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장사, 나날이 ‘쾌청’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8.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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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상 사업, 성장 지속…13개 업체 성업, 올 매출액 2백억원 넘어설 듯

 

컨테이너 화물선을 비롯해 대형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에서 2시간15분 전에 기상 정보를 얻어내면 적어도 1천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내려진 다음 실제 비가 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 즉 강수 대비 시간은 평균 2시간15분. 이 시간이면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우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만일 도정 작업 중 비가 내리면 개봉된 페인트 등 재료가 훼손되고 재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1천만원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된다.
기온이 25~30℃일 때는 유지방이 많은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고, 30℃가 넘으면 얼음과 빙과류가 잘 팔린다. 불과 1℃ 차에 따라 품목별 매출 차이가 엄청나게 커진다. 연일 30℃가 넘는 요즘 상인들은 아이스크림보다 빙과류를 매장 전면에 배치해 매출을 40% 이상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유통 업계에서는 ‘경기 3할, 날씨 7할’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11분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이륙 후 3분, 착륙 후 8분은 항공기 사고의 70~80%가 발생한다는 마의 시간대이다. 비행기 이착륙 때 일어나는 사고 원인의 70%는 날씨라고 알려져 있다. 비행기 여행을 하기 전에 기상 예보를 알아보는 것은 생활의 지혜이다.
‘날씨 경영’이니 ‘날씨 마케팅’이니 하며 날씨를 강조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났다. 날씨가 경영 전략에 주요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비 예보에 민감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기온에 민감한 기업이 있다. 기업들은 이제 자사의 형편에 맞는 날씨 정보를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에 필요한 맞춤형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 기상 업체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계속된 게릴라성 호우로 콘도·리조트 등 레저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 원주 한솔오크밸리 리조트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8월 들어 16일까지 무려 12번이나 비가 내렸지만 같은 기간에 비가 네

 
번밖에 오지 않았던 지난해에 비해 바비큐 파티장 같은 야외 영업장의 매출액이 오히려 5천만원 정도 증가했다. 민간 기상 업체로부터 하루 세 차례 날씨 정보를 받아 영업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정일 팀장은 “기상청은 특정일에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정도만 알려주지만 민간 기상 업체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비가 올 것인가를 알려준다. 비가 그치는 시간을 감안해 야외 영업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로 인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민간 기상 업체로부터 날씨 정보를 받는 회사는 삼성중공업·현대산업개발·STX조선·삼성전자·LG전자·GS25 등 8백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기상 업체 케이웨더의 박흥록 정보사업팀장은 “현재 6백여 개 업체에 맞춤형 날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날씨 정보를 요청하는 기업이 매년 20~30% 정도 증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업종·지역·날짜별로 ‘맞춤형 정보’제공
민간 기상 업체들이 기업에 날씨 정보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는 적게는 매월 10만원에서 많게는 6백만원 정도이다. 그렇다면 민간 정보와 기상청의 정보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기상청의 날씨 정보를 ‘쌀’이라고 하고 민간 기상 업체의 정보는 그 쌀로 빚은 ‘떡’이나 ‘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기상청의 자료를 1차 정보로 받아 민간업체들은 그것을 가공하고 정제해 2차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 지역의 날씨를 기상청으로부터 받아 용인 지역의 몇몇 골프장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의 세세한 정보를 보낼 수 있다. 이른바 ‘핀포인트 날씨 정보’이다.
단순한 날씨 정보가 아니라 업종과 기업의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도 한다. 이 작업에는 업종·지역·날짜별로 분류한 과거 기상 데이터베이스까지 동원한다. 대우건설은 각 건설 현장별 날씨 정보를 활용해 연간 30억원의 비용을 절감한다.
지난 8월22일부터 24일까지 ‘리벳 작업 유보, 용접 작업 가능’이라는 정보가 이 회사 기상 정보 서비스 사이트에 떴다. 이 기간에 풍속·강우·온도 등 날씨 정보를 분석한 결과 리벳 작업을 하기는 부적합하고 용접 작업을 하기에는 적당하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경기도 고양시와 김포시를 잇는 일산대교 건설 현장 관계자들은 이 정보를 작업 공정에 반영했다. 이 회사의 경우처럼 날씨 정보를 활용해 국내 산업계가 누리는 경제적 이용 가치는 연간 6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건설업은 5조4천억원, 제조업은 6천억원, 농업은 4천억원 등의 경제적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과 민간 기상 업체의 날씨 예보 정확도는 87% 정도로 비슷하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87~90%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기상청이 전국의 날씨를 예보하는 데 비해 민간 기상 업체는 더 세분화된 지역의 날씨를 예보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기상청은 하루 네 차례(오전 5시와 11시, 오후 5시와 11시) 날씨 정보를 업데이트하지만 민간 기상 업체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기상청은 불특정 다수에게 날씨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반면, 민간 기상 업체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유료로 정보를 제공한다. 유료인 만큼 기상청의 자료와 자체 수집한 기상 정보, 외국에서 수집한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정확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기상청은 우수한 기상 장비를 보유하는 데 반해 민간 기상 업체들은 기상청 못지않은 인력과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날씨 예보나 정보 전달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민간 기상 업체들의 정보 전달력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도로 기상 정보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상습적인 결빙 구간이나 안개 지역의 도로에 노면 센서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결빙이나 안개 상태를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과 휴대전화로 알려준다. 결빙 구간이나 안개 지역 도로를 우회할 수 있는 도로를 안내해줌으로써 교통 사고율을 낮추는 효과도 낼 수 있다.
날씨 정보가 아무리 좋아도 수요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민간 기상 업체들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로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각 정부 기관의 재해대책반과 공공 기관 직원들은 물론 방송사의 기상캐스터 30여 명 등 총 10만명이 휴대전화로 민간 기상 업체가 제공하는 기상 특보 등 날씨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지난 1997년 싹 튼 민간 기상 산업은 최근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5년 1백45억원이던 시장 규모가 2006년 1백9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에는 2백2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현재 13개 업체가 영업 중이다.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오완탁 본부장은 “민간 기상 시장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됨에 따라  급성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날씨 영향 받는 업종, 전체의 80% 넘어설 것”
미국은 지난 1940년대부터 민간 기상 산업을 발전시켜 현재 약 1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이 산업을 육성시킨 일본도 약 5천억원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5백여 개 민간 기상 업체에 약 4천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50여 개 업체에 약 1천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기상청 양일규 기상경영전략팀장은 “선진국의 거의 모든 기업들은 경영 전략에 날씨 정보를 활용한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민간 기상 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도이다. 기상청이 민간 기상 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만큼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2005년 삼성지구환경연구소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날씨의 영향을 받는 업종이 전체 산업의 52%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는 80%를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경우는 이미 2005년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업종이 전체 산업의 80%를 넘어섰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도 거의 모든 업종이 날씨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향후 민간 기상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날씨 〓 돈’이라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오완탁본부장은 “날씨 정보를 돈을 주고 산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특히 CEO들에게는 날씨를 경영에 접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리 투자하면 날씨로 인한 피해를 줄여 몇 배 이익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자체 예보 시스템 개발 등 기술력 확보가 시급하다. 국내 민간 기상 시장이 어느 정도 커지면 미국과 일본의 업체들이 속속 들어와 우리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독자 예보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W365닷컴의 이완호 대표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 대한 섬세한 날씨 정보도 중요하다. 그보다 기상청 등 외부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예보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다. 전국 대학에 개설된 기상 관련 학과는 겨우 7개. 연세대 대기과학과 안순일 교수는 “관련 학과도 늘리고 일본처럼 자격증 제도도 도입해 기상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도적인 뒷받침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 수석연구원은 “날씨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날씨를 이익으로 연결하는 기업 경영이 필요하다. 또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기상산업진흥법이 통과되어야 민간 기상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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