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의 일그러진 초상
  • 오상길(미술작가·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 ()
  • 승인 2007.10.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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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일자 <시사저널>에는 ‘생기 없는 미술계’를 향한 따가운 질책이 실렸다. 박노영씨에게는 미술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라고는 정말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을지 몰라도, 그렇게 간단히 얘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필자는 ‘신정아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고, 냉소적인 비난보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의 노력이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정아 사건’을 통해 드러난 미술계의 치부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신정아씨는 이미 수년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되었던 사람이었고, 광주비엔날레나 미술대학의 교수 임용 비리, 미술관 및 미술 저널리즘의 파행 등도 역시 오래된 문제이다.
그뿐인가. 미술대전 심사 비리나 이중섭 위작 사건, 문화예술계 코드 인사와 문예진흥기금 편파 지원 논란, 미술 시장의 묻지마 투자 등등 실로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문제가 있다.
때문에 미술계로서는 ‘신정아 사건’이 별로 놀라울 일도 아니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길까 전전긍긍하는 이들과 자성을 촉구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냐’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세를 이룬다.

사라져야 할 미술 속의 권력들
필자도 ‘신정아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미술 제도를 통해 미술계를 통제해온 불순한 힘의 실체가 ‘신정아 사건’을 통해 부분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인사가 신정아씨의 사기 행각을 뒷받침했듯,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는 힘들과 이들에 의해 본말이 전도된 현실이 이런 사건들의 본질일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거대 행사들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졸한 작태들과 문화예술위원회의 한심한 파행 운영 등에도 분명한 원인과 배후가 있고, 미술대학들과 미술 시장의 골치 아픈 문제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술계의 진정한 골칫거리는 미술계에 개입하고 있는 정치 사회 권력들과 이들을 등에 업고 미술판을 휘젓는 사이비 미술인들 간의 음성적 커넥션이다.
그 일면이 2006년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운영 실태 조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고, 문화예술위원회가 더 이상의 정보 공개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탓에 감사원과 국가청렴위에 추가 조사를 청구한 바 있다. 그러나 관계 기관들은 확실한 물증들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조사를 기피했고, 언론 기관들 역시 보도를 회피함으로써 알릴 기회 자체가 차단되었다.
결국 이 조사 자료는 한 국회의원의 국정감사에 활용되었지만, 올해 문광부는 문화예술위원회의 파행을 주도해온 김정헌씨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바로 이런 현실이 미술계의 자정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미술은 정부와 제도 그리고 미술 현장의 유기적인 시스템 구축을 통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생각이 그저 꿈일 뿐이다. 시민들과 언론들은 신정아씨의 사기 행각에 대한 가십성 관심을 넘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또는 매년 쏟아부어지는 엄청난 공기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 등에 관심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예술가와 예술의 가치는 그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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