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는 풍력발전기 “돌겠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07.10.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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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타당성 검토 없이 마구잡이 설치…잦은 고장에 발전량도 미미해 ‘장식품’ 전락

 
하늘로 우뚝 솟아 있어 보기에도 시원스런 풍력발전기. 국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풍력이 차세대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청정 에너지라는 인식 덕분에 원자력이나 화력과는 달리 거부감도 거의 없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계획의 하나로 풍력발전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사전 타당성 조사가 부실한 데다 여기저기에 마구잡이로 발전 시설을 세워 세금만 축내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한동안 순조롭게 나가는 듯했던 풍력발전 사업에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1백67기의 크고 작은 풍력발전기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백75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 규모이다. 2010년까지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2천2백MW의 전력을 얻기 위해서는 2MW급 대형 풍력발전기를 1천기 더 설치해야 한다. 1MW는 60W 백열전구 1만6천여 개를 동시에 켤 수 있는 전력량이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풍력발전에 투입한 돈은 모두 2천5백87억원. 이 금액에서 민간 기업이 투자한 6백36억원을 빼면 나랏돈 1천9백51억원이 풍력발전에 투입되었다. 여기에는 정부 보조금 4백45억원, 연구비 5백46억원, 융자금 7백90억원, 발전차액 1백70억원 등이 포함된다.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유재대 예산정책실 대리는 “2001년 들어 매년 투자액이 100억원대로 급증했다. 2001년 1백18억원이던 투자액이 2006년 5백80억원을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별 투자 규모는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지자체별 투자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풍력발전소 설치에 당장 필요한 금액인 민간 투자금과 정부 보조금을 따로 떼어 계산했다. 그 결과 총 1천81억원 중 제주도가 가장 많은 3백89억원을 투자했다. 다음은 강원도 3백39억원, 전라북도 2백72억원 순이었다. 경상북도(68억원), 전라남도(7억원), 경상남도(3억원), 인천(2억원), 충청남도(1억원), 울산 (8천만원)이 그 뒤를 이었다.

97년부터 10년 동안 2천5백억여 원 투입
세금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풍력발전은 효자 노릇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아니다’이다. 풍력발전기는 소형 풍력발전기(1백kW급 이하)와 대형 풍력발전기(2백kW급 이상)로 구분할 수 있다. 소형 풍력발전기는 고장이 잦아 거의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풍력발전기도 우리나라의 풍질(風質)이 좋지 않아 기대만큼의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의 산골마을 왕피리. 이 마을에 2005년 말 정부 보조금 4억원을 포함해 모두 5억9천만원을 들여 풍력발전기가 세워졌다. 10kW짜리 10기, 모두 100kW 규모로 33가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다르다. 풍력발전기 10기 모두 4개월째 가동하지 않고 있다. 전력을 조절하는 컨트롤박스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 여름에는 축전지에 화재까지 발생했다. 이 마을 주민 노재명씨(65)는 “풍력발전기가 생기면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전력량도 마을에 필요한 양은 고사하고 축사에 필요한 물을 데우는데 약간 사용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 여름에 강풍이 불었는데, 그때 전기를 모아두는 축전지에 과부하가 걸려 불이 났다. 풍력발전기 설치 회사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마을처럼 소형 풍력발전소를 세운 곳은 전국 18곳(49기). 1993년부터 모두 35억원을 투자했지만 현재 고장 등의 문제로 13곳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이성권 의원은 “풍력발전 시설 18곳 중 13곳이 고장 등의 이유로 가동이 중지되어 있다. 발전을 한다고 해도 소형 풍력발전기이기 때문에 발전량이 미미한 수준이다. 풍력발전이 정부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어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개에 지나지 않던 풍력발전사업 참여 업체가 2000년 들어 2백50개로 늘었다. 정부가 풍력발전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이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한전KPS 단 한 개 업체뿐이다. 사업성이 없어 자발적으로 발을 뺀 업체가 늘었고, 정부가 애프터서비스를 소홀히 한 업체들의 사업 참여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소형 풍력발전 보급 사업에 문제가 생기자 정부는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오지와 도서 지역에 한정해 풍력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 김형진 보급실장은 “소형 풍력발전시설 보급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올해에는 서해에 있는 불모도와 시루섬 등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섬 지역 두 곳에만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대형 풍력발전사업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전국에는 1백18기의 대형 풍력발전기가 있다. 대관령 49기를 비롯해 강원도에 63기가 있다. 영덕(24기), 포항(3기), 울릉(1기) 등 경상북도에는 28기가 있다. 제주에 21기, 전라북도에 6기가 있다. 지자체 중에서는 경상북도가 특히 풍력발전시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해안에 풍력 테마파크 등 에너지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형은 대폭 축소하고 대형은 크게 늘려
영양군은 2008년 10월까지 43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6월 스페인 에너지 회사인 ‘아시오나’측과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투자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영양군은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인·허가 사항을 신속히 처리하는 등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지역 풍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1차 투자액 1천2백억원과 2~3차 투자액 3천억원 등 모두 4천억원 이상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 등 기본적인 사전 검토 과정까지 생략하면서 풍력발전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상북도 지역의 한 언론사 기자는 “영양군이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업과 관련해 공청회도 하지 않았다. 사업을 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영양군 기획감사실 신광철 주무관은 “타당성 조사는 스페인 회사측이 했기 때문에 지자체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전국 지자체들이 서로 풍력발전소를 유치하느라 난리인데 타당성 조사를 따로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초속 10m 이상 바람 없는 한국은 풍력발전 부적합
사전 검토를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나라가 풍력발전에 적지일까. 영양군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덕 풍력발전단지. 총 설비용량(39MW)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영덕 발전단지에는 40m 길이의 날개 3개가 달린 80m 높이의 대형 풍력발전기 24기가 가동되고 있다. 이 풍력발전기가 연중 쉬지 않고 돌아갈 경우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연간 9만6천MW)이 생산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05년 4월 6백7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세운 풍력발전기 24기 중 8기가 기어박스 작동 오류 등을 일으켜 지난해는 10개월 가까이 가동되지 못했다. 
사전에 검토해야 할 사항은 단순한 고장 문제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바람은 풍력발전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풍력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풍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평균 초속 3~4m 이상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상업용으로 사용할 만큼 고품질의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초속 10m 이상의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야 한다. 또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이 불면 풍력발전기는 과부하를 막기 위해 자동으로 날개 회전을 멈추고 발전을 중단한다. 문제는 연중 초속 10m 이상의 바람이 지속적으로 부는 지역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영덕 풍력발전소는 연중 발전량의 70%를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철에 생산한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풍속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연중 고품질의 전기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은 “2005년 10월1일 우리나라에 있는 풍력발전기 전체 용량은 57.65MW였다. 그러나 최고 발전량은 새벽 3시에 19.32MW뿐이었다. 그나마 오후 4시 이 발전량은 0.76MW로 뚝 떨어졌다. 불과 13시간 만에 발전량이 26배나 줄어든 것이다. 이런 자연적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풍력발전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바람의 질도 잘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바람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풍력발전기가 외국처럼 넓은 평야 지대에 세워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바람이 일정한 풍속으로 연중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야가 드문 우리나라는 산 정상에 풍력발전기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산 정상에 풍력발전기를 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풍속이 있다고 해도 바람이 산이나 건물에 부딪혀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풍력발전기는 제구실을 못한다. 
환경과 생태계 파괴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1월 난산리 일대에 14.7MW 규모의 풍력발전기 7기를 건설하는 사업을 승인했다. 그러나 제주 난산 풍력발전단지 계획은 인근에 친환경 농업단지가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발전기 날개 회전 소리가 유기축산농가는 물론 생태계까지 파괴한다는 것이다. 또 겨울철 날개에 붙은 얼음이 회전할 때 떨어져나와 농가나 인근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난산리 주민들의 반발은 결국 법정까지 갔다. 결국 제주도가 환경 영향 평가 없이 승인한 대규모 풍력단지 개발 사업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10월10일 “개발 사업은 사전 환경성 검토 대상 사업에 해당하는데도 사전 환경성 검토 협의를 거치지 않고 승인 처분을 했다. 매우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이므로 승인 처분은 무효이다”라고 밝혔다. 차세대 에너지로 주목받는 풍력발전. 그러나 자연환경과 경제성, 환경 문제 등을 검토하지 않은 무분별한 추진은 에너지 개발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풍력 선진국들이 육지가 아닌 해상이나 공중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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