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경영이 ‘토사구팽’이었나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7.10.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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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1월 중국 SAIC가 채권단에 5천9백억원을 주고 지분 48.9%를 인수한 쌍용자동차에서 인수·합병에 관여했던 전 경영진을 고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쌍용차 대주주인 중국 SAIC는 최형기 전 쌍용차 부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최 전 부사장은 1심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지난 10월11일 있었던 2심 판결에서 최 전 부사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혐의로 SAIC로부터 검찰에 고소당한 소진관 전 사장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SAIC측이 불복해 항고·재항고를 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무혐의가 확정되었다.
쌍용차 전직 고위 경영진들이 비슷한 사건으로 고소되어 수사 내지 재판이 진행되었음에도 1심에서 상이한 결과가 나온 것은, 소 전 사장은 사건 초기부터 유력 변호사 2명을 선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최 전 부사장은 스스로 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믿어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2심에서 모두 무혐의 내지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애초에 두 사람을 형사사건으로 엮으려 했던 쌍용차의 의도가 무리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소 전 사장, 퇴직 위로금 반환 소송 패소
소 전 사장은 2000년 채권단에 의해 사장에 선임된 직후 쌍용캐피탈에서 일하던 최 전 부사장을 불렀다. 그러나 최 전 부사장은 SAIC가 쌍용차를 인수한 2005년 이후 소 전 사장에게 반기까지 들어가며 사실상 쌍용차 경영권을 함께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 전 사장은 최근 SAIC측을 상대로 퇴직 위로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그는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최고 경영자가 퇴직과 동시에 받는 상당액의 퇴직 위로금을 쌍용차가 지불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SAIC는 소 전 사장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SAIC는 법률 대리인으로 ‘김앤장’ 로펌을 선임했는데, 변호사 업계에서는 소송 비중에 비해 이례적인 선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소 전 사장은 본인의 비리보다는 측근들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사장 취임 때부터 자기 사람과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는 인사 스타일로 문제의 소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소 전 사장 퇴임시 동반 퇴진한 측근 임원들은 사실상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쌍용차 중국 경영진은 임원회의에서 공개리에 “소 전 사장의 측근 임원들을 쌍용차 관련 사업체에 근무하게 하지 말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최 전 부사장은 재무통임에도 해외 사업본부를 맡았는데, 해당 기간 동안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SAIC가 이렇듯 전임 최고 경영진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기업 인수 후 조직 장악력 확대 및 생산성 향상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SAIC가 쌍용차 인수 과정에서 국내 채권 금융기관을 대리해 SAIC측과 직접 협상에 나섰던 두 고위급 임원들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아 의사 결정 과정에 착오가 생겼으며, 이로 인해 SAIC 담당 임원들이 문책을 받아 발생한 ‘보복성 인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소 전 사장은 SAIC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 10개월 만인 지난 2005년 11월 전격적으로 경질되었다. 명분은 ‘실적 부진’이었고, 그의 임기를 불과 넉 달 남겨둔 때였다. 인수 과정 및 인수 후 쌍용차 경영에 관여했던 장쯔웨이, 주시엔 등 전직 중국인 쌍용차 최고 경영진이 2006년 2월 말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것도 보복성 인사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소송 건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한 법조인은 “대형 제조 업체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안들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무사할 경영인들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SAIC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쌍용차 인수 후 실적 부진,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의 잘못된 판단 등에 따른 책임을 전 경영진에게 전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 전 사장의 한 측근은 “SAIC는 쌍용차 경영권 인수시 소 전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SAIC가 이를 파기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고, 그래서 소 전 사장의 부도덕성을 억지로 만들어 소송까지 제기했다”라고 주장한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최 전 부사장은 “SAIC가 쌍용차 인수시 국내 채권 금융기관의 이익보다는 인수자인 SAIC편에서 일했다. SAIC측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 하겠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직 경영인들은 2004년 기술 해외 유출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국내 비판 여론에 맞서 ‘중국 시장의 내수 시장화’ 논리를 펴며 쌍용차 매각을 적극 옹호한 바 있다.
쌍용그룹에서 대우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다시 은행 관리까지 받았던 소 전 사장 체제는 역대 최대의 실적들을 기록했다. 소 전 사장은 1999년 이후 2005년 퇴임할 때까지 적자 사업 부문의 구조 조정과 영업망 확대를 통해 기업 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았으며, 2001년 12월에는 채권 은행 부채 1조2천억원을 지분으로 전환해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만드는 성과를 올렸다. 물론 이러한 실적들은 전 경영진 재임 기간에 있었던 선투자에 힘입은 바도 크다. 최근 실적 부진이 계속되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쌍용차를 가장 잘 아는 소 전 사장, 최 전 부사장 등 당시 실무진이 다시 구원투수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직원들. 실적 부진 계속 되자 컴백 요구
쌍용차의 한 딜러는 “소 전 사장의 컴백을 바란다. 영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 전 사장만큼 영업소의 실정을 잘 알고 영업 인력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영업 소장치고 소 전 사장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산 신차 판매 시장은 동급 차종일 경우, 소비자들은 수십 만원의 인센티브에 따라 차종 선택을 달리 한다. 쌍용차는 경영권만 중국측이 가지고 있고 예전 그대로 국내에서 모든 개발 및 생산이 이루어짐에도 소비자들은 ‘쌍용차는 중국차’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러한 국내 자동차 영업의 특성을 잘 알고 적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회사 최고 의사 결정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회사 내 일부 구성원들의 바람은 경영권을 장악한 SAIC측의 전 경영진에 대한 반감이 워낙 강해 이루어지기 힘들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SAIC측은 엔지니어 출신의 최형탁 현 공동 대표를 유임시키거나 국내 자동차업계 출신의 영업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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