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개성 동영’ ‘이이제이’로 웃을까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11.03 15: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동영 후보 대선 길 ‘체증’…‘이회창으로 이명박 제압하기’에 기대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알라 했던가. 패운이 깃드는 경선 캠프를 가보면, 부쩍 점쟁이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손학규 캠프가 경선에서 밀릴 때도 그랬다. 캠프 내 단골 메뉴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차길진 법사이다. 차법사는 지난 2002년 누구도 노무현 후보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을 때 그의 당선을 점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무궁화 피는 동산에 학이 나네”(무궁화는 박근혜, 학은 손학규)라고 했다. 패색이 짙어 실의에 빠져 있던 캠프 관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는 곧 손후보의 당선으로 해석되었고, 캠프 관계자들은 차법사의 말을 기자들에게, 또 유권자들에게 전하기 바빴다. 
요즈음 정동영 캠프에도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차법사가 정후보 진영의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해서이다. 정후보의 캠프에서 흘러나온 차법사의 게송(偈頌)과 그 해설.
“무궁화 피는 동산에 학이 나네”(박근혜 주위를 손학규가 배회)
“홀연히 사라지니 어디로 갔는가”(박근혜·손학규 둘 다 갑자기 사라지고 없음)
“적운(積雲)이 떠난 자리” (적운=박근혜·손학규)이 떠난 자리
“오색 무지개 찬연하네” (오색 무지개=이명박, 무지개가 자주 뜨는 청계천을 상징)
여기까지는 청와대 주인이 이명박 후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차법사가 한마디 더 붙였다고 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듭니다. 바람이 동쪽에서 분다고 동쪽을 향해 가면 안 됩니다. 거긴 봄이 아닙니다. 서쪽의 찬 눈 속에서 매화가 피어나고 있는 형국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람은 이명박 후보의 고향인 동쪽에서 불지만 매화가 피는 곳은 ‘서쪽’이라는 해석이다. 캠프 쪽 관계자들은 “지금은 정후보가 ‘서쪽의 찬 눈’에 덮여 있지만 막판에 지지율을 올려 결국 ‘매화(대권)’를 피울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캠프가 초조해졌다는 반증이다. 왜일까? 바로 ‘이회창 출마설’ 때문이다. 정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한때 지지율이 20%에 접근하자 캠프 전체가 승리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이때에는 차법사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명박 후보를 ‘한방’에 보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심감에 넘쳐 있었다. 그런데 돌연 ‘이회창 출마설’이 돌출했다. 어느새 언론에 보도되는 대선 구도는 ‘이명박 대 정동영’이 아니라 ‘이명박 대 이회창’이다. 더구나 이회창 전 총재는 지지율이 20%를 넘으며, 일약 2위 후보로 부상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정후보는 3위로 밀렸다. 과연 정후보는 12월의 찬 눈 속에서 매화를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한다면 그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개성 동영’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통일부장관 시절 문을 연 ‘개성공단’에 대한 특허권 행사인 셈이다. 나아가 “개성 동영이 ‘운하 명박’을 물리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만들어냈다. 정후보가 한반도 대운하를 내세운 한나라당 이후보를 누른다는 레토릭이다. 그러나 인터넷 여론은 사뭇 다르다. 인터넷에서 그는 ‘개성 동영’보다는 ‘곶감’‘효도 정’‘구정물 동영’ 등 비아냥대는 호칭들로 불리고 있다. ‘곶감’은 신당 대선 후보 토론에서 유시민 후보가 “정후보에게 참여정부는 곶감 항아리” “가끔 와서 빼 가시기만 하고 의리는 안 지킨다”라고 조롱한 데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 정부 황태자로, 2인자로,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일부장관을 지내고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해체에 앞장선 그를 비난했을 때 쓴 용어이다. ‘구정물 동영’은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떼기’ 논란, ‘효도 정’은 “노인들은 투표장에 안 나오셔도 된다”라는 그의 노인 폄하 발언을 거꾸로 비꼰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컴도저’로 불리기를 원한다. 무대포 같은 불도저가 아니라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후보는  ‘땅박이’‘땅떼기’가 거의 인터넷 공용 호칭이다. 4백억원에 육박하는 부동산과 전국에 널린 그의 친인척 부동산을 이런 식으로 비꼰 것이다. 때문에 정후보가 낙담할 이유는 없다. 네거티브 이미지에서 두 후보는 오십보 백보이다. 그러나 지지율 50%를 넘는 이후보와 10%대의 정후보가 같을 수 없다. ‘개성 동영’ 전략은 일단 실패했다.
정후보는 지지율에서 3위로 밀려났다. 한때 20%를 넘었다는 수치도 있었지만 메이저 여론조사에서는 한번도 20%를 넘지 못했다. 후보로 확정된 뒤 연일 TV에 얼굴을 비치고, ‘가족 행복 시대’를 내걸고 총력전에 나선 뒤여서 캠프 쪽 답답함은 더하다. 10월 말까지 20%를 돌파하겠다는 목표는 물 건너갔다.
이렇게 되자 후보 단일화 상대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9.1%), 민주당 이인제 후보(4.2%)는 “정후보가 별거냐”라며 각자 뛸 태세이다. 그러니 범여권 표마저 분산되어 지지율 10%대의 ‘3위 후보’로 고착화되는 모양새인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범여권후보 단일화’도 공수표가 될 판이다.
지지율 정체를 벗어나려는 정후보의 노력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비장의 경고’로까지 발전했다. 그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대통령을 향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거기에 함축된 뜻은 “이명박 후보로부터 정치 보복을 당하기 전에 나를 밀어 달라”라는 것이다. 신당 대선 후보가 된 뒤 “노 대통령의 협력을 얻고 싶다”라고 여러 차례 간청했지만, 노대통령이 차가운 반응을 보이자 숙고 끝에 나온 경고로 들린다. 노대통령이 “당에서 내가 쫓겨난 것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후보가) 풀어야 한다”라고 말한 직후이다.

노대통령에 날 세웠지만 지지율 띄우기에는 별무 효과

물론 노대통령은 범여권 후보로서 정후보의 정통성과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지지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노대통령은 정후보의 면담 요청에 “(정후보 선출에)  승복하는 것하고, 지지하는 것하고, 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하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감정상의 문제, 인간적인 감정, 인간적인 도리에 대한 문제가 있다”라고도 했다. 노대통령은 또 “열린우리당의 가치라든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든가. 창당한 당을 깨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들어봐야겠다”라며 “내가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잖아요”라고 분함을 표했다. 고건, 정운찬, 손학규에 이어 정동영에 대한 노대통령의 엘로우카드가 통했을까? 정후보는 ‘치밀한 계산 끝에’ 노대통령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그의 지지율은 그 후 3위로 추락했다.
김 새는 소리도 안에서 들려왔다. 유시민 의원이 ‘이명박 당선’을 아예 못박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겠지만, 집권 1년 반 정도가 지나면 어려움에 직면해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음식점에서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이다. 이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좌절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악담이었지만 어쨌든 전제는 ‘이명박 당선’이다.
더 고약한 것은 그가 정후보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정후보 정책에 현실성이 없다”라며  “희망을 걸 데가 없는 국민이 불쌍하다”라고도 했다. 이어 “정후보가 나를 국민대통합위원으로 임명했는데 경북 지역을 맡아달라는 뜻이지만 내가 고향만 경북(경주)이지, 별 기반이 없어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정후보와 거리를 두었다. 목숨 걸고 선거운동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후보 경선 때, “정후보는 한나라당이 만세를 부를 후보”라며 “이명박 후보와의 싸움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수준”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비단 유시민 의원뿐 아니다. 이해찬 후보 진영에서는 아예 ‘내년 1월 전당대회’를 목표로 당권을 잡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후보가 역점을 둔 선대위의 ‘꽃’은 ‘가족행복위원회’이다. 정후보가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가족 행복’과 유권자들이 선거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UCC’(User Created Campaign)를 접목시켜 UCC를 통해 ‘가족 행복 시대’를 연다는 것이 초점이다. ‘UCC 선대위’라는 선거 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실험’을 통해 ‘가족 행복’을 모토로 자발적 유권자 참여운동의 붐을 일으킴으로써,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낸 ‘희망돼지 저금통’의 신화를 재현한다는 복안이다. ‘희망돼지 저금통’의 업그레이드판으로, 2002년 당시 국민참여운동 본부장을 맡아 ‘돼지아빠’로 불렸던 정후보가 이번에는 ‘행복 아빠’로의 변신을 꾀한다는 것.

 

대표 공약 ‘가족 행복’의 초라한 성적표

정후보의 ‘가족 행복’은 교육·주택·일자리·노후 등 국민의 4대 불안을 해소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뼈대이다. 이를 뒷받침할 공약으로 △정년 70세까지 연장 △수도권 평당 6백만원 미만 30평(99㎡)형 아파트의 3억원 이하 공급 등을 제시하고 있다. 민병두 대선기획 전략기획실장은 “정후보의 행복은 연대·배려·나눔을 의미하며, 가족의 행복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후보는 지난해 당의장 시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필패론’에 직면하자 선대위 명칭을 ‘246개 행복주식회사 추진위원회(행추위)’로 정했고, 김한길 원내대표 등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행추위 내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운동본부도 세웠다. 따라서 정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가족행복위’는 지난 지방선거 때의 ‘행복추진위’와 붕어빵이다. 당시  정후보는 전북도지사 선거에서만 겨우 이기는 참패를 기록했다.
정후보가 내세우는 ‘가족’은 이명박 후보의 ‘성공’에 비해 소극적으로 비칠 수 있다. ‘성공’이 거칠지만 진취적 개념을 갖는 반면 ‘가족’은 축소 지향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 정후보측의 고민거리이다. 통합신당 관계자는 “‘가족’이라는 틀에 갇힐 수 있다”라고 실토했다. 그렇다고 슬로건을 바꾸기도 어렵다. 정후보가 ‘가족행복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며 ‘가족’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인물난도 겪고 있다. 이명박 후보측이 황영기 전 우리은행 회장 등을 포함해 중량급을 영입해 선대위를 구성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정후보 진영은 외부 인물 수혈이 저조하다. 선대위원장을 오충일 대표, 손학규 전 후보, 이해찬 전 후보, 김근태 의원등  4인으로 구성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외부 영입 대상으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이수성 전 총리 등이 거론되었지만 그저 희망 사항 수준이다.  선대위 초기부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결심을 하지 못했고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의 참여 여부도 미지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비호남권 인사들의 탈당설도 흘러 나오고 있다. 정후보측은 “뜸을 들이는 중”이라지만 선거는 불과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 공약도 ‘백약이 무효’이고 이래저래 안팎 곱사등이다.
이제 남은 유일한 희망은 이이제이(以李制李)뿐이다. 이회창 후보로 이명박 후보를 치는 것이다. 정후보의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인 민병두 의원은 “이 전 총재로 이명박 대세론이 꺾이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미래 세력 대 과거 세력의 구도 설정이 힘들었는데 이 전 총재가 나와 이후보와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미래 세력이라는 주장이 용이해졌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 쪽도 다급해졌다. 여론조사 결과 이 전 총재의 지지율 중 상당부분은 이후보 쪽에서 옮겨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전 총재가 출마한다면, 정후보가 원하는 대선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50%에 육박하는 이후보의 지지율이 이 전 총재와 반분되고, 대신 단단한 호남을 기반으로 고정표를 갖고 있는 정후보가 이기는 게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 전 총재는 출마한다 해도, ‘제2의 이인제’는 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막판까지 따라 잡지 못하면 오히려 이명박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후보 단일화’는 범여권에서가 아니라 야권에서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결정타는 있을 수 없다.
과연 정후보는 이이제이에 성공할까? 자칫 이이제이의 술책만으로 왕조의 생명을 이으려 했던 고종의 쓰라린 역사 실패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그래도 희미한 희망의 불빛이 BBK 사건의 주범 김경준씨의 귀국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