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쌓아올린 허영의 바벨탑
  • 안성모 기자 ()
  • 승인 2007.09.1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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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신데렐라’ 신정아의 인생유전 / 고졸 학력에 “서울대 합격” 등 떠벌려

 

신정아씨는 신데렐라였다. 학력 위조 사실이 들통 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미술계의 권력으로 세상을 휘어잡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스캔들의 여주인공으로 전락한 그녀의 인생유전을 짚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회장…중학교 때 상경
신정아씨의 고향은 경북 청송으로 알려져 있다. 신씨의 아버지는 주유소와 택시회사를 경영하는 등 상당한 재력가인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도 갖춘 지역 유지였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가 유산을 관리하면서 남매를 뒷바라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씨는 초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는가 하면 여학생으로는 드물게 전교회장까지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도 뛰어났지만 음악과 미술 등 예능 방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985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상경한 신씨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왔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다”라고 했지만 이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당시 신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캔자스 대학 입학을 위해 어학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캔자스대를 졸업했다”라는 주장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 대학에 다니다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통역 아르바이트에서 큐레이터로 ‘급성장’
신씨가 미술계에서 출세하는 첫걸음이 된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1997년 한 전시회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로 일한 신씨는 갑자기 큐레이터로까지 신분이 급상승했다. 여기에는 “캔자스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미술관에서 인턴십까지 마쳤다”라는 ‘거짓 간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녀와 조우했던 미술계 인사는 “청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정아씨가 미술 관련 글을 써왔다면서 보여줬는데 글 솜씨는 엉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라고 말했다.   
 이후 신씨는 큐레이터로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한다. 신씨의 이름이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8년 말에는 한 언론사가 주최한 ‘올해의 전시’ 선정에 젊은 미술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신씨는 ‘예술과 관객을 잇는 전시 마술사’ ‘큐레이터 세계의 우먼리더’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큐레이터로서 더욱 더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으며, <월간미술> 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로 뽑히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분이 맺어진 것은 대략 이 때쯤으로 보여진다.
2005년 5월에는 신씨가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들은 ‘국내 큐레이터로는 미술 관련 외국 박사 1호이자 한국인으로 예일대의 첫 서양미술사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신씨는 “미국을 왔다갔다 하는 항공료는 논외로 치더라도 논문 작성과 전시 기획이 겹치는 때에는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라고 고충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녀는 경북 안동에서 학원을 경영하는 오빠를 미국 명문대 출신의 안동대학교 교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해오기도 했다. 미술계의 실력자로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그럴듯한 거짓말로 자신의 인생을 격상시켜가며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환심을 사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메랑 되어 돌아온 가짜 박사학위
‘예일 대학 박사학위’는 신씨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5년 9월 동국대 조교수로 임용되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학력 위조’의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재단 이사였던 장윤 스님이 “신정아 교수의 학위가 가짜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하자, 재단은 5월 열린 이사회에서 장윤 스님을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신씨의 ‘가짜 학위’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에다 신씨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정된 데 대해 외압 논란이 일자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결국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학력 위조’ 사실은 하나둘씩 그 베일을 드러냈으며, 특히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밝혀지면서 미술계의 신데렐라는 일순간 스캔들의 여주인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의혹이 불거진 7월 초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던 신씨는 중순께 몰래 귀국한 뒤 나흘 후 “미국에 가서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준비해 돌아오겠다”라는 말을 주위에 남긴 채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예일 대학 박사임을 강조한 뒤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준비 중인 것처럼 말했다. 더구나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청와대나 변 전 실장과 자신이 무관한 사이임을 주장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을 각본에 넣어 살아온 그녀의 실체를 새삼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두 달째 뉴욕 맨해튼 일대 호텔 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씨가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돌아온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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