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세계화 위해 무엇인들 못하랴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0.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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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혁 5개월 결산 / 도덕성·실용주의 내세운 외교 정책 펼쳐

 
‘사르코’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애칭이다. 프랑스를 개조하겠다는 거창한 공약을 들고 사르코는 지난 5월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취임 초 사르코 혁명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너무 빠른데다 고공 비행이었기 때문이다. 5개월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은 겨우 사르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밀어붙이는 혁명의 뉘앙스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르코의 개혁은 터부를 파괴하는 것이다. 
사르코식 프랑스 혁명의 최대 특징은 친미주의이다. 친미라고 해서 무작정 미국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실익을 챙기는 친미이다. 역대 프랑스 지도자들은 ‘황야의 서부’로 상징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기피했다. 앵글로 색슨 색채의 패권주의가 역겨웠고 속물주의가 싫었다. 그렇게 된 데는 워싱턴에도 책임이 있다. 파리의 충정 어린 충고는 늘 워싱턴에서 조롱을 받았다. 대화가 끊기는 것은 당연했다. 사르코는 이런 미국 터부를 버렸다. 뉴햄프셔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아메리칸 드림을 흡입했다. 아이팟(iPod)을 착용하고 미국식 조깅도 했다. 사르트르보다 미국 영화를 더 좋아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중동과의 유대를 중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냉담했다. 시라크는 이란의 핵 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사르코는 정반대이다.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이란이 핵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위협할 경우 이란 공습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핵에 대해서는 부시보다 더 강하게 나온다.
프랑스는 오랜 세월 러시아와 갈등을 겪었다. 냉전 시절 미국과의 관계에서 러시아는 사사건건 프랑스를 견제했다. 러시아의 전체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쁜가를 놓고 프랑스는 고민했다. 시라크는 궁리 끝에 시장을 중시하는 ‘새로운 진보주의’를 천명했으나 21세기의 진보주의는 20세기의 전체주의만큼 위험했다. 프랑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중간 지점에서 방황했다. 사르코는 이 문제에서 명백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소련의 권위주의를 이겼고, 미국의 자유가 소련의 노예 제도를 압도했다고 확신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많이 하는 것은 드골 식이 아니다. 주 35시간만 일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 프랑스의 철학이다. 사르코는 일찍 일어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프랑스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사르코의 슬로건은 다르다. ‘나는 일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프랑스에는 ‘행복하게 살려면 숨어서 살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의미는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테랑과 시라크는 부자들과의 친분을 숨겼다. 사르코는 딴판이다. 롤렉스 시계를 찬 손을 흔들며 백만장자들과 호화 요트를 타면서 마음껏 부(富)를 뽐낼 뿐만 아니라 TV 방송들이 이 장면을 방영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프랑스적인 것’ 버리고 ‘세계적인 것’ 선택
사르코는 외국인을 꺼려하는 극우파의 노선에 도전했다. 이민자 문제에서는 좌파보다 더 개혁적이다. 모로코 노동장관과 알제리 세탁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법무장관에 임명하기까지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정책도 180° 선회할 모양이다. 프랑스는 드골의 결정에 따라 1966년 나토에서 탈퇴했다. 이제 재가입하는 일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나토 밖에서 독자 노선을 가는 식의 국방 정책은 시대착오라는 것이 사르코의 인식이다. 역사의 동반자로서 세계 조류에 합승하는 것이 프랑스를 위한 선택이라고 사르코는 믿는다.
 
사르코는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특유의 주문을 했다. EU 가입 문호를 개방하고 단순화하라는 것이다. 난데없이 ‘지중해 연합’ 구상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리비아에서 의료 활동을 하던 중 의료 사고로 사형을 받은 불가리아 간호사를, 아내 세실리아를 시켜 구명하기도 했다. 미국 휴양지에서 부시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이라크에 외무장관을 파견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횡무진이다. 그는 마치 죽은 프랑스를 되살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지나치게 요란한 듯한 모든 파격의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사르코는 프랑스의 원래 자리를 찾으려는 것 같다. 이를 위해 프랑스적인 것은 버리고 세계적인 것을 선택했다. 2003년 시라크가 이라크 침공을 저지한 이후 프랑스의 소리는 워싱턴에서 들리지 않았다. 2005년 프랑스가 유럽연합 헌법을 부결했을 때 브뤼셀에서도 프랑스를 무시했다. 가는 곳마다 프랑스에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말이 들렸다. 사르코는 선거 기간 중 시라크 시대와의 결별을 다짐했고 이제 그 약속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취임 100일 연설에서 프랑스는 행동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획득하는 대통령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런 다짐이 대내외 정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간으로 치면 중늙은이에 해당하는 강대국 프랑스가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할까? 사르코는 3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첫 번째, 유럽을 통해 프랑스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원칙에서는 시라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목적을 미국의 적대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달성한다는 점에서 시라크와 다르다. 그는 이 순간 미국과의 우호가 지난 두 세기간의 우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여름 휴가를 미국에서 보내면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가 미국이라고 극찬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시라크는 유럽의 군사적 야망을 들먹거리며 나토와 미국에 대들었다. 사르코는 유럽에 그런 야망은 없다고 미국을 설득한다. 유럽의 국방 강화가 어떤 형태로도 나토와의 대립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토 재가입 얘기도 그 맥락에서 나온다.
두 번째는 프랑스 외교에 도덕성을 불어넣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간섭주의를 버리고 다르푸르에 대한 평화유지군 파견을 주장한다.
세 번째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으나 참신한 실용주의에 입각한 외교 정책이다. 프랑스의 위상에 걸맞은 기회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시라크가 추구하던 프랑스의 ‘영광’보다 덜 야심적인 ‘역할’을 찾자는 것이 사르코의 이상이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프랑스의 외무장관이 1988년 이후 처음으로 3일간이나 이라크를 방문해 외교적 역할을 모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7월 파리에서 레바논 문제 회의를 주재한 것도 같은 취지이다.
사르코의 도박에는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미국과 영국의 정책에 반해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하는 것이 일례이다. 어쨌든 사르코의 모험은 현재로서는 잘 작동되고 있다.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념으로 실시된  TNS 소프레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1%는 사르코의 100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75%는 세계 속의 프랑스의 위상과 관련한 사르코의 접근을 승인했다. 세계는 프랑스가 어디로 갈지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사르코가 선택한 항로에 만족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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