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얼굴이 무섭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8: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기 수법 다양해지고 전문성까지 띠면서 진화 중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최민성씨(남)는 얼마 전 기가 막힌 일을 당했다. 최씨는 오픈마켓인 옥션에서 노트북을 주문하고, 물건 값 2백만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물건을 구매한 후 판매자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왔다. “직원의 실수로 하자 있는 물건을 보냈다. 반송시켜 주면 ○○백화점 10만원짜리 상품권을 보내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10만원짜리 상품권에 이끌려 착불로 물건을 반송했다. 물건을 보내고 나니 배송 주소와 반송 주소가 다른 것이 께름칙했다. 옥션 판매자에게 전화한 후에야 사기라는 것을 알았다. 최씨는 부랴부랴 택배회사에 연락해 배송을 취소했다. 하마터면 2백만원을 꼼짝없이 날릴 판이었다.
지금까지의 물품 구매 사기는 고객이 물건을 주문하고 돈을 입금하면 잠적하는 수법이었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싸게 판다고 광고를 낸 뒤 개인정보를 입수하기도 했다.
최씨의 경우처럼 물건 구매 정보를 빼내 물건을 반송시키도록 하는 사기는 처음이다. 판매자나 택배사에서 주문 정보가 유출될 경우 소비자는 꼼짝없이 덫에 걸릴 수밖에 없다. 휴대폰은 대포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
물건 구매 정보 빼내가기도
그렇다면 사기꾼은 고객의 구매 정보를 어디에서 빼냈을까 의문이 든다. 최씨는 “판매자의 회사에서 정보가 유출되었거나, 주문 정보를 갖고 있는 택배사에서 정보가 빠져나갔을 것이다”라고 보았다. 해킹을 통한 제3자의 범행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기업 택배사의 한 간부는 “택배사에서 구매 정보가 빠져나갔을 확률은 적다. 택배사는 저가품에서 고가품까지 골고루 취급하는데 고가품만의 정보를 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판매자의 정보가 새나갔거나 구매 사이트를 해킹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배가 고파요, 한 푼만 도와주세요.” 지하철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걸인들 모습이다. 허름한 옷차림에 한쪽 팔이 없는 사람, 앞을 볼 수 없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이다. 한때 ‘걸인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거나 ‘휠체어를 탄 걸인이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재벌 걸인’이란 말도 나왔다. 구걸해서 얼마를 버는지 정확하게 수입을 알지는 못했다.  
사이버 공간에도 앵벌이가 있다. 지금까지 사이버 앵벌이는 동정심을 유발해 소액의 돈을 받았다. 소년·소녀가장이나 미혼모를 사칭하거나 ‘부모의 병원비가 없다’ ‘사업 부도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는데 재기를 위해 1만원씩만 도와 달라’는 등으로 거짓말을 꾸몄다. 네티즌에게 무작위로 스팸메일을 보내거나 쪽지를 보낸 후 송금 받는 수법이었다. 기부단체를 사칭해 기부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서 아무개씨(남·20)와 10대 앵벌이 10명은 지난 2004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채팅을 통해 2천여 명
 
으로부터 9천여 만원을 뜯어냈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이버 앵벌이의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연령층은 20대에서 10대로 낮아지는 추세이다. 수법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이버 앵벌이는 개인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직적이고 전문성을 띤 범죄로 바뀌고 있다. 수법은 주로 구걸을 빙자한 사기이다.
신종 사이버 앵벌이는 학교 동문이나 동창회 커뮤니티에 가입하거나 주소록을 입수해 전화하는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김현창씨(남·39)는 지난 8월 중학교 동창회 사이트에 접속한 후 동창을 사칭한 이상한 쪽지를 하나 받았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100만원만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부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재차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김씨는 할 수 없이 100만원을 송금해 주었는데 그 뒤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기였다.  
충북 소재 대학을 졸업한 임상우씨(남·36)는 지난달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해외에 유학 가 있는 대학 동창을 사칭한 사기꾼으로부터 감쪽같이 속았다. 50만원을 송금해준 뒤에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대학 동창을 사칭한 사기꾼은 “국내 대학에 교수 채용 면접을 보러 잠시 나왔다. 갑자기 급전이 필요하니 돈을 좀 빌려 달라”라며 송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해외에 유학 가 있는 동창생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는 허점을 이용한 앵벌이 사기였다.
범죄교육센터로 불리는 인터넷 P2P(파일 공유 사이트)에는 ‘자동차 문 여는 방법’이나 ‘Win XP 완벽하게 복제하는 방법’ ‘휴대폰 비밀번호 알아내는 방법’ 등이 게시되어 있다. 누구나 사이트에 가입하면 게시물을 자신의 PC로 내려받을 수 있다. 특히 자동차 문 여는 방법은 5분짜리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있다. 문 열 때의 주의사항에서부터 공구, 차량 종류별 내부 모습까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각종 음란물을 비롯해 음악파일이나 영화파일 등을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나 블로그 등은 사이버 범죄가 성행하는 곳이다. 병역기피, 서류위조, 마약판매, 성매매, 청부살인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카페를 개설하지 않고 메일 주소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다음카페의 마약판매 카페에는 ‘청부살인 해드린다’는 글과 함께 메일주소(whale××××@hanmail.net)를 남겨놓았다.
현재 인터넷 공간에는 100여 개 이상의 병역 기피 조장 사이트(카페, 블로그, 미니홈피 포함)가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 수가 30만명 이상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병역 기피 수법 알려주는 사이트만 100여 개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국회 국방위원회)은 “병역 기피 사이트는 ‘안전하고 확실한 입영 연기, 입영일 5일 전까지 가능’ 등의 문구와 함께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까지 버젓이 적어놓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병역 기피 브로커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비밀쪽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돈을 주고 병원 입원 증명서를 끊는 방법, 학원을 다니지 않고서도 자격증을 취득해 입대 일을 늦추는 방법을 안내했다.
또 포털사이트의 카페를 통해서 마약류가 유통되고 있다. 일명 도리도리(엑시터시), 술(히로뽕), 작대기(필로폰 주사기), 떨(대마초) 등의 은어를 사용해 향정신성 약물과 대마류를 거래한다. 포털사이트에서 마약을 암시하는 은어를 입력하면 판매자들과 접촉이 가능하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학위증 등 각종 서류를 위조하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도 100여 개에 달한다. 사이버상에서는 개인에 대한 인격침해나 명예훼손, 여성에 대한 사이버 성폭력, 협박, 스토킹 등의 범죄는 일상화 되어 있다.
사이버 세상은 신종 범죄의 천국이다. 성매매, 명예훼손, 불법 복제 판매, 개인정보 침해는 아무리 막아도 끝이 없다. 범죄는 또 다른 범죄를 낳고 계속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범죄의 진화 현상이 뚜렷하다. 뿐만 아니라 범행모의, 병역기피, 마약판매, 장물처분, 폭발물 제조 등을 주제로 한 불법·유해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사이버 범죄에 무방비 상태이다. 사이버 일탈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재미있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내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쉽게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