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 갇혀 살고 6천만원 수중에
  • 정락인 기자·김지수 인턴 기자 ()
  • 승인 2007.09.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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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대리모들의 실상 / 돈벌이 위한 지원자 계속 늘어

 

‘대리모 지원, 서울 거주, 25살, 164cm, 52kg, 미혼.’ 출산 경험이 없는 20대 여성들이 너도나도 대리모로 나서고 있다. 서로 ‘내 자궁을 써달라’고 아우성이다.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갖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출산 경험이 있는 기혼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출산 경험’을 자랑 삼아 내세우기도 한다. 신성해야 할 여성의 자궁이 돈에 거래되고 있는 현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대리 출산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직업 대리모’ 여성까지 생겨났다. 어떤 여성은 성관계를 통한 자연 임신, 즉 ‘씨받이’를 하겠다고 나선다. 자신의 피가 섞인 생명을 돈을 받고 파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대가가 없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리모로 나선 여성들의 공통점은 ‘돈’이다.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대리모가 되고 있다. 대리모 지원자들은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에서부터 30대 중반의 기혼 여성까지 다양하다. 

대리모의 수명은 보통 35세까지이다. 25~35살까지 대리 출산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그 사이 5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 1회 평균 사례금이 4천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2억원을 벌 수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혼녀 등 생계형 지원자도 적지 않아

대리모 지원자 중에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난자 매매에 나서는 여성도 있다. 난자 매매는 지원자의 조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보통 2백만~3백만 원에 거래된다.
네이버 지식검색을 통해 ‘난자 공여나 대리모를 해준다’라며 자신의 프로필을 올려놓은 이신정씨(가명·26)는 자신을 인천 부평에 거주하고 있으며 혈액형은 B형으로 난자 공여를 한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난자의 질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프로필만 올려놓은 다른 지원자와는 달리 자신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외모를 중시하는 의뢰인이나 브로커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다. 이씨의 프로필은 대리모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러 곳에 미끼를 던져놓았던 것이다. 

대리모로 나선 여성 중에는 경제적 약자들이 많다. 주로 △이혼 여성 △가족 치료비를 구하는 사람 △신용불량자나 파산자 △사채 채무자 등이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김선영씨(가명·30)는 생계형 대리모 지원자이다. 김씨는 지난 2003년 남편과 이혼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친정 아버지와 살고 있다. 지난해 말에 친정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면서 목돈이 필요했다. 올해 초에는 브로커를 통해 2백만원을 받고 난자를 매매하기도 했다. 김씨에게 당장 필요한 돈은 4천5백만원 정도.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에는 대리모를 지원하고 나섰다.

서울 강동구 길동에 사는 박순선씨(가명·29)도 남편과 이혼하고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다. 박씨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리모로 나선 사람 중 하나이다. 박씨는 “지금 돈이 필요하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막막하다. 가격만 맞으면 난자 매매도 생각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대리모 여성들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대리모 경험자를 찾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사는 김수민씨(가명·26). 김씨는 사채 빚에 시달리면서 대리모로 나섰다. 지난 2005년 9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목돈이 될 만한 일을 찾았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이 대리모 관련 카페였다. 김씨는 다른 지원자가 올린 글을 모방해 간단한 프로필과 e메일 주소를 남겼다. 곧바로 상담을 원하는 메일이 들어왔다.

대부분 브로커들이었다. 브로커를 통해 3명의 의뢰인을 만났고, 그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의뢰인과 계약을 맺었다. 의뢰인이 제시한 대리 출산 사례비는 5천만원. 세 번에 걸쳐 받는 조건이다. 매월 1백만원의 생활비를 추가로 받기로 했다. 이로써 김씨는 총 6천만원을 대리 출산 사례금으로 받는 셈이다.

의뢰인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김씨에게 친권 포기각서를 요구했다. 시술할 병원은 의뢰인이 정했고, 건강 검진도 받았다. 착상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계약이 발효되었다. 의뢰인은 집 근처에 18평 원룸을 구해놓고 김씨를 생활하게 했다. 그때부터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은 의뢰인에게 통제되었다. 계약서에도 ‘통제에 따라야 한다’라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의뢰인이 동행하지 않는 외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매일 의뢰인이 지정하는 태교 음악을 듣고 태교 책을 읽어야만 했다. 먹는 것과 입는 것도 의뢰인의 뜻에 전적으로 따랐다. 기계적인 일상의 반복이었다. 임신 10개월째 김씨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출산 후에는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머물렀다. 산후 조리가 끝나자 의뢰인은 약속한 사례금을 주고, 별도의 보너스로 2백만원을 따로 챙겨주었다.

김씨는 “임신에서 출산 때까지 나는 아기 공장에 불과했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정이 들지도 않았다. 당장은 돈이 급했고, 혹시나 돈을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경제적인 약자라고 해도 ‘상업적 대리 출산’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한번 대리모로 나서면 두 번 세 번 대리모로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브로커들의 ‘관리 대상’ 목록에 올라 끝없는 상업적 대리 출산의 유혹을 받는다. 의뢰인이 선호하는 신체 조건이나, 외모, 학력 등을 가진 여성들은 더욱 심하다. 

부유층 기혼 여성들의 대리 출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임신이 가능한데도 대리모 여성을 찾는다고 한다. 출산 고통을 피하거나 몸매 유지를 위해서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명을 사고파는 일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가 많으면 공급자는 더욱 늘어나기 마련이다.

법적·행정적 관리 체계 마련 시급

대리모와 의뢰인 간에는 법적 분쟁의 소지가 깔려 있다. 대리모와 태아 사이의 정서적 연대감이 생기고 태아에 대한 대리모의 모성애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친권 포기 각서를 작성했다고 해도 아이를 내주지 않는다면 친권 분쟁이 불가피하다. 기형아가 태어나면 아이 인수를 거부하거나 유기할 우려가 있다. 대리 출산을 의뢰한 부부가 이혼·사망으로 아이를 인수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성단체들은 상업적인 대리 출산과 비상업적인 대리 출산 모두를 반대하고 있다. 만약 비상업적 대리모가 허용되면 대리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인영 교수(한림대 법학과)는 “상업적 대리모와 비상업적 대리모를 구별하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처벌 규정을 두고 상업적 대리모 시술을 금지한다고 해도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민들의 반응은 상업적 대리모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대리모의 경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리 출산에 대한 법적·행정적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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