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 신당’, 누구 위해 뜨는가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10.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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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김혁규 등 뭉쳐 창당 움직임…문국현을 친노 후보로 밀 가능성도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신당 창당에 나섰다. 신당 명칭은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평화연대’(가칭)이다. 그는 서울 종로구에 당사로 쓸 사무실을 열었고 창당 발기인 및 중앙위원 모집에 열심이다. 신당 추진 세력은 김혁규·김원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 강운태 전 내무장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다. 이홍구 전 총리와 박세일 전 한나라당 의원 등의 이름도 나오지만 아직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들의 면면에서 신당의 정체성이 읽힌다. 이 전 총리가 간판이라지만 무색무취한 그에게서 무슨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는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이름이 등장하는 인물일 뿐이다. 대신 김혁규·김원웅·강운태 등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범여권 대통합을 거부한 채 ‘열린우리당 사수’를 외친 사람들이다. 김의원은 열린우리당 해체에 반발해 의원직 사퇴서까지 국회에 냈다. 아직 수리되지는 않았지만. 강 전 내무장관은 열린우리당 해체 직전에 입당했다. 이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김병준 “대선판 키우는 중간 다리 역할 하겠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보면 더 확연하다. 그는 노대통령 판박이나 다름없다. 노대통령이 의원 신분이었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노대통령이 집권하자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절대적 신임 속에 부동산과 분배·복지 정책을 주물렀다. 부동산 정책 실패 인책론이 들끓었지만 그는 영전했다. 논문 표절로 낙마한 그의 이력에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훈장처럼 걸려 있다. 지금도 노대통령 특보이다. 노대통령 친위 조직인 참여정부평가포럼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완벽한 ‘노무현의 남자’가 신당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성보다 김병준에 눈길이 꽂히는 이유이다.
김 전 정책실장이 최근 기막힌 얘기를 했다. 신당 성격과 관련해서이다. “범여권의 대선판을 키우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을 하겠다”라는 것이다. 신당 창당 의도의 정수를 털어놓았다. 천기누설이다.
범여권과 친노 등 반 한나라당 세력은 ‘대통합민주신당만으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상대하기 역부족’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하루하루 누더기로 전락하는 통합신당 대선 후보 경선만 믿고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싸여 있는 것이다. 또 지지율 10% 미만인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마이너리그’로는 대선판을 한나라당 대 범여권의 1 대 1 구도로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 친노들의 판단이다. 신당 경선을 ‘실패’로 치부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20% 안팎에서 맴도는 신당 경선 투표율이 그 상징이다. 간신히 20%를 넘긴 광주·전남 투표율은 신당에 대한 마지막 기대마저 대못질하고 말았다. 뭔가 ‘대형 사고’라도 쳐야 한다는 웅성거림이 노대통령 쪽 사람들에게서 들린다. ‘대선판을 키워야 한다’가 제목이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은 무엇인가. 이 역시 정동영·손학규·이해찬 가운데 누가 되어도 본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이명박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참패’로 나타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악몽’이다.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평화연대’든 뭐든 서둘러 신당을 만들어 그럴듯한 ‘이명박 대항마’를 내세워야겠다는 절박감이다. 정동영·손학규·이해찬 3인 가운데 누가 통합신당 후보가 되든 이수성·김혁규·문국현 등과의 단일화 과정을 거쳐 몸집을 키우겠다는 시나리오이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깜짝 쇼가 눈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친노가 나서면 되는 일이 없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노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이해찬 후보가 통합신당에서 꼴찌로 전락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 이수성 전 총리를 앞세운 듯하다. 특히 이 전 총리는 영남(경북 칠곡) 출신이다. ‘영남’은 수많은 정치적 ‘경우의 수’를 안고 있다. 영남은 한나라당의 철옹성이기도 하고, 노대통령의 기반이기도 하다. 물론 경남 일부에 불과하지만.
12월 대선에서 영남을 공략하지 못하면 범여권이 재집권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호남과 충청 인구를 다 합해도 영남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유권자 3천7백만명 가운데 약 1천만명이 영남이다. 1997년 이인제 후보와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그 역할을 이 전 총리나 신당이 할 수 있다면 신당을 하나 아니라 수십 개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결국 이수성 전 총리는 ‘위장’이다.
신당은 이수성(경북)·김혁규(경남)·김원웅(충청)·강운태(전남) 등 지역 대표성을 갖추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영남당’이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그가 서울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전 총리는 본인이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김병준 전 실장은 “어림없다”라는 반응이다. 김 전 실장은 “신당에는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강운태 전 내무장관, 김원웅 의원 등이 참여해 10월 중순 대선 후보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수성 전 총리 본인은 직접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 전 총리가 “국민이 편하게 사는 나라, 품격 있는 나라, 강한 새 대한민국 건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출마를 선언한다지만 ‘글쎄’이다.
하지만 최근 이수성 전 총리의 최측근인 서성동씨는 “이수성 전 총리가 후보가 안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계산이 제 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웅 의원까지 나서 “당 운영은 이수성 전 총리가 맡고, 대선 후보는 김혁규·김원웅·강운태·김병준 가운데 선출하거나 합의 추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누가 보아도 ‘친노’뿐이다.
DJ와 노대통령도 문국현에 눈독들였다?
통합신당 후보 경선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구도는 명확해진다. 현재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미는 후보는 이해찬이다. 그런데 그는 경선이 전환점을 돌았는데도 여전히 꼴찌이다. 처가가 있는 부산을 믿었다지만 여기서도 3등에 머물렀다. 전세를 만회해 역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동영 또는 손학규라는 얘기이다. 둘 다 반노·비노이다. 한 사람은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두 번 지냈지만 당을 깨는 데 앞장섰다. 다른 한 사람은 한나라당 출신이다. 참여정부의 ‘적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대척점에 김혁규·김병준·김원웅 등이 서 있다. 이 전 총리도 “철새 정치인, 신의를 저버린 정치인, 부패한 정치인은 제외된다”라고 했다. 정동영·손학규 후보는 여러 카테고리에 걸린다. 이해찬 후보가 통합신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친노 신당 후보로 나설 수도 있지만 이미 자격을 잃었다.
친노 신당이 준비하는 비장의 카드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다. 통합신당이든 이수성 신당이든 누구를 후보로 내세워도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철저한 친노인 이해찬 후보가 죽을 쑤는 것이 살아 있는 증거이다. 더구나 이수성 신당의 후보감들도 다 친노이다. 문국현 전 사장의 존재 가치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가 ‘경제계의 노무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지만 친노로부터 다소 벗어나 있다. 통합신당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독자 노선이다. 그는 연일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이후보는 눈만 뜨면 한반도 대운하 얘기인데 그렇게도 할 말이 없느냐”라고 시비를 건다. 그러면서 “토목 경제로는 경제를 못 살린다”라고 걸고 넘어졌다.
 
노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 전 사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돈다. 김 전 대통령은 9월 말 미국을 방문 중 “대통합신당과 민주당 후보, 문국현씨가 단일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를 입에 올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문 전 사장도 “고마운 말씀”이라고 받았다. 그러면서 “단일화 후보는 이미 국민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만약 그가 이수성 신당의 후보라도 되는 날에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지 모른다. 노대통령으로서도 반노·비노보다는 문 전 사장이 낫다고 여긴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특히 노무현 정권 초기 실세였던 한 인사는 요즘 ‘오마이 뉴스의 문국현 기사를 우리 쪽에서 여기저기 열심히 퍼 나르며 그의 인지도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만한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없다”라면서.
친노 세력과 이수성 신당의 진로는 통합신당 후보 경선 결과와 직결되어 있다. 거의 확실하지만 이해찬 후보가 낙선할 경우, 통합신당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유시민 의원이 정동영·손학규 2인 가운데 한 사람과 손을 잡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이수성 전 총리 등이 신당 창당 시기를 통합신당 후보가 결정되는 10월10일 전후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내년 총선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
통합신당에는 20~30명가량의 골수 친노들이 속해 있다. “혹시 이해찬이나 유시민이 후보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대 속에서 마지 못해 통합신당에 합류한 세력이다. 이들에게 반노·비노 후보 당선은 난해한 방정식에 맞닥뜨리는 일이다. 노대통령과의 차별화, 참여정부와의 결별을 추구하는 후보를 지원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해찬 후보는 정동영 후보의 ‘동원 경선’을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경선 무효’라도 선언할 태세이다. 이미 통합신당 경선에 흥미를 잃었다는 얘기이다.
참여정부평가포럼과 노사모는 이해찬 후보 지지로 커밍아웃했다. 이후보가 떨어지면 썩은 지푸라기만큼 연결된 통합신당과의 끈도 사라진다. 곁을 둘러보니 ‘이수성 신당’으로 변장한  사실상의 ‘친노 신당’이 꾸려지고 있다.
12월 대선 전망과 내년 총선도 통합신당 내 친노파들을 동요하게 만든다.
대선 패배는 자칫 대선 4개월 후 실시되는 총선에서의 참패로 이어질 수 있다. 대선이 끝난 뒤 통합신당이 존재할지조차 불확실하다. 열린우리당 출신, 민주당 출신, 손학규로 대표되는 제3 세력,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잡다한 세력에 의해 급조된 정당이기 때문이다. 오직 반(反) 한나라당이라는 동질성밖에 없다. 한나라당 집권 저지에 실패하면 공중 분해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내년 총선 때 의탁할 거처가 절실하다. 그것이 친노 신당이 될 수 있다.
노대통령의 시선도 대선보다 내년 총선에 닿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노무현 스쿨’처럼 연수원을 만들고, 김성호 전 법무장관 등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한 것은 친노 세력을 정치판에 박아놓겠다는 현실 정치에 대한 집착이다. 어차피 참여정부평가포럼과 노사모도 안착지를 찾아야 한다. 김병준과 유시민 등이 합세할 가능성이 있는 친노 이수성 신당은 안성맞춤이다. 그렇지 않아도 친노 후보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신당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가 패할 경우, 제3 신당을 만들어 훗날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범여권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범여권의 마지막 기대는 이수성 신당과 문국현뿐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3개월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마지막 대역전 드라마는 펼쳐질 수 있을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대선 3주 전인 11월25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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