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할까 머리 싸맨 중국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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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앞두고 대외 이미지 ‘저울질’…일단은 ‘지지 철회’로 선회

 

19년 전인 1988년 민주화를 부르짖는 시위 군중 3천명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미얀마의 군사 통치가 마침내 막을 내릴 운명에 도달한 것 같다. 지금까지 순전히 경제적 이유로 군부 통치를 암암리에 지원해온 중국이 지지를 거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중국은 두 가지 이유로 군사 정부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했다. 첫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문이고, 둘째는 독재 정권 지지에 따른 국제 여론 악화 때문이다. 아무리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이라도 누구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권을 마냥 감쌀 수는 없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 말고도 국민의 증오,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이라는 세 가지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맨발의 승려들이 이끄는 10만 군중은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총칼과 맞섰다. 군사 독재의 수명이 다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정권을 지지해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고 중국은 판단한 듯하다.

유혈 사태 보고 생각 바꿔
중국은 그동안 미얀마의 전략적 동맹이자 무역 상대국이고 투자국이었다. 중국은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국민의 분노를 보고도 미얀마에 대한 유엔의 추가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미얀마 장성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과신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 이미지를 해치지 않기 위해 경제적 실익도 포기할 수 있다는 중국의 이중성을 간과했다.
1988년 사태는 미얀마를 잔혹한 독재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아웅산 수치 여사를 12년간의 가택 연금에 이르게 한 반역이다. 중국은 이런 사태의 재발만은 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미얀마에 부단히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군부는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고 1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를 본 중국은 마음이 변했다. 미얀마 군부를 껴안고 가다가는 소탐대실이 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만약 수치 여사가 미얀마의 지도자가 된다면 맨 먼저 축하 카펫을 깔아줄 곳은 중국이다.” 태국의 미얀마 전문가 베르티 린트너의 이 말은 중국의 속내를 극명하게 암시한다. 중국은 미얀마에서 유혈 사태가 나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한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학살 사건의 악몽이 뇌리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얀마 군부가 유혈 사태 없이 소요를 진압할 수만 있다면 중국으로서는 금상첨화이다. 미얀마는 목재와 광물 등 중국에 필수적인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양국 간 무역은 올 들어 7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39.4% 증가한 11억1천만 달러에 달했다. 미얀마는 그 밖에도 3조㎥의 천연가스와 30억 배럴의 원유를 매장하고 있다. 중국은 군부 지지 대가로 이 자원을 독식했다. 또한 안보 면에서 미얀마는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돕는 교두보이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기도 제일 많이 공급하고 좋은 조건의 차관을 제공하는가 하면 대규모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중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  10년간 100만명의 중국 기업인이 미얀마에 들어갔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미얀마의 원유를 중국으로 직송하는 20억 달러의 송유관 건설도 계획하고 있다. 이것이 완공되면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 말라카 해협은 국제 분쟁만 생기면 폐쇄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공식 입장은 불간섭주의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얀마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얀마 정부와 국민이 현안을 잘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말은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중국은 미얀마 내정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태국과 동남아에 있는 미얀마 반체제 세력들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심지어 이들을 지원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베이징이 최근 미얀마 대결 세력들 간의 평화적 타협을 얘기한 것도 군부의 종말을 염두에 둔 증거라고 말한다. 2000년부터 3년간 미얀마 주재 대사를 역임한 호주 국립 대학의 트레버 윌슨 교수는 더욱 노골적으로 중국의 내심을 짚어냈다. “중국 공산당은 미얀마 군부의 종말을 필연으로 본다”라는 것이다. 군정이 종료될 경우 십중팔구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집권할 것으로 보고 이들과 원만한 유대를 구축하고 있다.

군부와 반체제 세력 모두와 유대 구축
중국은 겉으로는 미얀마 군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경제를 망친 것이 못마땅하고 중국 국경으로 불법 마약을 유통시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10여 년 전 중국은 한때 군

 
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미얀마에 대한 차관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군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 유혈 사태도 과도한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얼핏 보면 유가 인상 반대 시위가 이렇게 거창한 사태로 번진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군부의 연이은 경제 정책 실패로 최빈국으로 전락한 미얀마 국민들에게 대폭적이고 돌연한 유가 인상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비화되기에 충분했다. 국민을 못 살게 하는 정권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미얀마는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최근 미얀마가 그 나라에 맞는 민주주의 과정을 밟아가기를 바란다는 외교부 성명을 보도했다. 중국이 바라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아니다.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미얀마식 민주화만 이루어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군부는 이것마저 거부했다. 스스로 묘혈을 판 셈이다. 또한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5년 만에 처음으로 미-미얀마 고위회담을 베이징에서 주선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중국은 이것도 군부의 비협조 탓으로 돌린다.
지구상의 모든 군사 독재 국가가 그렇듯이 미얀마도 부패로 유명하다. 국제투명기구(TI)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얀마를 소말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명단에 올렸다. 군 최고사령관 탄쉐의 딸 결혼식에 수백만 달러의 선물이 답지한 사건은 겨우 2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그러나 미얀마에 민주주의 꽃이 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 일을 미얀마 국민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국제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재를 도와 이득을 보고 있는 일본과 인도도 더러운 장사를 그만 둘 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최종적으로 성공할 경우 6자회담 당사국들이 미얀마 문제 해결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워싱턴 포스트 사설은 관심을 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한-시리아 핵거래설과 부시의 북한 비난 발언으로 묘한 상황을 맞고 있다. 결국 미얀마 사태는 5천2백만 미얀마 국민들에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주는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유엔·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등이 민주화를 지지하고 나선 일은 일단 고무적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민주화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문명을 거부하는 군부가 40만 병력의 힘으로 1988년 사태를 재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는 불안하지만 ‘희망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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