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나게, 확실하게 은행강도가 된 경찰
  • 이재현 기자 ()
  • 승인 2007.10.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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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것은 ‘작품’이냐 ‘흥행’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모든 감독들이 작품성을 좇고 싶겠지만 돈을 대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망하는 꼴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감독은 두 번 다시 기용하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이 흥행에 참패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서편제>의 후속작으로 극장에 내걸렸는데 관객들은 그 영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서편제>가 대박이 났다고 해서 <천년학>이 다시 대박이 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로 재미를 보았던 장진 감독이 이번에는 각본을 직접 써서 <바르게 살자>를 들고 나왔다. 웃기려고 작정을 하고 만든 영화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계속 영화를 찍어온 배우 정재영(정도만 역)을 주연으로 썼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고지식한 순경 정도만은 강력계에서 도지사를 수사하다 물증을 잡는 데 실패하고 교통계로 좌천된다. 졸지에 교통순경이 된 정도만은 새로 부임하는 서장이 차선을 위반하자 스티커를 뗀다. 앙심을 품고 있던 서장은 관내에 은행 강도가 자주 출몰하자 모의 강도 훈련을 하기로 하고 정도만에게 강도 역을 맡긴다. 실감 나게, 확실하게 하라는 주문과 함께.
정도만은 이때부터 진짜 같은 강도가 되기 위해 온갖 책을 다 뒤져 공부한다. 훈련이 시작되고 정도만은 강도로 돌변하는데 이때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코미디를 보여준다. 대사는 철저하게 웃음을 일으키게 만들어졌다. 인질이 된 지점장이나 행원들, 그리고 은행에 잠복해 있던 형사들도 입을 열기만 하면 개그를 한다. 그러나 정재영이 분한 정도만은 진지하기만 하다.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훈련이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게 진행된다.

웃지 않는 정재영이 더 웃기는 영화
확실하게 하라는 서장의 명령을 받은 정도만은 자신을 진짜 강도로 착각하면서 은행의 셔터 문을 내리고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하게 전개된다. 훈련을 중계하던 TV는 마침내 전국 방송을 탄다. 궁지에 몰린 서장은 속이 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는 계속 늘어만 간다.

 
웃기려고 작정을 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데 작위적인 대사가 너무 많아 실소가 나온다. 특히 강도와 협상을 하려고 나타난 전문가의 행동은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그나마 웃음다운 웃음을 주는 장면은 여자 행원을 강간하는 부분. 정도만이 잔소리를 해대는 여자 행원을 벽에 몰아붙인 뒤 갑자기 팔굽혀펴기를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콘텐츠가 해마다 늘고 있다. 한 번 검증된 콘텐츠가 안전하기 때문이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흥행을 위해 살아서 죽기를 선택하는 우리 감독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만 하다. 10월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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