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된 고가 아파트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09.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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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1백32㎡(40평) 아파트에 살아온 직장인 정 아무개씨는 최근 집을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 정씨가 이사한 아파트는 1백5㎡(32평형)로 서울에 살 때보다 좁아졌지만 마음은 편하다. 은행 돈을 빌려 산 서초동 아파트가 넓고 살기는 좋았으나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부담이 큰 데다 매달 대출금 이자를 갚느라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서초동 아파트를 판 돈으로 은행 빚을 다 갚았고 용인 집도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비슷한 정씨의 친구들도 정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집을 좁혀서 이사 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불어나는 세금과 이자를 못 견뎌 고가·대형 아파트에서 중·소형 아파트로 옮기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한때 재산 증식에서 필수 품목이자 ‘재테크 수단 1호’로 꼽혔던 대형 아파트들이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분위기이다. 시세 차익을 바라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담만 자꾸 커져서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보유세 강화 △콜금리 인상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 △처분 조건부 대출 매물 증가 등 아파트값 상승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이 즐비하다.
서울 강남, 목동을 포함한 ‘버블세븐’에 있는 고가·대형 아파트들 가운데는 부르는 값이 ‘억원’ 단위로 뚝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집값을 2억원이나 싸게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다. 경매 시장에서조차 찬밥 신세이다. 특히 사상 첫 두 달 연속 콜금리 인상으로 주택 담보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심적 압박은 아주 심하다. 은행 이자율이 7~8%에 이른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담보 추정 대출액은 한 사람당 평균 1억2천만~1억3천만원 선. 상당수가 변동 금리를 적용받아 이자가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다. 내년이 되면 종부세 과표가 또 올라 세 부담이 더 는다. 공시 가격 6억원 이상의 큰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의 가슴이 타들어간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대형 아파트 매수세 역시 바닥이다. 전문가들은 처분 조건부 대출 등으로 인해 매물이 더 많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처분 조건부 대출이란 아파트를 은행에 잡혀 돈을 빌린 사람이 투기 지역 안의 다른 아파트를 추가로 사면서 1년 내 기존 집을 파는 조건으로 대출받는 것을 일컫는다.
대기 매물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양도소득세 특례 대상이 되었던 아파트, 일시적 2주택자 등 양도세 회피성 매물도 아파트 시장의 복병이다.
경매 시장에서도 대형 아파트의 가치는 내리막이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경매 물건으로 나온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1백60㎡(48평)는 감정가(26억원)보다 5억원 이상 낮은 금액에도 두 번이나 임자를 찾지 못했다. 워낙 비싼 아파트라 한 번 유찰은 흔하지만 연속 유찰은 2005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경매 정보 업체 디지털태인이 집계한 지난 8월 서울·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이 89.68%로 전달(91.08%)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흐름에 대해 서울 대치동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멀지 않아 ‘대형 아파트 시대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리도 일본처럼 대단한 부자가 아니고선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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