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펀드가 작정하면 미국도 통째로 접수?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9.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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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부, ‘대미 채권, 펀드 전환’ 가능성에 긴장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만든 유동성 위기가 다소 진정되는 조짐은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6개월 내지 1년, 어쩌면 그 이상  파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전세계 금융 시장을 요동시킨 난리 속에 이번에는 엽기적 얘기가 나왔다. 해외의 펀드들이 미국을 통째로 ‘접수’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미국 금융시장에 퍼지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일본·산유국들에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부채의 수준이 과다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 외교 정책이 대외 부채 때문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일축했다. 그러던 행정부가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고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관심의 초점은 외국 정부들이 대미 채권을 ‘국가 투자 펀드’로 전환해 미국 자산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데 맞춰져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걱정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즉각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에 대해 그런 사례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압박했다. 두 금융 기관은 2조5천억 달러의 투자 기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 자본의 왜곡된 투자 행태에 제동을 걸고 규제를 할 수 있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통제 방법으로는 투자의 방법을 공개하도록 하고 투자 대상국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모든 외국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입장이 늘 미국 기업들의 입장과 일치할 수는 없다. 미국이 안보를 내세워 외국 투자를 규제하면 반발을 초래한다.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최근 헨리 폴슨 2세 재무장관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 경제가 건실한 만큼 돈이 달러 베이스 자산으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 돈은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좋다. 그러나 너무 많이 들어와 미국을 매점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의 우려는 그동안 전개해온 대외 경제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틈만 나면 외국 정부에 기업을 민영화하라고 촉구했다. 기업 민영화는 정부 소유 지분을 민간 기업에 판다는 말이다. 외국에 대해서는 정부 지분을 매각하라고 독촉해온 미국이 사태가 불리하다고 해서 외국 정부의 미국 자산 매입에 다른 소리를 하기가 매우 난처해졌다는 말이다.
외국 정부의 투자는 처음 단순한 투자 성격이었으나 지금은 국경을 넘어 외국 자산을 ‘국유화’하는 형태로 변했다. 외국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유 시장을 마음대로 교란하고 있다. 이쯤 되면 투자를 넘어 자본 전쟁이 되는 형국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런 위험한 자본의 규모와 잠재력이 얼마인가 하는 점이다. 규모는 대략 2조5천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헤지 펀드의 총 투자를 상회한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국가 투자 펀드가 10년 안에 17조5천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금융 파동에서 국가 펀드가 큰 작용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래에는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의 개입은 시장이 좋을 때와 나쁠 때 모두 가능하다. 갑자기 지분을 매각하거나, 위기에 개입하거나, 혹은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의 지분을 몽땅 팔고 돈을 빼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에드윈 트루먼은 이들이 문제의 원천도 될 수 있고 해결사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 정부 자본이 미국 재무부 채권을 포함해 주식과 채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때 바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 앞으로 위기가 발생하면 폴슨 재무장관은 국제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외국의 국가 펀드 이사들에게도 협조를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폴슨은 어쩌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런 협조를 요청할 상황에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의 자금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중국과 싱가포르가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지분 매입을 시도했고 카타르가 영국 J 세인스버리 슈퍼마켓을 인수한 것이 고작이다. 두바이가 미국의 소매점 바니를 매입하려 했을 때나 중국이 올해 초 블랙스톤 지분 10%를 취득했을 때도 소동은 없었다. 오히려 블랙스톤의 손실에 대해 중국측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러시아가 송유관과 에너지 인프라를 매입하고 에너지 무기를 내세워 유럽을 압박하자 메르켈 독일 총리는 외국 정부 혹은 외국 정부가 지배하는 기업이 타국의 자산을 마구잡이로 매입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고 경고했다. “펀드들이 국가의 수중에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는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라고 메르켈은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미국 기업 인수 제한법 제정했으나 역부족

 
국가 펀드에 의한 최대의 소동은 싱가포르의 국영 펀드 테마세크가 탁신 태국 총리 소유의 회사 지분을 매입했을 때 일어났다. 이 거래는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2006년 탁신은 쿠데타로 실권했다.
국가 펀드에 대한 우려는 이것이 단지 채권·주식·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데 있지 않다. 정치 또는 민간 기업에 부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피터슨 연구소의 트루먼은 미국 정부, IMF, IBRD에 대해 국가 펀드들의 횡포를 막을 방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전문가 중의 하나이다. 이 방도는 국가 펀드의 행동 규범을 정해 보유 자산의 내용을 공개하고 투자 전략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 세계에서는 정부도 별난 동물의 일종이다. 국경을 벗어나 국가 펀드를 운용할 때는 이미 국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국가 펀드의 투자 결정을 비정치적 매니저들에게 맡겨 투자에 정치가 끼어드는 것을 막아 보자는 의견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아시아 국가와 산유국들이 달러를 주체하지 못해 돈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욕망이 제동 없이 표출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를 방지하는 길은 기업 경영과 재정 운용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폴슨 장관과 로버트 키미트 재무부 차관은 중국, 러시아, 걸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각국 정부에 투자 사례를 공개하고 기업의 해외 투자에 정부가 보조를 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부시 행정부도 이들 정부가 미국에 투자하려면 대미 투자 내역부터 공개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키미트는 국가 펀드들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건전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3천억 달러의 국가 펀드를 가지고도 포트폴리오 전략과 지분 보유 내역 및 취득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월마트에서 갑자기 자본을 빼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자아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동노동법 위반 및 노조 결성 탄압에 따른 비난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나 중국과 중동이 노르웨이처럼 행동하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언젠가 미국 제약회사를 인수한 후 처방 프로그램의 변경을 요구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는다. 또한 어떤 아랍 국가 정부가 이라크나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지원한 대가로 자국 기업에 대한 금융 구제 혹은 감세를 요구했을 때 대응 방법이 없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외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를 사전 심리하거나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10%에 불과하다.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젠 수석 조사원은 “국가 펀드들의 정치적 흑심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펀드들의 움직임을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제도가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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