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그들 위에 뜨는 그녀들
  • 이해준 (JES 기자) ()
  • 승인 2007.09.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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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스타 커플의 ‘왝스 문화’, 한국에도 확산…선수 못지않은 인기로 관심 집중

 
콜린 맥플러린, 셰릴 콜, 라이카 올리베이라, 에비 게일…. 이들의 이름을 안다면 당신은 트렌드의 첨단을 걷는 축구 팬임에 틀림없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별명을 지닌 콜린 맥플러린은 웨인 루니의 여자친구이다. 세릴 콜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비수 애슐리 콜과 지난해 독일 월드컵 직전 결혼했다. 영국의 팝클럽 ‘걸스 얼라우드’ 출신의 팝스타이다. 속옷 모델 올리베이라는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두의 새로운 여자친구이다. 에비 게일은 빼어난 미모로 남편인 리버풀의 장신 스트라이커 피터 크라우치 못지 않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어지간한 축구 팬들은 이들에 대해서는 몰라도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을 잘 알 것이다. ‘스파이스 걸’ 출신의 이 영국 미녀 스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후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명사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모으는 축구 선수들의 부인과 여자친구에게 왝스(WAGs·Wives and Girlfriends)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 신조어는 지난 6월 영국 콜린스가 제작하는 영어 사전에 새로운 단어로 등재되며 당당히 ‘시민권’을 얻었다.
이들은 교외에 거대한 저택을 가지고 있다. 포르셰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번갈아 몰고 다니며 구찌,샤넬, 마놀로 블라닉을 마음 내키는 대로 쇼핑한다. 게다가 그들의 남편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들이다. 왝스는 현대판 신데렐라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완비했다. 왝스는 지난 독일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남편들의 재력에 힘입어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하고 관중석에 앉아 응원하는 새로운 시대의 신데렐라들의 사진은 유럽 타블로이드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국은 축구의 저변과 기량은 유럽 축구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왝스 문화’만큼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빅토리아 베컴이 ‘퀸 오브 더 왝스(Queen of the WAGs)’라면 한국에서는 단연 안정환의 부인 이혜원을 ‘여왕’으로 추대해야 한다. 미스코리아 출신이기는 하지만 별다른 연예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안정환의 부인이라는 점을 기반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다. 여성 잡지들은 안정환·이혜원 부부가 어떻게 집을 꾸며놓고 사는지, ‘리틀 혜원’이라는 의미로 리원이라고 이름붙인 딸에게 어떤 옷을 입히는지를 살피기 위해 과감히 페이지를 할애한다.
소도시의 평범한 처녀였던 웨인 루니의 여자친구 콜린 맥플러린이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기 시작한 뒤 살빼기 비디오를 내고, TV 다큐멘터리를 찍고, 패션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것처럼 이혜원씨는 지난해 말 인터넷 패션 쇼핑몰을 창업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쇼핑몰의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리안으로 명명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성을 내건 아내의 사업을 돕기 위해 간간히 쇼핑몰의 이벤트 모델로 등장한다. 남편이 내조자가 아니라 외조자로 나선 형국이다.
김남일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KBS 아나운서 김보민은 이혜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귄다’ ‘안 사귄다’를 놓고 언론과 숨바꼭질을 벌였던 김보민 아나운서는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는 모습이 노출되고, 두 사람이 똑같은 커플링을 끼고 있는 모습이 팬들의 시선에 포착되는 등 연애 과정에서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 덕분에 김보민은 동료 아나운서들을 가뿐히 제치고 높은 인지도를 누리는 유명인이 되었다. “차범근 감독이 가장 무섭다”라는 등 김보민 아나운서가 김남일과 관련해 내놓는 멘트 하나하나가 인터넷 언론을 타고 전파되며, 청혼을 어떻게 했는지 등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팬들에게 전해진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지난 9월4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결혼을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축구를 축구답지 못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이 뿐만이 아니다. 연습생에서 출발해 국가 대표에까지 뽑힌 성남의 수비수 장학영은 신인 탤런트 김지연과 오는 12월 웨딩 마치를 울린다. 결혼 발표가 있던 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김지연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한동안 머물려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며 ‘제2의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호 역시 여성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리브의 멤버인 양은지와 사귀고 있다. 양은지는 방송에 출연해 “서로 호호·양양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라며 당당히 교제 사실을 알리고 있다. 과거 연예인들이나 축구계 선배들이 교제 사실을 극비에 부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이다.
 
김진규는 지난해 독일월드컵을 즈음해 탤런트 홍진영과 사귀었고 최근 결별했다. 한 언론은 김진규가 여자친구 홍진영의 가수 데뷔를 말리면서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결별 이유를 보도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진출한 이천수는 지난해 독일월드컵에서 탤런트인 여자친구 김지유를 위한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축구 스타와 연예인의 교제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며 축구 스타의 위상이 높아졌다. 또 젊고 잘생긴 외모에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축구 스타와의 사랑은 '쿨'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신문선 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학과 교수는 “내가 프로 선수로 뛰었던 1980년대만 해도 축구 선수들은 인기 있는 신랑감이 아니었다. 축구 선수는 생명이 짧고 미래가 불안하며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회적 편견이 강했다. 과거 축구 선수의 부인에게 요구된 것은 남편의 뒷바라지를 잘하고 합숙과 해외 원정으로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잘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 선수는 물론 그의 부인이 함께 명성을 얻으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세상이 됐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축구 선수의 부인들이 인기를 얻는 기묘한 상황이 축구를 축구답지 못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더랜드의 로이 킨 감독은 이번 시즌 선수 영입을 위해 3천만 파운드의 두둑한 자금을 준비해놓고 전력 보강을 시도했다. 하지만 영국 동북부에 위치한 선더랜드가 런던 같은 대도시 연고팀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벽에 부딪혔다. 그는 “영입을 위해 연락을 한 선수 중에는 아내가 런던 쪽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한다며 아예 전화 한 통 주지 않은 선수도 있다. 축구 선수들에게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다. 아내나 여자친구가 런던에서 쇼핑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팀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니 정말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라고 개탄했다.
K리그 역시 선수들 사이에서도 수도권 팀을 선호하는 경향이 해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포항·울산·전남 등이 지역의 맹주로 수도권과 경쟁을 벌였지만 스타들이 한두 명씩 수도권으로 이적하면서 서울·성남·수원 등 빅클럽과의 전력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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