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옮겨 그린 천박한 문화 욕구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7.10.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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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위작, 엉성하고 허약한 자정·검증 시스템이 부채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쯤의 일이다. 한국 화단의 거장이라 불리는 김 아무개 화백의 전작 도록 사업에 필자가 잠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재미교포 실업가 한 사람이 평양에서 사온 김화백의 그림이라면서 김화백 가족에게 구입 의사를 타진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1930~1940년대 그려진 김화백의 작품 30여 점이 북한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이 북에서 왔다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세로 길이 80㎝ 화폭에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미인이 떨기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채색화로, 가격으로 치자면 당시 호가로 1천5백만원이 넘을 듯했다. 물론 작가 특유의 화풍을 그대로 느낄 수도 있었다.
지금이야 남북 간 왕래가 잦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북에 있던 남한 화가의 작품이 넘어올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그 그림은 김화백에게 건네졌으며, 김화백도 자기 작품이 틀림없다고 확인해주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얼마 뒤 전작 도록 사업 관계자들이 그 작품에 대해 다소 미심쩍어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 작품의 제작 연도가 광복 전의 것인데, 왠지 작품이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로 정밀 관찰과 분석에 착수하게 되었다.
관찰 중 그림에서 이상한 단서가 한 가지 포착되었다. 미세한 밑그림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보통 채색화에서는 화판 밑그림에 대고 먹선을 따내는 경우는 있어도 바로 화선지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모작이나 위작의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것 하나만으로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림 그린 화가도 속인 가짜에 허탈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한 신문사 북한부 기자를 통해 알게 된 <금수강산>이라는 북한화보 잡지를 북한자료실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그 잡지에 바로 그 작품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조선의 미인도> 춘하추동 4점이 두 점씩 두 쪽에 실려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가을 미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림을 책자의 것과 비교해보니 전체적으로는 동일한데 저고리 소매 주름 같은 곳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위작으로 판정을 하게 되었으며, 반입 소지자인 그 재미교포에게도 위작임을 통지했다. 그 사람도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수긍을 하면서,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중섭·박수근 화백 위작 의혹 사건’의 윤곽이 사법기관의 수사에 의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김 아무개씨가 소장하고 있다던 2천7백여 점의 작품들이 모두 가짜라고 검찰이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작 사건이며, 실로 충격적이다. 사실 이 사건이 처음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도 그 많은 작품들이 한 사람을 통해 쏟아져나온다는 것을 별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미술 시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수긍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나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은 우리 미술계 전체의 신뢰도에 먹칠을 한 사건으로 기록되게 생겼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두 작가의 작품들은 일정 기간 거래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 것이며, 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 유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측되고 있다. 가뜩이나 ‘신정아·변양균 사건’ 때문에 미술계가 대중으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받고 있던 터에 이 사건은 설상가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 위작의 수준이 정말 질적으로 낮은 것들인데도 버젓이 거장의 작품인 양 일부가 유통까지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중학교 학생의 습작 수준을 가지고 진품으로 속여온 것도 있다.

중학생 습작 수준에도 진품으로 속아

 
신정아씨 사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위작 사건은 미술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의외로 허술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전설적인 위조 작가로서 개인전까지 열었던 존 마이엣, 베르메르, 위조범으로 유명한 반 미케렌, 스스로 위작을 그려 생계를 이어왔다고 밝힌 권춘식 등과 같은 수준도 아니고, 너무도 조잡한 것을 진품이라고 우기는 장면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 정도이다. 우리 사회의 검증과 자정 시스템이 참으로 엉성하고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저변의 견고한 문화적 체계와 층위를 갖추는 일을 소홀히 하고, 예술을 부 축적의 수단으로만 간주해온 사회 구조와 현상이 자초한 일이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의 그림 위조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조잡한 그림들이 굴지의 경매 회사에서까지 유통되었을 정도로 허약하고 엉성한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이에 관련된 업계, 언론 등의 도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작의 문제는 사실 미술 시장이 본격 출범된 1980년대부터 제기되어왔다. 1991년 천경자씨의 <미인도>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었으며, 오히려 자정 시스템은 더 퇴보한 느낌을 준다. 사실 이번 위작 사건은 그나마 한눈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가짜였으니 망정이지, 고도의 위작 솜씨를 가진 위조범들의 조직적 범죄였다면, 아직 미궁 상태였거나 애초에 문제 제기조차도 안 된 채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위작은 소비자들의 필요에 의해서도 생산된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오히려 소비자가 스스로 위작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사동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일부러 거장이나 원로 작가들의 가짜 그림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딱 한 번 건네져야 할 뇌물로는 가짜 그림이 최고이다. 진품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위작품을 사서 뇌물로 건네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가짜임이 밝혀져도 소용없고, 또한 뇌물을 받은 사람이 내놓고 감정을 받기도 쉽지 않다.
 가짜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공신력 있는 유통 경로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작품을 순수하게 향유하려고만 한다면 이러한 유혹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 요컨대 가짜 그림이란 천박하고 허황된 문화 욕구가 만들어낸 부메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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