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점술가·작가…대권 문전에 장사진
  • 김회권 기자 ()
  • 승인 2007.08.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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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 예비후보 등록자 이미 100명 넘어

 
대통령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대선 예비후보 등록자의 수는 8월22일을 기준으로 1백1명”이라고 밝혔다. 유시민 의원이 100번째 후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유재건 의원이 그 뒤를 따랐다. 4월23일부터 시작한 예비후보 등록의 마감일은 11월24일이다. 범여권의 경선이 남아 있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 후보자들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급증한 이유는 올해 처음 시행한 예비후보 등록제 때문이다. 2004년 3월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정치 신인과 군소 후보들의 피선거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40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기탁금 없이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예비후보로  등록되면 본인과 배우자에 한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현수막과 간판을 한 개씩 설치한 선거 사무소도 열 수 있게 된다. 10명 이내의 상근 선거운동원도 허용되고 e메일을 이용한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후보자 명단에는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등 익숙한 이름의 유력 정치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 목사, 농부, 무직자 등 다양한 직업의 생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에서 초등학교 중퇴까지 학력도 다양하다. 연령대도 40대부터 80대까지를 아우른다. ‘이름을 알리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아니냐’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할 뿐, 출마 선언을 위해 보도 자료를 돌리고 공약집을 만들며 진지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후보도 많다.
황당한 내용의 출마 동기·공약 줄이어
예비후보자 백승원씨(58)는 정당 생활만 20년째 했다. “조직과 돈으로 움직이는 정치인이 당선되고 신진들의 물갈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선진 대한민국이 되겠냐”라고 출마의 이유를 밝히며 “제도와 헌법을 정비해서 정치가 깨끗해져야 하는데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인”이라고 주장했다.
최영준씨(41)는 전 개혁당 출신의 정치인이다. “좌우 대립을 넘어 대동 단결해 동서와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출마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젊고 역동적인 대통령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가칭 ‘새민당’의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반평생을 경찰로 살다 정년 퇴직한 송영원씨(66). 그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국가가 잘못 돌아가는 이유는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후보 기간 중 전국을 돌며 준법 계몽 캠페인을 하기 위해 예비후보 등록을 했는데 돈과 조직이 없다는 한계에 부딪혀 힘들다”라며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을 문화컨텐츠 경영학 박사라고 밝힌 이진석씨(54)는 “문화 경영을 할 수 있는 문화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이며 미래 문화 컨텐츠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도 볼 수 있다. 김사백씨(55)는 미국 중앙정보국 극동 요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학원 조교 때 미국인 교수의 소개로 CIA 요원이 되었다는 그는, 가난한 이웃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된다면 부의 창출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이나경씨(41)도 눈에 띈다. 대통령 후보 자격 나이인 40세를 막 넘긴 최연소 여성 후보이다. 한때 사진작가였지만 지금은 논픽션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그녀는 낙태, 테러 등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막는 데 관심이 많다. 요즘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결책을 묻자 “부시에게 데려다 주면 된다”라며 더 이상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직업란에 ‘점쟁이’라고 쓴 후보도 있다. 서해성씨(43)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사회 전반에 걸쳐 서민들의 고통을 조사했는데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역에서는 공무원들이 마치 대통령처럼 행세한다며 서민을 돌보지 않는 공무원들을 비판하면서 “서민들을 위해서 대선을 끝까지 치러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약도 생활 밀착형이다. 어음 폐지와 2차 하청 금지, 중간 유통업 금지를 통한 농산물 직거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식후보 등록 때에는 추천서·5억원 있어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출마의 동기나 공약이 황당한 후보도 없지 않다. 박순철씨(56)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출마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까지 남북을 통일하고 전지구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종결시키라는 말씀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그 계시를 담은 책을 출판하려고 준비 중이다. 책을 팔아 얻는 수익으로 정식 후보 등록에 드는 기탁금(5억원)을 조달할 작정이라고 한다.
정연중씨(64)도 하늘의 계시를 듣고 대선에 출마했다고 밝힌 경우이다. “십수 년 전, 꿈으로 계시를 받고 제왕학을 익히기 위해 3천권의 책을 독파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공약은 유럽연합(EU)과 같은 AU, 즉 아시아 공동체를 결성해 한국을 중심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목사인 장기만씨(54)의 공약도 특이하다. 택시 5만 대, 선교사 10만명을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 “택시 조수석에 선교사를 태워 손님과 대화를 나누며 전반적인 사회 문제를 국민에게 알리겠다”라고 한다. 교통 문화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화를 바꾸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정당과 돈 없이 출마한 보통 사람들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다. 11월 25일과 26일에 있을 본 선거 후보자 등록 기간에는 추천서와 5억원의 기탁금이 필요하다. 100여 명의 후보 중 최후의 포스터에 이름을 올릴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참고로 역대 대선 중 가장 많은 정식 출마자를 낸 때는 13대, 14대 대선으로 8명의 후보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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