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의 초침은 여전히 돌고 있다
  • 정우택 (언론인·전 헤럴드경제 국장) ()
  • 승인 2007.08.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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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국내 증시·부동산 시장 전망 / ‘엔 캐리’ 자금도 변수

 

브프라임(비우량 부동산 담보 대출) 모기지 부실 확산→미국 주가 폭락→유럽·아시아·한국 주가 대폭락→미국 재할인 금리 0.5% 포인트 인하→미국 주가 폭등→한국 등 세계 주가 폭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소용돌이친 금융 시장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하나도 우리나라가 역할을 한 것은 없다. 미국이 문제를 일으켰고, 미국에서 기준금리를 내려 금융 시장을 가라앉혔다. 우리는 주가 폭락과 폭등 같은 널뛰기 쇼만 연출했을 뿐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일본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국의 달러 무기화 등 3각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가 걱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이 한반도에 상륙한 지난 8월16일(목요일). 코스피지수가 121.91포인트, 코스닥 지수가 77.85포인트 폭락해 주식 시장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나흘 뒤인 20일(월요일)에는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93.20포인트, 48.11포인트 올라 반대로 천당이었다. 우리 금융 시장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정상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돈 장사이다. 정상 대출 때보다 이자를 3~5% 더 받는 대신 따르는 위험도 크다. 결과는 쪽박 아니면 대박이다. 대박을 좇아 각국 은행과 보험, 펀드, 기금, 심지어는 투기 자본인 헤지펀드까지 뭉칫돈을 투자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30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고 하니 다른 금융 기관의 손해를 짐작할 만하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6월에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올 3월 피플초이스가 파산 신청을 했고, 2위 업체인 뉴센트리 파이낸셜이 대출을 중단했다. 7월에는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회사에 32억 달러를 지원했다. S&P와 피치가 서브프라임 채권 신용 등급을 낮추었다.
8월에는 돈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아메리칸홈 모기지가 파산 신청을 했고 모기지 1위 업체인 컨트리와이드에 긴급 자금이 수혈되었다.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해 헤지펀드에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소동을 벌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한마디로 ‘굴러다니는 폭탄’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지난해 4분기 연체율이 13.33%에 달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무너져 1백50만명의 미국인들이 집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해결될 가능성은 ‘10% 미만’이라고 걱정했다. 수전 비에스 FRB 이사는 지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의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는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존재하는 한
 
사고는 또 터진다고 보아야 한다. ‘서브프라임 부실 확산→미국 주가 폭락→유럽·아시아·한국 등 주가 대폭락→세계 금융 시장 요동과 같은 악순환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급한 불을 끈 곳은 국내 증시이다. 금리 인하로 추락하는 주가를 붙들어맸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은 지난 8월20일 개장 초부터 폭발해 사상 최대의 상승 폭을 보였다. 코스피 지수가 전날보다 5.69% 오른 1731.27로 마감했다. 상승폭은 93.20 포인트. 코스닥은 전날보다 7.14% 올라 721.59포인트에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주식 시장을 살얼음판에 비유한다. 따라서 무리한 투자보다 우산을 들고 갑자기 쏟아질 소나기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등락이 심한 주식보다 변동이 적은 주식, 우량 주식에 조심성 있게 투자하는 것은 난세를 이기는 지혜라는 것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조언이다.
문제는 개미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겁이 없다. 지난 8월17일 외국인이 8천7백60억원어치 주식을 팔았지만 개미 투자자들은 4천4백6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8월20일에도 외국인들은 주식을 팔았지만 개미들은 매수에 나섰다. 주가를 지킨 것은 개미들의 수가 아니다. FRB의 ‘금리 인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 부스러기를 보고 달려드는 것보다 일단 자금을 확보해놓고 기다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투자 기법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한 쪽은 증시 폭락으로 돈이 부동산 쪽으로 빠져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돈이 증시에서 나오면 지금으로서는 당장 갈 곳이 부동산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정부도 부동산 규제가 심하다는 것, 부동산 침체가 너무 오래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파문이 부동산 시장의 빗장을 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는 후문도 없지 않다.
서울 강남의 ㅍ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솔직히 말해 주식 값이 더 떨어지길 기대했다. 그래야 돈이 부동산 쪽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언제든지 서브프라임 쇼크나 엔 캐리 트레이드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 증시 돈이 빠져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전혀 다른 생각도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국내 부동산 시장을 강타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ㅂ건설 회사 최 아무개 사장(58)은 “지금도 금리가 올라 대출자들의 부담이 큰데 여기에 서브프라임 파문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부동산 시장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국내 주택 대출 규모는 3백조원을 넘어 집값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큰 파장이 인다. 전문가들은 3백조원의 대출금 중 서브프라임 같은 부실이 생기면 우리 경제는 자칫 ‘뇌사 상태’에 빠진다며 걱정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한국·미국·일본 금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리를 내리면 금융 시장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지난 8월17일 0.5%를 전격 인하했는데 또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도 8월9일 콜금리를 0.5% 올려 이번에는 운신의 폭이 아주 좁다. 일본 역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금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에 흉기나 구원 투수가 될 수 있다.
환율 문제도 간단치 않다. 환율은 주가, 금리, 외환 보유고와 함께 움직이므로 관리가 더 어렵다. 특히 중국에 너무 많이 쌓여 있는 외화는 국제 금융 시장에 큰 악재이다. 7월 현재 중국이 보유한 외화는 약 9천억 달러나 된다. 며칠 전 중국이 ‘달러를 풀어버리겠다’고 미국에 위협을 가하자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설마 그렇게 하겠느냐’며 미소 작전을 편 적이 있다. 중국이 달러로 미국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아주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
일본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국내 금융 시장에 복병으로 버티고 있다. 국내에는 대략 2백80억 달러(27조원)의 엔화 자금이 들어와 있다. 문제는 엔 캐리 자금을 빌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중소 기업체와 개인들이다. 주식·부동산 값이 내리면 상환 능력이 떨어져 궁지에 몰리고,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대출자는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 기관도 치명상을 입는다.
서브프라임 쇼크로 미국 주택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미국 NBC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연소득 10만 달러가 넘는 사람이 모기지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 주택 시장 전체로 퍼져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 우려
미국에서는 올 2분기에 5백91만3천 건의 기존 주택이 거래되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가 줄어든 것이다. 미국의 주택 거래 감소는 미국인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한국·중국·일본 경제에 타격을 준다. 결국 미국 주택 시장 침체는 우리 투자 시장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국내에서는 서브프라임 파문이 실물 경제 쪽으로 옮겨갈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많다. 민간 부문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여파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리라고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미국 경제의 소비 둔화로 우리나라의 수출이 저조해지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도 서브프라임 파문이 내년에도 우리 경제에 악재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따라서 시장 동향을 잘 살펴 철저히 대비하는 투자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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