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파이팅으로 ‘문’ 닫고 ‘이’ 잡기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0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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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후보, 민심 탐방 통해 지지율 띄우기 잰걸음…지지층 겹치는 문국현 후보 우선 겨냥

 

대선판에서 민주노동당이 보이지 않고 있다. BBK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더니 이제는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여의도 정치판을 떠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1만명을 만나겠다는 의미로 ‘만인보(萬人譜)’라고 부르는 민생 탐방이다. 기존의 미디어에 의존한 선거 형태를 버리고 직접 민중들을 가슴으로 만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미디어 선거가 디지털 방식이라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승부하기로 한 셈이다. 물론 권후보가 이런 방법을 선택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지난 9월15일 권영길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 나타난 민노당의 ‘갈짓자’ 선거운동은 당내에서 비판을 불렀다. 후보 선출 다음날인 16일, 권후보는 민노당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그동안 친일파나 군사 독재 부역자가 묻혀 있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곳이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 외연을 넓힌다는 의미로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시도와는 달리 권후보가 통일 한국의 모습을 지향하며 내건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 민노당의 대표 슬로건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면서 “과연 ‘살림살이’가 화두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통일론을 전면에 내세워 승산이 있겠느냐”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연 넓히기와 어울리지 않는 진부한 모습이라는 주장이었다.
통합 선거대책본부가 꾸려지는 것도 늦어졌다.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갈등을 봉합하느라 10월6일에서야 인선이 이루어졌다.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심상정·노회찬 의원의 역할이 진작부터 필요했지만 일정이 늦어진 탓에 두 의원의 활약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율이 평균 3~4%대에서 정체된 것은 권후보의 현실이었다. 9석의 의석을 가진 원내 3당의 후보가 지지율 4~5위를 기록하는 현실, 무소속 후보에게조차 지지율이 밀리는 현실은 민노당의 선거 전략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언론 노출이 부족하다는 당내의 불만이 나왔다. 민주노동당 미디어 홍보위원회는 지난 10월6일부터 12일까지 3대 방송(KBS, MBC, SBS)과 5대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경향, 한겨레)의 정당 및 후보자 관련 뉴스를 조사했다. 그 결과 방송의 경우는 총 80건 중 민노당 관련 뉴스가 단 1건, 신문의 경우 총 2백66건의 보도 중 2건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당도 없던 문국현 후보 관련 기사가 방송 2건, 신문 14건이었다.
서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성도 나왔다. 언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진보 정당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만인보와 11월11일 서울에서 있을 1백만 민중대회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권후보가 만인보를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지금 이 순간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론이 흘러나왔다. 모든 후보들이 정치판 중심에서 이슈파이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중소도시와 농촌을 돌며 민심 탐방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었다. 후보의 지지율은 언론 노출 빈도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작스런 만인보 결정은 지역 선대위의 활동 계획을 꼬이게 만들었다. 민주노동당의 지역 활동가들은 “만인보 때문에 지역 계획 로드맵을 다 바꿔야 할 지경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둘러싼 문제가 딜레마 될 수도

하지만 권후보는 “1백만 민중대회를 조직하기 위해 지역에서 간담회를 마련한다면 후보가 찾아가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만인보를 통해 거리의 민심을 움직이고 ‘반 FTA, 비정규직 철폐’를 외칠 1백만 민중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에 승부수를 던졌다.
게다가 만인보가 시작된 이후 선대본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분담되었다. 권후보는 지역에서 대면 접촉을 늘리고 심상정·노회찬 공동 선대위원장은 중앙에서 국정감사와 언론 접촉을 통해 민노당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그간 실종되었던 민노당의 이슈파이팅은 국정감사와 ‘삼성 비자금 사태’를 통해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월23일 권후보가 전남 화순을 돌고 있을 때 서울의 노회찬 의원은 “문국현 후보의 유류세 폐지 주장은 반환경적이다”라고 반박 논평을 내며 문후보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심상정 후보 역시 같은 날 “문후보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비정규직 해법과 양립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문후보와의 토론을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은 문후보가 자신들의 지지층을 흡수한다고 판단했다. 자연스레 우선 공격 대상으로 문후보를 지목한 것이다. 심의원과 노의원은 권후보의 지지율 향상을 위해 다른 후보와 각을 세우는 일에 공동 보조를 취하며 돕고 있는 모양새이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권후보는 만인보를 통해 선대본의 문제를 일단락하고 선거운동의 유기적 움직임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월30일, 전주 전북도청 전북 지역 만인보 마무리 기자회견장. 권후보는 “노동자와 농민을 일으켜야겠다는 제 생각은 오히려 저를 일으켜주시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과 격려에 기운을 얻었습니다”라는 발언을 통해 만인보 과정에서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 요소는 있다. 지난 10월28일 새벽, 권후보는 만인보를 하고 있던 전북이 아니라 서울의 한강성심병원 분향소에 있었다. 인천의 비정규직 전기원 노동자인 고 정해진씨는 10월27일 단체협약을 묵살하는 사측의 횡포에 고통받다가 분신해 사망했다.
권후보가 고 정해진씨의 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작은 소동이 일었다. 민주노동당의 태도에 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항의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11일 민주노총이 빠진 채 한국노총이 노사정 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합의했을 때 민노당 문성현 대표는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며 거세게 비판했었다. 문대표의 말에 화가 난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정책 연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문대표는 지난 10월15일 한국노총에 당시의 발언을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는 ‘비정규직 악법을 만든 한국노총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은 대선을 위한 표 계산 때문 아니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외연 확장’과 ‘원칙 견지’라는 진보정당의 가장 큰 딜레마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1997년 30여 만 표, 2002년 90여 만 표.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과거 성적표이다. 만인보를 하고 1백만 민중대회를 하는 이유는 민심을 모으고 과거보다 많은 득표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년 4월에 있을 총선까지 그 기세가 전달된다. 2004년의 10석보다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해야 진보정당으로 기성 정치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1백만 민중대회에 모인 인원이 생각한 것보다 적을 경우 여기에 많은 힘을 쏟은 민노당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대선 레이스에서 지금보다 더 홀대받을지도 모른다. 보수 정당은 이미 많은 뉴스거리를 생산하며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민노당이 설 자리는 더 좁아들지도 모른다. 2002년의 ‘부유세’는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 취지만은 국민들에게 인정받았다. 진보 정당만의 과감한 이슈 제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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