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큰 무대’는 밖에 있다
  • 장광열 (무용평론가·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AP) 대표 ()
  • 승인 2007.08.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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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연, 세계 무대에서 잇단 개가…소재의 보편성·독창성 갖춰야 성공

 
무더위가 뒤늦게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 피서 시즌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여름 휴가철의 절정인 8월 한 달 동안 한국의 공연예술계는 국내 시장을 뒤로 하고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유독 많은 땀을 흘렸다.
세계 3대 공연예술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프린지 프로그램에는 올해 정부의 지원을 받은 8개 단체의 공연물들이 소개되었다. 이중 사다리 움직임연구소가 제작한 연극 <보이첵>(연출 임도완)은 축제 막바지에 피지컬시어터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작품은 축제 초반 일간지 헤럴드가 수여하는 헤럴드 엔젤 상도 받아 가장 크게 주목되었다.
피지컬시어터 상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2천여 편 중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신체연극에 수여되는 것으로 신체 움직임이 두드러진 피지컬 퍼포먼스와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비주얼 퍼포먼스의 극단, 극장, 프로듀서, 학생, 교수 등이 망라된 ‘토탈시어터 네트워크’가 주는 상이다.
연극 <보이첵> 피지컬시어터 상 수상
사다리 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은 피지컬시어터 상 수상으로 해외 유명 극장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2년 전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연출 양정웅)이 영국 바비칸 센터에 진출한 것과 함께 최근 들어 한국의 공연예술 가운데 본격적인 문화 상품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작품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난타> <점프> 등이 대중적인 오락성을 띤 공연 상품이라면, <보이첵>과 <한여름밤의 꿈>은 예술성을 담보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세계 유명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과 유명 극장 무대로의 진출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면에서 부가 가치가 그만큼 높아질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두 작품은 모두 이미 잘 알려진 원작(게로르그 뷔히너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토대로 제작되었고 다른 연출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해석이 가미되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해서는 소재의 보편성과 함께 독창성을 함께 겸비해야 한다는 공연예술계의 속설을 그대로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용계에서는 NOW무용단의 터키 보르룸 국제 발레 페스티벌 참가가 눈길을 끌었다.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평자의 시각에서 보면 터키를 대표하는 유럽의 잘 알려진 휴양지인 보드룸(Bodrum)에서 펼쳐지는 야외  페스티벌에서 나초 두아토가 이끄는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개막 공연에 이어 한국의 무용단이 페스티벌의 폐막 공연을 장식한 것도 돋보였지만, 이 단체가 공연한 <Tradition & It’s Change>(안무 손인영)의 프로그램 구성은 기존의 한국 무용계에서 해외 진출용으로 보여주었던 패턴과는 완전히 색달랐다.
전통무용을 기반으로 새롭게 변형한 형태의 아주 느린 춤에서부터 영상과 서예 등 비주얼적인 요소를 곁들인 아주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 놀이성을 가미한 흥이 있는 춤, 그리고 라이브 연주 등을 통한 악가무(樂歌舞)가 혼재된 구성의 작품을 적절히 배합한 완급을 조절한 레퍼토리 구성이 주효했다. 이 기획 공연 상품은 지난해 발틱 3국과 러시아, 올 5월의 핀란드, 아일랜드 공연, 그리고 8월 터키 공연까지 대단한 호평을 끌어냈다.
 
NOW무용단이 공연 후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아주 흥미로웠다. 공연을 본 관객 중 10% 정도인 1백20여 명의 관객이 설문에 참여했고 이중 80% 이상이 처음으로 한국의 공연을 보았다고 답했다.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5% 정도였다. “오늘 공연을 통해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한국의 문화예술을 접하겠다”라고 응답한 관객은 90%를 넘었다. 향후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묻는 항목에서는 70%가 홍보 강화와 공연 감상 기회의 확대를 꼽았다. 관객들의 대부분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같은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문화예술이 국가 이미지 높여
문화예술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배가시키려는 노력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주도하던 이같은 정책은 최근 아시아권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이같은 문화 정책들은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된다는 점이다.
아시아권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흐름에 편승해 미국의 포드 재단이나 록펠러  재단이 자국 예술가들과 아시아권 예술가들과의 공동 작업 프로젝트에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나 일본 정부가 ‘아츠 플랜 21’을 통해 양보다 질을 우선한 예술 작품의 생산을 유도하는 쪽으로 문화예술 정책의 커다란 틀을 잡아가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또 세계 유명 무용단들과 발레 스타들의 공연을 적극 유치함으로써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무용예술의 대중화 바람을 선도하는 정책과 함께 공연예술의 메카인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전용 공연장을 설치해 일본 예술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컬럼비아 대학에 ‘연극·무용을 통한 어린이 청소년들의 창의력 개발’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했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의식을 함양하고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예술 장르가 연극과 무용이라고 판단한 미국 행정부가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프로그램 모델을 창안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는 전국에 19개의 국립무용단을 운영하고 있고, 국가가 이들 단체의 해외 공연을 전폭 지원해 국제 교류를 통한 프랑스 문화 알리기의 선봉으로 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도에서는 일찍부터 인도 음악과 인도 무용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를 대거 양성해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학교와 각종 페스티벌에 파견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정책은 대단히 탄력적이고 실질적이며, 또한 대단히 전략적이다. 2년 전 일본이 독일과의 정상회담을 오페라 페스티벌로 유명한 바이로이트에서 한 것도 이같은 포석이 깔려 있는 선택이었다.
일본 수상과 독일 대통령이 나란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극장 앞에서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는 경제 동물로 인식되던 일본에 대한 국가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오늘날 문화 외교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되었고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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