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광인 이론’ 다시 광내나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7.11.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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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의 베트남전 전략, 부시 행정부에서 부활…3차대전 운운하며 이란·북한 압박

 
베트남 전쟁 당시 닉슨 외교의 미스터리로 등장한 ‘광인 이론’(madman theory) 혹은 ‘광인 전략’(madman strategy)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광인 이론은 미국 대통령이 자제력을 상실하고 ‘미치광이’가 되었으니 상대방은 알아서 행동하라는 최후 통첩을 통해 외교적 실리를 챙기는 일종의 외교적 충격 요법이다.
닉슨은 파리 평화회담에서 월맹의 호치민(胡志明)이 말을 잘 듣지 않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통해 하노이에 극비 정보를 흘려보냈다. ‘닉슨은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공산주의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심리적 발작 상태에 이르렀다. 닉슨을 자제시킬 수 없다. 그의 손은 핵 버튼에 올라가 있다. 2일 내에 호치민이 파리에 나타나 평화를 호소하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올지 장담할 수 없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닉슨은  취임 6개월 만에 월맹에 이 이론을 사용했다.
1969년 10월 닉슨은 미군에 3차 대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그런 엄청난 일을 준비해야 할 도발이 없었기 때문에 군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했다. 3차 대전의 목적에 관한 설명도 없었다. 어쨌든 핵을 장착한 전투기들은 민간 공항에 위장 배치되었다. 미사일을 적재한 잠수함들도 요지로 파견되고  공격 목표 선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준비에 착수했다. 그해 10월27일 닉슨이 진짜로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극적 조치로 미 전략공군사령부는 핵무기를 탑재한 B-52 폭격기들을 소련을 향해 발진시켰다. B-52 18대가 미국에서 이륙했다. 작전명은 ‘거대한 작살’(Giant Lance). 폭격기들은 알래스카 국경을 넘어 KC-135 급유기로부터 공중 급유를 받았다. 편대는 타원형으로 소련을 포위하는 18시간의 예행 연습을 완료했다. 이 작전 훈련은 3일간 계속되었다.
닉슨은 자신의 광인 이론 덕분에 놀란 소련이, 역시 기절초풍하고 있는 하노이에 평화 협상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믿었다. 만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도 닉슨처럼 행동했다면 세계는 3차 대전의 비극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당시 소련은 닉슨의 음모에 말려들었으나 호치민은 속지 않았다. 닉슨의 광인 이론은 일부 효과를 보기는 했으나 말 그대로 미친 행동이다. 어쩌면 그 후에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이 이론에 근거했는지 모른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0월25일 잊혀져가던 이 광인 이론이 지금 부시 행정부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 전략은 강경파 딕 체니 부통령에 의해 재가동되고 있다. 형태는 이란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부시의 경고로 나타났다. 이 이론이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와 군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부시에게는 우선 시간이 없다.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계산할 여유도 없고 더구나 임기 말에 접어든 부시를 위해 이런 전술을 동원하는 것이 타당한지 차분하게 따져볼 정신적 여유도 없다. 그는 그러나 닉슨이 재미를 본 전술을 자신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체니는 자신도 닉슨처럼 완전히 미쳤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그래서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이란을 실제로 공격할 수 있다는 냄새를 풍긴다. 이란이 세계에서 테러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임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시의 북부 이라크 정책도 광인 이론의 또 다른 본보기이다. 부시는 북부 이라크 내 쿠르드 민병대를 공격한 터키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쿠르드 게릴라들을 도발시켜 이란과 무력 충돌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란의 태도가 묘하다. 제발 이란을 공격해달라는 것이다. 부패와 무능으로 신뢰를 잃은 이란 지도층은 미국이 핵을 이유로 이란을 공격할 경우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전략가들은 광인 이론이 자칫하면 이란의 함정에 말려들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광인 이론이 21세기에는 약효가 없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다.

전략가들 “광인 이론 쓰다 이란 함정에 말려든다” 경고

체니를 중심으로 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들은 시리아 내 북한 관련 핵 시설을 공습한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더욱 고무되었다. 이 공습은 북한을 움직이는 것 같은 조짐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자신들의 이란 전략을 충분히 정당화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시간이 촉박한 것처럼 서두르면서 전쟁의 북소리를 높인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3차 대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투로 거의 협박 수준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네오콘의 대부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인 줄리아니의 고위 보좌관 노먼 포드호레츠는 논리적 뒷받침이 될 때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부시가 사담 후세인을 히틀러에 비유한 것과 유사하다.
네오콘들의 광인 이론 동원은 2008년 대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1차적으로 주요 문제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힐러리를 겨냥하고 있다. 이를 눈치 챈 배럭 오바마는 힐러리와는 반대되는 전략을 쓴다. 네온콘의 중심 인물인 존 볼튼 전 유엔대사도 최근 저서에서 이란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지금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비난했다. 그는 기어코 핵을 보유하려는 이란을 상대로 한 당근 전략은 시간 낭비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부시 1세 행정부 시절 관리들마저 우려를 나타낸다. 즉 부시 2세 행정부 관리들이 지나친 흑백 논리에 빠져 매우 위험한 정책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역시 광인 이론 신봉자들의 말을 더 경청하고 있다. 그는 이란의 핵 야망을 거론하면서 유럽에서의 미사일방어망계획(MD)을 두둔했다. 비판이 일자 그는 이란이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구실을 댔다. 패트 부캐넌 전 상원의원이 자신의 저서 <하드볼(Hardball)>에서 지적했듯이 부시와 체니는 곡예 비행을 하고 있다. 이들이 신뢰를 잃지 않고 무사히 백악관을 떠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카우보이들은 한 번 미치면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는 속설을 상기시키고 있는 셈이다.
체니의 광인 이론이 북핵 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부시가 최근 회견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핵 불능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한 대목에서 희미한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일사천리로 가던 북핵 문제가 요즘 비틀거리는 조짐을 보인다. 북한이 연말까지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한반도에 새로운 위기가 온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뉴욕 필하모니의 평양 공연을 재고하라는 미국 내 일각의 주장도 관심을 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허둥지둥 한반도 종전선언을 준비하다가 헛발질만 하고 차기 정부로 넘긴 노무현 정권의 모습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닉슨의 광인 이론이 세월을 초월해 언제까지나 효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부시의 MD 계획에 대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상기시켰다. 쿠바 위기는 소련의 양보로 해소되었다. 푸틴은 MD 위기에서는 미국이 양보할 차례라고 말한다. 부시의 속셈을 알고 있다는 반응이다. 김정일도 부시의 속셈을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부시의 대북 정책이 광인 이론에 의한 것이든 단호하고 현실적인 전략에 의한 것이든 그것이 효과를 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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