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에 시름시름 ‘부동산 대란’ 불씨 크는가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10.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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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논현동 강남대로변에 있는 ㅇ부동산 전문 회사 접견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하루 수십 명이 투자 상담을 위해 줄을 설 만큼 붐볐으나 요즘은 조용하다. 걸려오는 전화도 뜸하다. 가격만 묻고 끊어버린다.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부동산 회사이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개점 휴업이나 다름없다. 2백50명 이상 되었던 직원들도 이제는 1백50명대로 줄었다. 일거리가 없고 있어도 돈이 되지 않아 살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자꾸 어려워져 연말께면 1백명 이하로 줄 것으로 보여 이 회사 임원은 울상이다.
서울 개포동에서 직원 10여 명이 일하고 있는 ㅅ부동산중개업소 사무실. 이곳도 규모가 작다뿐이지 흐름은 비슷하다. 당번제로 직원 1~2명만 나오고 나머지는 휴가 중이다. 업소 대표 ㅈ씨는 영업이 하도 안 되자 중국 여행을 떠났다. 그렇다고 중개업을 접을 수 없는 노릇이어서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3월까지는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루어지는 계약이 없어 내야 할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가 몇 달치 쌓여 있다.
두 사례가 말해 주듯 부동산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기존 주택 시장마저 거래가 거의 끊긴 상태이다. 한동안 붐을 이루었던 재건축·재개발 쪽도 그렇다. 리모델링 공사로 대신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간혹 눈에 띈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주택 청약 가점제, 분양가 상한제와 국내외 악재들이 부동산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직격탄이다. 게다가 무거워진 부동산 세금, 금융권의 대출 규제도 부동산 투자를 움츠러들게 한다. 우리 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미국·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사태, 국제 유가 폭등, 달러화 약세, 중국 증시 열풍 및 추가 긴축 가능성이 국내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런 요인들이 단기간 쉽게 풀릴 가능성이 희박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원자재 값이 뛰고 분양 실적이 바닥인 주택 건설 회사들과 부동산 개발 회사, 건자재 업체들도 덩달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방 군소 회사들 가운데 올 들어 부도로 문을 닫거나 휴업하는 사례가 몇 군데 생겨났다. 수도권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인천 지역 중소 건설 부동산 회사들도 언제 부도를 당할지 전전긍긍이다. 한 회사가 무너지면 그 여파가 바로 나타나므로 공사하기를 꺼린다. 3중고(택지난, 미분양, 부도)로 더 이상 버티기가 버겁다는 것이 한 건설사 관계자 설명이다.
특히 버블 세븐 지역 중 부동산 시장이 달아올랐던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양천구 등 이른바 ‘버블 빅4’ 지역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거래가 끊긴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격 하락폭이 다른 지역보다 커 ‘부동산 대란’설까지 나돈다. 본격적인 가격 폭락 조짐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이곳 부동산가 사람과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애 태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매매·전세 가리지 않고 썰렁하다.

건설회사·부동산 개발사·건자재 업체 ‘비명’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장오현 삼정부동산 대표는 “거래가 완전히 실종되었다. 아파트를 팔려고 했던 사람들도 대선 정국 흐름을 본 뒤 결정하겠다며 매물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사겠다는 사람들도 종합부동산세를 겁내 꼬리를 내린다”라고 말했다. 올봄까지만 해도 하루 두세 건 씩의 투자 문의나 방문 상담이 이루어졌으나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일주일에 한 건도 하기가 힘들다고 부동산가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뒤 새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누그러뜨려 경기를 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으나 이 대목도 확실히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어 관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강동구, 경기도 분당·용인 등 나머지 버블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대란설’이 한갓 루머이기를 바라는 눈치다.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은 값이 평형에 따라 최고 2억원 가까이 빠졌고 매기도 한산하다. 소형 아파트나 규모가 작은 단독 주택들이 거래되어 부동산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6월 버블 논란 이후 서울의 비(非) 버블지역 집값 상승률이 버블 지역을 앞지르는 일이 빚어져 눈길을 끈다. 집값 ‘북고 남저’ 현상이 1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부동산써브 조사 자료가 잘 뒷받침해준다. 이 기간 중 집값 누적 상승률은 비버블 지역이 24.8%로 ‘버블 빅4’ 지역 11.3%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올 연초 정부의 1·11 대책 발표 이후 대출 규제 강화와 분양가 상한제 등에 따라 버블 지역은 2, 3, 4, 5월 연속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였다. 또 6월 이후에도 상승률이 이전보다 크게 둔화되었다. 반면 비버블 지역은 집값 상승세가 완만했지만 변함없이 버블 지역보다 높은 수치를 이어갔다. 서울 25개구 중 버블 논란 후 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노원구. 전체 평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40.2%였다. 이어 강북구(33.8%), 도봉구(33.2%), 관악구(27.6%), 강서구(27.3%), 성북구(26.9%), 중랑구(26.5%) 순이다.
이에 반해 ‘버블 빅4’ 중 한 곳인 양천구는 9%에 그쳐 상승률이 최저이다. 또 송파구(9.8%), 서초구(10.7%), 강남구(13.3%)가 뒤를 이어 버블 지역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위치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85㎡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 값은 수천만 원에서 최고 1억원 이상 떨어진 곳이 더러 있다. 평수가 클수록 내린 금액도 크다. 땅은 집보다 매기가 더 없는 실정이다. 올 상반기 버블 지역들의 시가 총액 역시 거품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포인트 낮아 내림세를 짐작하게 한다.

‘제2 강남’ 분당, 평형에 따라 최고 2억원 하락
이는 강남권의 재건축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정부 규제 강화와 투자자들의 심리적 위축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었다. 부동산컨설팅 전문가인 이동규 골드키경매(주) 사장은 “당국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버블 지역 부동산 시장에 냉기가 돌고 있다”라며 시장 자율 기능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더욱이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3차 오일 쇼크까지 점쳐져 그 여파가 국내 경제에 미칠 경우 서울 지역 부동산 값 대폭락은 불을 보듯 뻔해진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먼저 면적이 넓은 아파트 값이 무너지고 단독 주택 및 땅, 상가→소형 아파트→오피스텔 등의 순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외환위기를 겪었던 10년 전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버블 세븐 지역의 ‘전세 대란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울 목동을 중심으로 전세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나도는 것이다. 매매처럼 소형보다는 중·대형 하락폭이 크다. 목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 아무개 씨는 “수요가 줄어 전세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예전에는 교육과 직장 출·퇴근 문제로 목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학생을 받아줄 학교가 없어 전입이 쉽지 않은 데다 이전해오거나 새로 세워지는 회사도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버블 빅4’ 지역의 경우 한동안 전세 가격 하락으로 계약이 끝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까지 예상되고 있다. 또 전세를 내어놓은 아파트가 몇 달째 빈집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김씨의 전언이다.

 미국 주택 경기 침체 바람이 유럽으로 번지며 불안감 증폭
‘버블 빅4’ 지역의 ‘부동산 대란설’은 집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집과 상가가 한 건물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들도 ‘강남 시대 마감’을 예고하는 분위기이다. 주택과 마찬가지로 오름세 면에서 ‘강남·북 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부동산정보 업체인 닥터아파트가 올 초부터 지금까지 서울 시내 주상복합아파트 4만3천6백87채를 대상으로 값 변동을 조사한 결과에서 나타났다. 강남권은 1.69% 떨어진 반면 강북권은 1.62% 올라 대조적이었다. 강남구가 4.23% 떨어지면서 가격 하락을 앞서 이끌었다. 언론의 초점을 받은 타워팰리스 값이 내리면서 도곡동(-4.85%) 지역의 하락 폭이 으뜸이었다. 타워팰리스 1차 3백33㎡(100평)는 지난 한 해 6억5천만원 빠진 49억원 전후에 나와 있으나 찾는 사람은 없다. 3차 2백28㎡(69평)도 5억5천만원 떨어진 24억원에 호가가 나오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부근의 대치동은 0.58% 내렸다. 도곡동보다 대형이 적고 교통이 편해 실수요자를 비롯해 찾는 사람들이 꾸준해 그나마 나은 곳이다. 40~60㎡대가 주류인 대우 아이빌, 롯데 골드로즈 등은 인기가 여전하다. ‘버블 빅 4’인 서초구 양재동(0.65%), 송파구 가락동(0.62%)도 내리막이다. 양재동 신영체르니 72㎡(22평)는 1천5백만원 하락한 3억4천5백만원, 가락동 성원상떼빌 1백12㎡(34평)는 1천8백여 만원 떨어진 5억4천만원에 나와 있다. 비강남권인 관악구(14.44%), 강서구(6.51%), 동작구(5.43%) 등지처럼 값이 오르는 지역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 주택 경기 침체 바람이 유럽으로 향해 스페인, 아일랜드, 프랑스 집값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외신이 전해지면서 국내에 비상이 걸렸다. 아시아권에까지 미국 발 경기 침체가 상륙할 것이라는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를 근거 삼아 당국과 재계가 대책 마련에 나설 움직임이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우리는 독감에 걸린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같은 비관론에 대해 반대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건설·부동산 시장이 시들한 것은 단기적이지 멀리 볼 때는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등 국내 요인과 국제적 악재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2~3년 후면 부동산 값이 다시 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적게 지어 공급량이 달리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히 값이 오르기 마련이라는 논리에서이다. 따라서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집 마련 시기는 이런 시기가 아주 좋다”라며 길게 보고 사기를 권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버블 빅4’지역은 언제 가도 제값을 받을 수밖에 없어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한다. 게다가 내년 봄 새 정부가 문을 열면 지금보다 규제가 많이 풀릴 것이라는 관측도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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