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여인 잔혹사 이 한을 어찌 풀꼬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7.10.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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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궁궐에 살면서 오직 왕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여자들. 위로는 상궁에서부터 아래로는 무수리까지, 이들의 삶은 궁에서 시작되고 궁에서 마감된다. 이름하여 궁녀이다. 이들이 속한 곳은 내명부이다. 내명부의 일은 왕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만큼 독립된 기관이었던 곳이다. 궐에서 사는 궁녀는 빈곤을 면하지만 왕의 소유물로 그들의 여자로서의 삶은 최악이었다. 필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대신 왕이라는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사는 그들의 일생은 비범하기까지 했다. 왕권이 휘둘리는 역사의 현장에 살면서도 역사에서 언급되지 않는 계급.
이준익 감독 밑에서 연출 수업을 쌓아온 김미정 감독은 이런 궁녀들의 삶을 영화 <궁녀>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조선 정조 대이지만 내용은 가상의 인물과 상황으로 대부분 픽션. 궁중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나선 이 영화는 시종일관 보는 이를 겁나게 한다.
타살로 드러난 궁녀의 자살 미스터리극
어느 날, 희빈전에서 일하던 궁녀 월령(서영희 분)이 서까래에 목을 매단 채 발견된다. 자살인 것처럼 보이던 이 사건은 의녀 천령(박진희 분)이 타살로 지목하고 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감찰상궁(김성령 분)도 희빈전의 심상궁도 일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깟 궁녀 하나 죽은 것을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식이다. 천령은 월령이 출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혼자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궁녀가 임신을 하고 출산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혹은 깊이 들어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다가오면서 천령은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누가 범인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라는 궁녀의 철칙이 있어서인가.
미스터리를 내세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공포영화에 미스터리가 얹어진 것 같다.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이 눈을 감게 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무시무시한 화면이 미스터리를 압도한다. 사극에 처음 입문한 박진희의 연기도 군데군데에서 힘이 너무 들어갔다. 말을 못하는 궁녀가 있다는 설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의원 정랑 이형익(김남진 분)을 연모하다 결국 제 허벅지에 글귀를 새기고 죽는 옥진(임정은 분)도 끔찍하기만 하다.
영화의 초점이 불분명해서 관객들은 혼란을 겪어야 할 듯하다. 궁녀의 한 서린 일생을 이야기한 것인지, 억울하게 죽은 궁녀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는 수사물인지, 후궁의 왕자를 원자로 앉히려는 궁중 암투극인지 그도 아니라면 좀 머리를 쓰면서 보아야 할 납량물인지 모를 노릇이다.
대부분의 역사가 남성 위주여서 역사의 이면에 살고 있던 궁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김미정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드러났는지도 궁금하다. 궁녀들이 겪었음직한 애환은 옥진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또 궁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내시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제외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궁녀라는 소재를 발굴해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궁에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을 궁녀는 우리 영화에 앞으로도 많은 소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희의 오버 연기는 차라리 재미를 주고 있다. 의욕이 넘쳐서 저 혼자 이리 치고 저리 치는 그녀의 모습은 자칫 맥이 빠질 뻔했던 영화에 생동감을 준다. 가끔씩 일부러 삽입한 것처럼 보이는 웃기는 장면도 공포에 질린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으로 ‘입봉’한 김미정 감독의 앞날에 햇빛 비추라. 10월18일 개봉.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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