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손발 묶고 취재 선진화라고?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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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브리핑룸 설치 강행으로 기자들 ‘떠돌이’…중재안 나온 후에도 반발 여전

 

국정홍보처는 지난 9월18일 외교통상부 기자단에게 “오는 9월20일 중 종합 브리핑룸 공사 일정이 끝나는 만큼 추석 연휴가 끝나는 27∼28일쯤 2층 기사송고실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달라”라고 통보했다. 외교부 기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자 홍보처는 “남북정상회담이 끝나는 10월4일 이후에는 기사송고실을 비워달라”라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6자회담 취재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 다녀온 한 외교부 출입 기자는 기사송고실의 랜선이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사장 인부가 실수로 절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들은 ‘6자회담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홍보처에서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국정홍보처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확인이 안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기자들 사이의 불신은 국정홍보처의 해명조차 믿지 못하게 한다.
기자들과 국정홍보처와의 대립은 수개월 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그만큼 참여정부와 언론 사이에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 불씨가 되었다. 이 방안은 크게 세 가지를 담고 있다. 부처별 기자실을 통폐합해서 종합 브리핑센터를 만들고, 공무원의 개별 접근을 금지해 정보 창구를 단일화하며 기자들의 사무실 무단 출입을 막아 비공식 견해를 차단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합리적 절차를 통한 취재 방식을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자단은 정부의 언론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느라 바쁘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5월22일에 ‘정부의 취재 통제에 반대한다’라는 성명을 냈다. 5월28일 재정경제부 출입 기자들의 성명, 5월31일 37개 중앙 언론사 소속 기자 대표의 1차 성명 등이 쏟아졌다. 그리고 각 부처 기자단의 성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 기자단은 이번 전쟁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신축할 통합 브리핑룸이 외교부 청사 3층에 들어서기 때문에 뉴스의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 사회 각계 비판 거세자 한 발짝 물러나
지난 8월29일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가 먼저 풀려난 한국인 3명에 대한 공식 발표를 청사 1층 새 브리핑룸에서 했다. 하지만 대다수 출입 기자들은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에 반대하며 2층 기존 브리핑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외교부는 대다수의 출입 기자들이 없는 곳에서 중요한 발표를 한 셈이다. 기자들은 “취재 의사를 보였음에도 제대로 된 통보 없이 발표한 배경에 대해서 정부의 책임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반발했다.

 
특히 지난 9월12일 정부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외교통상부 청사) 2층 브리핑룸의 철거 공사를 강행하면서 갈등은 증폭되었다. 철거 당일 정부는 공사 관계자들을 동원해 30분 만에 브리핑룸의 집기를 빼내버렸다. 이로 인해 출입 기자들과 공사 인부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갈 곳이 없어진 외교부 출입 기자들은 복도에 주저앉아 회의를 했다. 그리고 “취재접근권의 완전한 보장에 대한 현실 조처가 없는 상황에서 2층 브리핑룸을 철거하는 행위는 취재 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라고 주장했다.
비단 외교부 출입 기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있는 다섯 개 부처(외교부·통일부·교육부·행자부·총리실)의 기자들은 지난 9월19일 “브리핑룸 이전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각 부처에서 기자실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조처에 따르면 모두 통합 브리핑룸으로 이전해야만 한다.
기자들은 정부의 방안이 기자들을 현장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부처 기자실의 폐쇄, 사무실 출입 금지, 개별적 취재 접근 금지 등은 모두 현장 분리 원칙이라는 얘기이다. 박상범 한국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 특위 위원장은 “기자들이 각 부처에서 분리되면 기자들의 현장성이 떨어지고 크든 작든 취재에 제약을 받는다”라고 밝혔다.
정부와 기자들과의 갈등이 커지자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9월11일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개편 방안에 대해서 중재안을 내놓았다. 특히 총리 훈령으로 규정된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안과 관련해 △정책홍보관리관실 사전 협의 △공무원의 전화 취재 사후 공보관실 보고 △대면 접촉 공간 제한 △엠바고 제재 △홍보처 일괄 기자 등록 △기자출입증 전자칩 부착 등에 대해서 삭제하거나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마지못해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9월14일 보완책을 발표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전면 수용해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안’을 수정키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공무원이 기자의 취재에 응할 경우 정책 홍보 부서와 사전 협의하고 사후에 보고하도록 한 훈령 11조와 면담 취재 장소를 통합 브리핑센터 접견실로 제한한 12조 규정을 전면 삭제했다. 단 직접 만날 수 있는 공무원은 실·국장급으로 제한했다. 책임 있는 답변이 가능한 직급의 사람들만 만나게 하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갈등이 커지고 사회 문제가 되면서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히 대선과 총선이 연달아 있어 언론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와 틀어진 사이를 위로하고 편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부의 이번 방안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협회보와의 질의·응답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정부가 독소 조항을 삭제하는 등 보완책을 냈지만 언론계의 여론이 완전히 수렴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학규·이해찬 후보도 학계와 언론계, 정치권 등 모든 집단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9월17일 외교부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취재 시스템은 언론 자유와 직결된다. 이것에 변화를 주는 것 자체가 언론 자유와 직결된다는 것을 정부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호재를 만났다. 취재 지원 선진화방안을 비판하는 언론의 편에 서서 언론 자유를 옹호하고 나섰다. 지난 9월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언론 통제 대못질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참여정부의 취재 선진화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기회를 이용해 그동안 눈엣가시로 여기던 국정홍보처장 파면 요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청와대의 실정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9월1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취재선진화방안은 정부 주도의 언론 통제로 권위주의 정부에서나 가능한 시대 착오적인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기자들 사이에서 한나라당이 취하고 있는 입장은 분명했다.
기자들, 중재안 놓고 고민 중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지원에 힘입어 정부의 보완책이 나오고 이제 공은 기자들에게로 넘어갔다. 정부는 대표적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요소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정부의 대책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쟁점 사항인 부처 기자실 폐지와 통합 브리핑룸 신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공을 정부에게 되돌려주려 하고 있다.
 
중앙 일간지의 한 기자는 “한 번 그런 조항을 신설하려고 시도하면서 공무원들이 기자를 대하는 방식이 이미 달라졌다. 사건이 길어지면서 공무원들의 대언론관이 정부의 의도대로 길들여져버렸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 기자실이 사라지고 통합 브리핑룸으로 멀리 쫓겨난다면 취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박상범 위원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 조항 요구는 거부했다. 독립청사에 기사 송고실을 존치해달라는 요구도 수용되지 않았다”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는 나름으로 강행 작업을 펼치고 있다. 양보할 것은 양보했으니 최소한 기자실만큼은 의도대로 하겠다는 태도이다. 세종로 정부 부처들의 브리핑룸을 모두 철거하고 대신에 모든 상주기자들을 정부청사 별관에 위치한 통합 브리핑룸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은 시간이 갈수록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방안 발표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브리핑룸과 기자실만 덜렁 남았다.
게다가 정부 입장에서 대의라고 생각했던 사무실 무단 출입 금지, 개별적 취재 접근 금지 조항은 삭제되었다. 정부는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를 방지하고 사회적 혼선과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변해왔었다. 특히 취재원을 입맛대로 선택해 편파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참여정부 입장에서는 총리훈령 두 조항의 삭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점점 왜소해지고 있는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다.
여론도 점점 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방안 발표 초기에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았다. 국민들이 가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자들과의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의견도 많이 바뀌었다. 지난 9월19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취재선진화방안이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한다’라는 의견이 62.2%로 ‘언론 선진화를 위한 것’(27.9%)이라는 의견을 압도했다.
6자회담·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사건이 끝나고 이제 기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기자실은 이미 철거된 곳도 있다. 정부는 기자들이 통합 브리핑룸으로 들어가기를 종용하고 있다. 기자들도 고민 중이다. 정부가 중재안을 발표한 후 그 고민은 더욱 커졌다. 한 방송 기자는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정부와 화해할 수 없다는 강성 기류가 강하지만 저 정도면 정부가 많이 양보한 것 같다는 의견도 꽤 있다”라며 고민스러워했다. 독소 조항이 삭제되면서 외부 원군도 기자들을 떠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 등 취재지원선진화방안 반대에 동참했던 세력들이 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양문석 사무총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사실상 항복한 것 아니냐.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정보공개법 강화 등 새로운 것을 많이 얻어냈으니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 내부에서는 여전히 반대 의견이 강한 편이다. 외교부 출입 기자 대표인 류신모 경향신문 기자는 “주는 밥 먹는 강아지처럼 정부가 내어주는 부실 브리핑이나 받아쓰는 기자 노릇을 할 수는 없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결국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정부가 기자들을 위해 열린 행정, 투명한 행정을 얼마나 보여줄 의지가 있느냐로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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