 잔금을 치렀다. 집을 담보로 한 이 융자는 전액 융자 대신 높은 이자율과 변동이자율을 적용한다. 이번 월스트리트 신용 경색의 진원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실제 사례이다.
 가족이 모두 이웃 오리건 주로 이주할 계획인 박씨는 월스트리트 서브프라임 파동 이후 요즘 밤잠을 설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다른 주에서 다른 집을 구입할 경우 물게 될, 융자금에 대한 월 이자 납부 부담 때문이다.
 박씨는 현재 살고 있는 집 구입 융자액 54만 달러에 대해 30년 변동이자율 7.5%를 적용한 은행 납부금으로 매달 거의 3천8백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건 주에서 48만 달러짜리 집을 살 경우 월 납부금이 5천4백달러에 이르게 된다. 서브프라임 파동 이후 융자 은행들이 요구하는 이자율이 13%선 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이다.
 박씨와 왕래하는 같은 타운의 서경민씨(52)는 다른 걱정에 싸여 있다. 뮤추얼 펀드에 여유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서씨는 최근 월스트리트 주가 파동이 몰아닥치자 자신의 브로커 카스트로 씨에게 문의 전화를 했다가 아연했다. 브로커가 여름 휴가 중이라는 안내 메시지만 받았기 때문이다. 투자컨설팅을 겸하고 있는 브로커 카스트로 씨는 다우존스 지수가 내리막길로 들어서면서 투자자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빗발치자 자리를 피한 것이다.
지난 7월 중·하순부터 시작한 월스트리트의 주가 소용돌이가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의 개입으로 지난 8월10일을 고비로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다우존스 지수는 계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낙관을 불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지난 8월10일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이 4백3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증시에 개입하면서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해 13일에는 다우 지수가 주말 장 대비 3.01 떨어진 1만3천2백36.53을 기록해 확연하게 안정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지수 1만4천에 도전하던 증시가 며칠 사이 곤두박질한 다음 찾은 안정이다.
그러나 이번 파동의 주범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여진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파동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한 미국 내 소비 위축이 예상되면서 지난 8월14일 다우 지수는 다시 2백7.61이 떨어져 1천3백28.92로 마감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인용해 서브프라임 여파가 내년 여름까지 미국 경제에 불황을 몰고올 가능성이 26%에 달한다고 전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도 서브프라임 파동이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융자 위험 부담을 통상보다 높은 변동이자율 적용으로 대응한 일종의 투기성 융자 제도이다. 주택이나 자동차 신규 구입시에 주로 이용된다. 서브프라임은 까다로운 융자 조건을 붙여 고객이 자칫하면 차압 조건에 걸려 담보물을 융자 은행에 인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짜여져 있다. 이른바 합법적 고리대금업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 내 전체 주택 융자의 17%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 융자 상환 연체가 늘거나 상환 불능 상태가 되면 곧바로 융자 회사 자금이 고갈 상태에 몰리고 증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파동은 이자율 상승에 따른 악순환의 결과이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FRB가 부동산 거품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연방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했다. 주택가 등 부동산 시장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변동이자율을 적용받는 다수의 서브프라임 융자자 중에는 월 납부금 부담이 상승해 상환금과 이자 연체가 늘어나거나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는 건수가 급증했다. 신문 광고에 나온 주택 차압 물건이 전에 없이 늘어났다.
 
중·소 규모 융자 회사들 파산 신청
로스앤젤레스 지역 부동산 시장은 지난 22개월 동안 연달아 하락 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며 부동산 업자들이 거래 중개 건수 감소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서 전업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내 중·소 규모 융자 회사들도 자금 순환이 막히고 대출 자금이 바닥나면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적자가 불어나 파산 신청을 하거나 문을 닫았다. 월스트리트의 서브프라임 융자 회사 베어 스턴스가 폐업하고 아메리칸 홈 모기지 투자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는 등 몇 달 사이 융자 회사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초대형 헤지펀드 회사 골드만삭스가 자금 고갈로 인해 30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자금 융통에 나섰다. 골드만삭스는 증시에서 주가 총액 대비 28%의 손실을 보았다. 미국 최대 융자 회사인 컨트리와이드 역시 17%의 손실을 보았다.
미국 서브프라임 시장에 투자한 프랑스의 BNP파리바나 독일의 IKB, 네델란드의 NIBC 등이 영향을 받으면서 유럽 금융 시장이 흔들리고 그 여파가 아시아에까지 미쳐 한국과 일본 증시가 휘청거렸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컨트리와이드와 골드만삭스, 워싱턴뮤추얼 등 굴지의 융자 회사들이 융자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서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치중한 나머지 이번에 큰 대가를 치렀다고 보도했다.
컨트리와이드는 주택 융자 총액 1조4천억 달러를 기록해 미국 전체 주택융자의 14%를 기록하고 미국 내 전체 주택 융자 건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융자 회사이다. 컨트리와이드는 미국 주택융자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융자 조건을 완화하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도 융자를 제공해 시장 규모를 넓혔다.
컨트리와이드는 지난해 시장 점유율 15.5%에서 올해 17.4%로 급성장했다. 거래 규모가 늘어나면서 필요 융자 전문 인력을 대거 신규 채용함으로써 몸통도 불렸다. 컨트리와이드는 지난 전반기에만 약세에 있는 다른 융자 회사들로 부터 2천여 명의 인력을 스카우트해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직원 수가 3만3천7백96명에 이르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처럼 무모하기까지 한 시장 장악 노력이 미국 융자 시장에 만연하면서 부실 융자를 조장하고 결국 서브프라임 파동의 진원지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컨트리와이드측은 그러나 이번 파동으로 인해 기본 체력이 부족한 경쟁 융자 회사들이 무너지면 자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올 것으로 판단하고 기존 영업 정책을 고수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샘볼 컨트리와이드 사장은 “이번 융자 시장 재편에서는 우리가 최대 승자가 될 것이다. 현재 시장 감각도 좋다”라고 말했다. 이번 파동을 잘 넘기면 시장에서도 이긴다는 판단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파동이 미국 경제와 국제 경제에 어떤 파급을 미칠 것이냐를 놓고 낙관적 시각과 비관적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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