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14년 아성’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07.10.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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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이건희 삼성 회장 1위…이구택·조석래 회장 등 10위권 신규 진입

 
 오는 12월1일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취임한 지 20년째 되는 날이다. 그는 지난 1993년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경영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삼성은 국내 다른 기업들을 멀찌감치 제치고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일까. 이건희 회장은 지난 14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 관료 포함)’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2003년부터는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회장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사실은 이회장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이회장에 대한 지목률은 24.2%에 불과했다. 이는 2004년 38.6%, 2005년 39.4%에 비해 크게 하락한 수치이다.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에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크게 줄어드는 등 악재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그 여파로 증시에서 블루칩이었던 삼성전자 주식의 기피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올해 조사에서 이회장은 33.8%로 예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법원 판결이 끝나 에버랜드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데다 내리막길을 걷던 삼성전자 수익 구조가 상당 부분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10월12일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3분기 실적이 기대 이하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2조7백억원의 영업 이익률을 달성했다. 지난 2분기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이다. 반도체, LCD, 휴대전화 등 전사업 부문의 실적이 고르게 호전되면서 위기론도 점차 잦아들고 있다.

 

이건희 회장 지목률, 예전 수준 회복 ‘눈길’

이회장은 얼마 전 “지금처럼 가면 5~6년 후 대혼란이 올 수 있다”, “삼성이 비대해지고 느슨해졌다”라는 등의 발언을 해 삼성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재계 관계자는 “이회장이 메기론과 같은 위기론을 자주 제기해 조직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느슨해진 기강을 잡는 것 같다. 위기 의식을 불어넣어 충격을 가하는 식의 조직 쇄신 덕분에 3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회장에 이어 영향력 있는 경제인 2위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정회장은 지난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최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현대·기아차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아 그의 위상 또한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권오규 경제부총리(3위), 구본무 LG그룹 회장(4위),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5위), 최태원 SK그룹 회장(6위) 등이 뒤를 이었다.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의 순위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와 이구택 포스코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해 눈길을 끈다. 문 전 대표는 현재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였기에 ‘영향력 있는 경제인’ 7위에 뽑힌 것으로 분석된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8위)의 약진도 돋보인다. 이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회사명을 ‘포스코그룹’이라고 불렀다. 그동안 재벌을 의식해 ‘포스코 가족’ 혹은 ‘포스코 및 계열사’라고 칭하며 그룹이라는 표현을 자제해온 것을 감안하면 무척 이례적이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회장이 ‘재벌 흉내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포스코 주가는 지난 9월 중순부터 증시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 주가를 추월해 격차를 벌려놓고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용광로 기법을 대체할 파이넥스 공법을 도입한 이후 포스코의 기업 가치는 꾸준히 올라가 재벌 기업들을 뺨치게 된 것이다. 이회장의 리더십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포스코그룹’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리게 되었다.

조석래 회장 ‘이명박 발언’ 후 유명세…미래에셋 박현주 회장도 급상승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9위) 역시 영향력이 급상승했다. 조회장은 지난 3월 우여곡절 끝에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뒤 파격적인 언행 때문에 뉴스의 인물로 떠올랐다. 정부 눈치를 보면서 발언 수위를 조절했던 이전의 회장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조회장은 지난 7월23일 전경련이 주최한 ‘2007 제주 하례 포럼’에서 자신의 사돈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차기 대통령은 경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할 말은 한다”라는 소신은 좋지만 공(公)과 사(私)를 가리지 못한 처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조회장과 전경련이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서 파장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회장의 이런 ‘튀는’발언이 전경련의 위상을 많이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금융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11위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박회장은 지난 1998년 자산운용 시장에 뛰어든 지 10년 만에 이 시장을 석권하는 저력을 보였다. 적립식 펀드 가입자라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한두 개에는 가입했을 정도이다.
자산운용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독보적이다.     1백10억원이 넘는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비중은 32%에 이른다. 금액으로 치면 34조원을 상회하고 있다. 2위인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이 9조원대이고, 3위인 삼성투신운용의 주식 운용 규모가 7조원대여서 미래에셋과는 큰 차이가 난다. 박회장이 이번 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경제인 순위 11위에 오른 것은 이렇게 기업을 빠르게 성장 시킨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계 출신으로는 최고 순위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구택 회장이나 조석래 회장, 박현주 회장 등은 기업 규모만을 따지면 영향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런 사실을 감안할 때 이들 같은 CEO들이 계속 나와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향후 재계 구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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