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일군 땅, ‘보수’가 접수하나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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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대목’ 맞은 인터넷 언론, 이념 각축 치열…‘진보 우위’ 구도에 변화 조짐

 
요즘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가 새삼 주목되고 있다. 최근 연재하고 있는 ‘노무현 연구’시리즈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의 대표인 오연호 기자가 노대통령을 연구 중이다. 노대통령과 <오마이뉴스>의 인연은 각별하다. <오마이뉴스>가 지금처럼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2002년 대선에서 노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기성 언론이 외면하던 ‘바보 노무현’을 재조명하고 부각시키면서 뉴스 가치를 높였다.
대선 보도의 ‘성공’과 함께 <오마이뉴스>의 위상은 달라졌다. 2003년 2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후 처음으로 다른 메이저 언론을 제쳐두고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매체가 만들어진 지 겨우 3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대통령 재임의 마지막 해에 또다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는 노대통령과 비슷한 인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전면에 등장시켰다. 유한킴벌리 전 CEO인 문국현 후보이다. <오마이뉴스>는 ‘정치 시장을 우습게 본다’는 주위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대선에 뛰어든 문후보를 주목했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으로 세상에 알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군소 후보로 시작한 문후보는 평균 지지율 5%대의 중견 후보로 성장했다. 인터넷 바람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문후보와 노대통령을 동시에 부각시키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2002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인터넷 언론이지만 <오마이뉴스>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2005년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언론매체 영향력 전문가 조사에서 <오마이뉴스>는 14.1%로 6위를 차지했다. 2006년 조사에서도 4.7%로 9위였다. 어지간한 신문보다는 매체 영향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다만 떨어지고 있는 순위와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전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단계를 지나 이미 하나의 기성 언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보수 진영 약진에 온라인 정치 환경 급변
노대통령 탄핵 사태가 있기 전까지 온라인은 진보 진영의 텃밭이었다. 각종 진보적 사이트와 카페가 이미 인터넷을 선점하고 있었다. 인터넷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은 진보 진영의 놀이터였다. 각종 집회의 속보, 진보적 논객의 글쓰기, 댓글을 통한 적극적 의견 개진 등이 자리 잡으면서 독자의 충성도는 상승했다.
진보 진영이 온라인에서 강한 단결을 과시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은 정보기술의 발달과 적극적 정치 마인드로 무장한 진보 진영의 활동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그리고 보수 진영이 외면하던 온라인 세상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우리 정치사에서 큰 획을 긋는 일들이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그 시작이었고 2004년의 탄핵 반대, 4·15 총선의 열린우리당 압승이 이어졌다.
보수 진영은 반성했다. ‘인터넷 바람이 현실까지 부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고 만만하게 판단한 것이 실책이었다. 2002년 대선 패배 후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은 “대선 패배의 원인은 인터넷 세대를 배제한 데 있다. (한나라당은) 인터넷 세대에게 그들을 무시하는 정당으로 낙인찍혔다”라고 말했다. 특히 2004년 탄핵 사태는 결정적인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신문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언론은 탄핵에 찬성하는 논조를 계속 내보냈지만 인터넷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바람이 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시민 참여형 정치를 만든 인터넷은 탄핵 때도 촛불집회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장치가 되었다. 이후 벌어진 4월15일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백52석을 차지하며 여대야소 시대를 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위기 의식이 보수 진영의 인터넷 진출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4년 4월에는 대표적 보수 성향 인터넷 언론인 <데일리안>이, 2005년 6월에는 <데일리 NK>가 창간되었다.
인터넷 언론은 진입 장벽이 낮다. 늦게 뛰어든 보수 인터넷 언론은 그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진보 인터넷 언론은 독자 관리, 사이트 운영 방식, 홈페이지 디자인 등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하지만 보수 인터넷 언론은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이 성공했던 요인을 분석하고 따라 하면 그만이었다. 디자인과 댓글 방식, 시민기자 제도, 논객들을 이용한 필진 구성 등 닮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보수 인터넷 언론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온라인에서도 이념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9월18일 중앙일보는 랭키닷컴과 함께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폴리티즌’을 조사해 발표했다. 요약하면 진보 진영의 침체, 보수 진영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오마이뉴스>의 경우 2004년 3월 2백73만명이었던 방문자 수가 2007년 8월 1백38만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보수 언론인 <데일리안>의 방문자 수는 2004년 3월 10만명에 불과했지만 2007년 8월 80만명으로 급증했다. 순위에서도 <오마이뉴스>가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데일리안>, <독립신문> 등 보수 언론도 분야 순위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진보 우위의 구도가 깨진 것이다.
정당 홈페이지의 방문자 수도 큰 변화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항상 한나라당을 압도했지만 2006년부터 한나라당이 역전하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한나라당은 16만여 명의 접속자 수를 자랑했지만 열린우리당은 그 수가 5만여 명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젊은층이 주로 쓰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에 장년층 이상이 적극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2002년과는 다른 온라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적 의견에 관심을 보이는 ‘폴리티즌’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8월 정치 관련 사이트에 가장 많이 방문한 이들은 40대가 33.2%로 가장 많았다. 30대는 32.2%에 그쳤다. 50대도 12.3%를 차지해 40~50대의 장년층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펌질’ 50대 최다…인터넷 언론 보수화 주도
인터넷정치연구회가 2006년 4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의 글이나 자료 등을 옮기는 이른바 ‘펌질’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으로 50대가 꼽혔다. 서서히 ‘젊은층=누리꾼’이라는 고정 관념이 깨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년층 누리꾼의 증가가 인터넷의 보수화를 이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제 진보와 보수는 온라인에서 균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언론끼리 이념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셈이다.
인터넷 언론은 어느 정도 당파성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념적인 지형에 따라 창간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러내어 누구라고 말하지 않을 뿐, 암묵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있는 상태이다. 각 매체는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 보이지 않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태세이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 언론의 싸움이 힘겨운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오프라인의 보수화 바람이 온라인에도 불어닥쳐 과거보다 힘에 부친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후보를 조명하는 과정에서도 “인위적인 띄우기이다”라는 비판이 적지 않게 나왔다. <오마이뉴스> 이한기 뉴스게릴라본부장은 “누리꾼들의 반향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흐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싸움이 아니라 우선은 누리꾼의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을 놓고 진보 인터넷 언론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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