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표심’은 갈 곳을 잃어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7.11.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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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내린 정치 세력 없어…“관망 중” “뽑아놓으면 뭐혀” 지역 출신 대선 후보들에게조차 ‘싸늘’

 
“글쎄, 아직은 몰러.” 대전 시내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하는 엄춘자씨(62)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생각이냐’라는 질문에 “검증을 더 해야지. 아직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어”라며 답변을 뒤로 미루었다. 다만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라며 ‘경제’를 첫 번째 투표 기준으로 삼았다.
인근 노인복지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 중이던 할아버지들도 “아직은 몰러”라며 즉답을 피했다. “우린 관망 중이여”라는 맞장구와 함께 “뽑아놓으면 뭐혀”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딱 부러지게 ‘누구’라는 답변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충청 표심은 ‘선거 당일 하는 출구 조사도 믿을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하기 참 힘든 곳이다’라는 이 지역 정치인들의 하소연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충청 지역 특유의 정서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지역에 깊숙이 뿌리 내린 정치 세력이 없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김종필 전 총리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맹주 역할을 해왔지만 대선에서 그는 늘 조연에 머물렀다. 큰 경기에 선수를 내보내지 못하자 충청은 자연스럽게 영·호남 정치 권력의 변방쯤으로 여겨져왔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충청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대권에 도전했지만 둘 다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켰다.
건물 경비를 보는 조호승씨(47)는 “예전 ‘DJP 연합’ 이후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충청도를 전라도와 한 묶음으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게 말이나 되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랑 여기는 아예 다르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보다 더 멀지도 모른다”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김 전 총리의 정계 은퇴 후 사실상 공석이 된 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이인제 후보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의 경쟁이 치열하다. 충남 논산 출신인 이후보는 대선을 50일 남겨놓은 지난 10월3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선대위 출범식 및 전진대회를 성황리에 치렀다. 행사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만여 명의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주변 일대에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하지만 이날 ‘충청도 대통령’을 연호하며 보여준 뜨거운 열기가 체육관 밖으로 나와서는 충청 민심의 호응을 얻지는 못한 듯해 보인다. “저런 거 백날하면 뭐혀”라는 냉소적 반응이 나왔다. 택시기사 김성호씨(43)는 “이인제 후보야 논산에서나 왕이지 다른 곳에서는 지지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뽑아놓으면 국민들 업신여기는 정치인들 또 뽑아주면 뭐 하나”라는 불신 분위기도 팽배했다.

이명박 지지자들 ‘소신’ 보여

충남도지사를 세 차례 역임한 심대평 후보 경우 지난 4·25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중앙 정치 무대에서 위상을 높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씨는 심후보에 대해 “충남에서 도지사하면서 평가가 좋았는데 대통령감인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조영현씨(39)는 “심대평 후보가 충남에서는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은 표를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런데 그 사람 대선 끝까지 가겠나? 아마 중간에 관두고 누구 손 들어줄 것 같다”라고 내다보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대체적으로 속내를 잘 털어놓았다. “이후보를 찍을 것이다”라고 밝힌 공인중개사 김수열씨(58)는 “여당 편들던 사람들이 말이 없어졌다. 다들 모이면 ‘이번에는 잘 뽑아야지’ 그런다”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여부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김씨는 “이회창 지지자들이 충청도에 많다. 이 전 총재가 나오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던) 충청 표가 갈릴 것이다. 둘이 나오면 둘 다 안 된다”라는 ‘우려 섞인’ 예상을 했다. 이 전 총재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지역 정치권에서도 감지되었다. 한나라당 충남도당 박희조 사무처장은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여부를 놓고 지역 민심이 들썩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초 예상한 선거 구도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고약하게 돌아가고 있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전시당 송태호 사무처장은 “이 지역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관심이 크다. 또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도 높다. 열린우리당이 워낙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찍겠다는 경향이 있는데, 두 사람의 행보에 따라 지역 민심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상대 후보의 지지율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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