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앞의 ‘뜨거운 감자’ 지주회사
  • 김진령 기자 ()
  • 승인 2007.09.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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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경영권 승계 등 걸려 ‘미적미적’…상황 다른 현대차·한화 선택에 주목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월3일 ‘2007년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 지분 구조에 대한 정보 공개’ 자료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자료를 통해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43개)의 경우, 총수 일가가 4.90%의 지분으로,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11개)의 경우 총수 일가가 3.45%의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현황을 공개했다. 이는 큰 재벌그룹일수록 오너 일가의 지분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액 주주와 별 다른 차이가 없는 5% 미만의 한 자릿수 지분을 가지고도 재벌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환상형 출자’라는 ‘뻥튀기’ 때문이다. 총수가 소액 주주라도 계열사끼리 서로 출자하면서 ‘오너 외 특수 관계인’ 형식으로 1대 주주의 보통주 지분이 30~50%로 뻥튀기 된다.
경제 당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그룹 지배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변경할 때 세제 혜택을 주고 지주회사 요건을 완화하는 등 지배 구조 개혁을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재벌그룹의 소유 지배 구조가 지주회사로 바뀌는 것을 호재로 분류한다.
그럼에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많은 재벌그룹들이 망설이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 덩지가 큰 재벌그룹일수록 지배 구조 개편을 망설이고 있다. 정부가 당근을 주고 주가도 뛰어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음에도 재벌들이 이처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 기업집단 중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미정’이라고 밝히는 대표적인 재벌기업은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한진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한화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2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 문제와 2세간 재산 분할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한진그룹 지배 구조의 핵에 정석기업이라는 비상장 회사를 배치했지만 조회장이 별세하고 2세 간 재산 분할이 진행되면서 이 기업의 ‘사실상 지주 회사’ 역할이 흔들린 경우이다. 최근에는 한진해운의 오너인 조수호 회장이 타계하면서 한진의 조양호 회장 계열사들이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고 조양호 회장의 2세들이 이제 막 경영 현장에 진입하는 시기여서 한진의 지배 구조 정리는 시간이 더 걸리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처럼 2세 간 재산 분할 문제가 걸려 있는 또 다른 그룹으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창업자 정주영 회장에서 2세로 넘어오면서 형제 간 재산 분배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이후 현대그룹의 모회사인 현대건설의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이를 되찾으려는 범(凡 ) 현대가(家)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사정이 꼬였다. 현대건설 인수전에 범현대가 쪽 당사자로 나선 현대중공업그룹은 우선매수권 옵션을 걸고 매각한 현대오일뱅크의 재인수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주회사 전환 문제는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
사실 2세 간 재산 분할과 관련해 빅뱅이 예상되는 기업은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가 한국롯데의 주력인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등을 소유하는 복잡한 지배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 국내 롯데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신격호 회장의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신동빈 한국롯데 부회장과 함께 국내 롯데의 양대 주주 노룻을 하고 있다.
2세간 재산 분할 문제도 큰 걸림돌
롯데는 올해 나이 86세인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건재하지만 신회장의 공백 이후 일본롯데보다 사업 규모가 더 커진 국내 롯데에 대한 재산 분할 문제가 현안 중의 하나이다. 재계에서는 한·일 양국에서 활동 중인 4명의 신회장 2세 간의 재산 분할이 지주회사 전환보다 우선적 문제일 것이라고 관측한다.
사실 국내 재벌그룹의 소유 지배 구조 개선은 국내 양대 재벌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에서만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면 사실상 완료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두 그룹의 경제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오너 일가의 소액 지분도 문제려니와 금융·산업 분리 문제가 겹쳐서 사정이 복잡하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그룹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그룹,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삼성물산 등 3개 사업군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금산분리법상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지주회사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의외로 지주회사 전환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 수 있는 그룹으로는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재벌그룹의 총수는 모두 법정에 불려갔다.
이 중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9월6일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관련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고 사실상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재판부의 주문 사항이다.
재판부는 정회장에게 8천4백억원의 사회 공헌과 경제인 대상의 준법 경영에 대한 강연을 명령했다. 정회장으로서는 향후 ‘투명 경영’ 기치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정회장의 항소심이 열린 날 현대차그룹에 부당 내부 거래 혐의로 6백31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 거래 혐의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에서 진행해온 그간의 2세 재산 승계 작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정회장은 현대모비스 등 사실상의 지주회사를 공식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동시에 정의선 사장의 그룹 지배력도 동시에 높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공정위 조사 발표가 ‘편법 상속은 안 된다’라는 정부의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의선 사장은 공교롭게도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비자동차 계열사에서만 1대 주주이다. 그가 1대 주주로 있는 건설사 엠코나 물류회사 글로비스, 광고 회사인 이노션, 시스템통합업체인 오토에버시스템즈의 지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지주회사 전환이 현대차의 유일한 답안일 것이라는 전망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 역시 증권가 일각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형사 처벌이 마무리되는 대로 ‘호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미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에 대한 한화그룹 지분을 공식적으로 1대 주주로 올리는 등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상태이다. 한화의 경우 김회장의 2세에 대해 계열사인 한화S&C의 지분을 헐값에 몰아주었다는 논란이 이는 등 2세 재산 승계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이 2세 승계 문제와 지주회사 전환을 한꺼번에 처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에 미적거리는 거대 재벌 중 전환 후보 1순위로 꼽히는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의 선택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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