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전 위한 ‘선도투’인가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9.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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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여권의 선거대책본부장 자리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번 대선은 노대통령과 이명박 후보의 대결이다.” 묘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원하는 길로 스스로 걸어갔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이런 내용의 논평을 낸 9월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어 9월7일 이후보와 이재오·박계동 의원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대선을 불과 10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불거진 청와대의 야당 후보 고소 사건은 대선 가도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정치 구도가 한나라당 대 청와대 구도로 급변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주자들의 경선이 언론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친노 후보들을 돕기 위해 노대통령이 칼을 빼들었다”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그 배경을 둘러싸고 해석도 분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고소에 자극받아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관련 사건에 대해 ‘권력 실세 몸통설’을 제기하면서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나섬에 따라 정국이 한층 가팔라지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에 맞서 ‘이명박 특검’을 주장하고 나설 태세이다.
 
범여권도 “청와대 고소는 적절치 않다”며 비판 가세
원하는 길이었지만, 설마 했던 것 같다. 청와대의 방침이 알려진 뒤 한나라당은 격한 말을 쏟아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무능한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정윤재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실정에 대한 물타기성 음해 행위의 극치이다”라고 논평했다. 강재섭 대표는 한 술 더 떴다.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깜도 안 되는 정권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노대통령의 의도에 말려든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나라당은 이후보가 대응을 자제하는 대신 당이 나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국정원과 국세청 등이 이후보를 뒷조사했다며 ‘야당 후보 뒷조사 의혹’에 대해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또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연루된 ‘세금 무마 청탁 의혹’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학위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 사건을 ‘권력형 비리’라고 규정하고 대선 때까지 끌고가겠다는 노림수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나라당만 반발한 것이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해도 청와대가 고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고소병이 도졌다”라
 
고 비판한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은 물론,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할 일을 법에 호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한 한겨레까지 온통 비판 일색이다. 도무지 잘했다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가 직면한 현실이 이렇다.
청와대는 왜 야당 후보를 고소하는 초유의 일을 감행한 것일까.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불과 3개월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말이다. 9월5일 대통령 비서실 명의로 낸 ‘이명박 후보의 정치 공세에 대한 대통령 비서실 입장’이라는 글은 이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기본적인 생각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은 최소한의 단서와 근거도 없이 청와대가 배후에서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후보 본인까지 나서서 정권 차원의 정치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도덕성 검증 요구와 불법 의혹을 물타기하려는 선거용 술수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국가 기관에 대한 부당한 정치 공세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의 최근 분위기를 좀더 자세히 전했다. “청와대가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여러 차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그런 행태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다른 어떤 대응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이) 청와대가 정치 공작을 했다고 주장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을 회피하고 모면하겠다는 것 아닌가. 앞으로도 참여정부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나 음해에 대해서는 대응할 것이다.” 문실장은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강한 어조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와대를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득을 보려는 한나라당의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하소연이자 항변이었다.
웬만하면 법적으로 대응하는 청와대의 평소 행태에 견주어볼 때 이번 이후보 고소는 늦은 감이 있다. 노대통령은 지난 1월2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내일이 선거라도 부당하게 공격당하면 반드시 해명할 것이다. 그것은 정당한 권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보가 ‘청와대 개입 의혹’을 처음 제기한 시점이 6월이니 3개월가량을 기다린 셈이다. “이후보 본인에 대해서는 가능하다면 고소를 피하고 싶었다”라는 문재인 실장의 발언은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느끼는 부담의 크기를 보여준다.
이후보측, 격한 반응 자제하고 검찰 행보에 촉각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 9월4일 한나라당 실무자가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배후설과 관련해) 6일 오전 11시에 조사하러 가겠다”라고 말한 것에 분개해 고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6일 만난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노대통령이 20년 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보고 생각했던 수위가 있는데, 한나라당의 최근 행태는 그 수위를 넘었다. 어떻게 일방적으로 청와대를 조사하겠다고 할 수가 있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표정이다. 국정원과 국세청 등이 이후보의 재산 내역 등을 들여다본 사실이 이미 드러난 만큼 충분히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자세이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더 구체적인 사실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감마저 표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이후보 등을 고소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핵심 인사는 “우리가 바보인가. 고소했을 경우 정치적으로 오히려 이명박 후보를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겠나. 내부적으로 그런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참모도 있었다. 정치적으로 유리한가, 불리한가 등을 따졌다면 고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치밀한 계산을 해서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들이 마치 큰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 이후보 등을 고소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야당 대선 후보를 청와대가 고소한 사건은 정치적인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이후보를 비판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 고소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노대통령은 지난 8월31일 한국PD연합회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음주 운전이나 부동산 상가 하나만 있어도, 그리고 위장 전입 한 건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 된다”라며 위장 전입을 하고 도곡동 땅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이후보를 비판했다. 그 전에도 노대통령은 이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비난해 6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이후보의 측근인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지난 9월7일 기독교방송에 출연해 청와대가 이후보를 고소한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청와대가 선거 중립 의무를 지키기보다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정권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 △정윤재·신정아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되는 걸 막아보려는 물타기 의도가 있다 △ 정국 자체를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가져감으로써 친노 주자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여당 경선에서 친노 주자들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막 나가지는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청와대에 조사를 하러 가겠다’라고 했던 부분은 좀 심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과거처럼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항의 방문을 하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청와대의 의도에 말려든다고 보고 있다. ‘구태 정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노대통령이 선택할 카드가 별로 없다. 이후보를 고소함으로써 레임덕을 방지하고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것 같다. 우리는 무시하기로 입장을 정했다”라고 말했다.
이후보측에서는 내심 정국이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대치 구도로 재편되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노대통령의 대척점에 이후보가 분명하게 서는 효과가 있고, 내부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이 완화되는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공이 검찰로 넘어갔기 때문에 검찰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흐름도 엿보인다.
이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당이 외부의 공세에 맞서 나가고 후보는 ‘싸움’과는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 두 갈래 대응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듯 이명박 후보는 지난 9월6일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성 정치에서 좋지 않은 것은 배우지 않겠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친노 세력 결집해 경선 집중하라는 메시지” 분석도
청와대의 ‘이명박 후보 고소’에 곤혹스러운 쪽은 오히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들이다. 먼저 노대통령으로부터 몇 차례 비판받았던 손학규 후보가 강하게 치고 나왔다. 손후보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할 일을 해야지, 날밤 새워 대통령, 장관 할 것 없이 고소나 하고 있다. 청와대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이명박 당선시키려고…”라고 맹비난했다. 아슬아슬한 표 차로 1위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을 손후보는 언론의 관심마저 이명박 대 노무현 대결로 쏠리자 섭섭함을 가감 없이 토해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력 대선 주자의 핵심 측근은 “청와대가 주도면밀하게 고려해 이후보 등을 고소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국 이슈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청와대가 계속 이후보측과 공방을 벌일 경우 대선 후보들로서는 아무래도 경선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즐거운 일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한 분석가는 ‘방패막이’ 이론을 펼쳤다. 노대통령이 ‘이명박은 당분간 내가 맡아 싸울 것이니 친노 주자들은 경선전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다. 이명박의 반대편에 노대통령이 서 있을수록 이른바 ‘친노 세력’의 결집도가 높아지고 이것은 경선전에서 친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당연지사라는 얘기이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들 사이에 이런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지지도 등에서 이후보와 맞서 싸울 만한 여력이 없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들을 대신해 일단 노대통령이 전선에 나서 세력을 모은 뒤 친노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어 일거에 대선 후보로 떠오르게 한다는 시나리오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는 “우리가 후보를 돕는다고 그 후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도울 사람은 직을 내놓고 캠프에 합류해 도우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철저히 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일을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만 해석하지 말아 달라”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명박 고소’는 노대통령의 법률가 기질과 임기 말이라는 시기 속에 ‘정윤재 의혹’ 등으로 곤경에 몰린 청와대의 감정적인 대응이 결합해 나온 ‘승부수’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의 의도와 관계 없이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상징적인 의미 말고 실익 면에서나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청와대가 그리 재미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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