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이라크가 위험해?”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9.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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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철군 여론 잠재우려 안바르 주 깜짝 방문…민주당도 타협할 기미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깜짝 놀랄 모험을 했다. 9월3일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계에서는 말이 많다. 칭찬이나 비판보다는 오죽 급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이 나오는 판이다. 예고 없이 이루어진 이라크 방문에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이 수행했다. 방문 명분은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의 회담이었다.
부시의 이라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방문한 장소가 지니는 정치적 함축성에서 앞서의 방문과는 판이하다. 부시가 방문한 곳은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1백80㎞ 떨어진 미 공군기지이다. 이 기지는 안바르 주 중심에 있다. 이 주는 미군에 대한 수니파의 저항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다. 몇 달 전까지도 미국 대통령이 그런 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곳은 어쩌면 부시가 방문할 수 있는 이라크 내 장소로는 가장 위험한 곳이다. 그런 장소를 부시가 방문한 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자신이 고집을 부려 단행한 이라크 주둔 미군 3만명 증원이 성과를 내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증원 목적이 바그다드와 그 주변 그리고 안바르 주의 치안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부시는 안바르를 찾은 것이다. 대통령이 방문해도 좋을 만큼 그 지역 치안이 나아졌고 이는 곧 증원의 효과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우스는 9·11 6주년 기념일인 9월11일까지 증원에 따른 진전 상황을 의회에 보고한다. 이 보고서가 나온 후에 부시는 철군에 관한 가부간의 결정을 해야 한다. 민주당 장악 하의 의회는 벌써부터 철군 관철을 벼르고 있다. 이 운명의 시간을 앞두고 부시는 증원과 관련된 민감 지역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증원 효과를 현장 확인을 통해 입증하려 한 셈이다.
부시는 평소 어떤 경우에도 철군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부시가 철군 쪽으로 전략을 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철군을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해 철군을 연기시키려 할 공산이 크다.
부시가 굳이 안바르를 방문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안바르 주에서는 그동안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 알카에다는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에 협조한 이른바 ‘부역자’들에 대해 잔혹한 보복을 가했다. 포로의 살해와 고문은 물론 심지어 어린이까지 고문하고 죽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증원 이후 이런 일이 현저히 줄었다. 또한 바그다드에 대한 공격도 크게 줄었다. 이라크 경찰은 자살 테러 공격이 8개월 만에 최저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부시의 눈에는 이것이 증원 효과로 비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페트레우스가 같은 취지의 보고서를 낼지, 그리고 그런 보고서에 민주당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별개 문제이다.
어쨌든 부시와 그 팀은 철군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부시의 정성이 통했는지 민주당이 철군에 대해 타협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상원의 민주당 지도자들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수개월 내에 철수하는 문제에서 공화당에 일부 양보 할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당초 내년 봄까지 미군을 전면 철수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관철시킬 작정이었다. 물론 민주당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이 증원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철군 이후의 이라크 사태에 대해 그들도 명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점이 일부 작용했다. 게다가 철군안을 관철시키려면 의원 6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이를 규합하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면 철수와 부분 철수를 놓고 고민하던 민주당은 부시의 이라크 방문으로 강경 입장을 완화할 수 있는 구실을 찾은 셈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입장에 동조하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태도도 변했다. 하기 휴회 중 백악관이 이들을 집중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양당 의원들은 상징적으로 일부 미군을 철수하는 초당적 결의안도 고려 중이다.

 

철군 문제, 9월 중에 고비 넘을 듯
이라크 철군 문제는 어쨌든 9월 중에는 고비를 넘게 되어 있다. 부시는 철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베트남 교훈까지 거론했다. 지금 철군하면 베트남 철수 후의 보트 피플이나 킬링 필드 같은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와 베트남을 비교한 부시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조지 타운 대학의 로사 브루크스 교수는 LA 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라크 문제에 대한 두 개의 대안을 분석했다. 첫 번째 대안은 현상 유지이다. 우선 이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인스타인은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치광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현상 유지는 불가하다는 결론이다. 이라크 치중 정책을 지속하다가는 미국 안보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두 번째 안은 전면 혹은 부분 철군이다. 철군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재배치라고 해도 된다. 철군이든 재배치이든 이 작업은 10개월 내지 12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병력과 장비를 빼는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이라크 정부가 철군 이후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걸프 만에 항공모함 전단을 상주시키고 이라크에는 미국 대사관을 보호할 수 있는 소규모 해병대 여단만 유지한다. 이 안은 제법 현실성이 있다. 다만 철군 이후 이라크가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강조한다. 다수의 이라크 국민은 미군이 철수하면 치안이 좋아질 것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여론조사일 뿐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본다. 이라크뿐만 아니라 주변 정세도 문제이다. 이란·시리아·팔레스타인이 미군 없는 중동에서 활개를 치면 이스라엘의 입지는 어렵게 된다.
이라크 난민 사태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매달 5만명 내지 10만명이 국외로 탈출한다.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은 지금까지 겨우 2백명의 이라크 난민만 받아들였다.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50년 후 이라크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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