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0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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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삼각지대 누볐던 ‘마약왕’ 쿤사
 
동남아시아인으로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마약왕’ 쿤사가 죽었다. AP통신은 ‘지난 10월26일 마약왕 쿤사가 영화 같은 삶을 마무리했다’라고 10월30일 보도했다.
쿤사는 1933년 버마 북동부의 소수 민족인 샨족 거주 지역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 국민당 잔당으로부터 전투와 양귀비 재배법을 익혀 황금의 삼각지대(골든 트라이앵글)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나갔다.
쿤사가 주름잡던 골든 트라이앵글은 타이·라오스·버마 3국의 접경 산악 지역이다. 아편 생산에 최적의 기후와 자연 조건을 갖추었다고 알려져 있다. 생아편만 연간 1백만t 정도를 생산한다. 쿤사는 이 지역 인근의 소수 민족에게 아편 생산을 강요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을 군사력 확대에 쓰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지대공 미사일까지 보유했을 정도이다.
쿤사가 세계 마약 시장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컸다. 한때는 미국 뉴욕에 반입되는 헤로인의 80% 이상을 남미 지역이 아니라 쿤사가 보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마약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야바(YABA)라는 신종 마약이 그것이다. 헤로인으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히로뽕, 헤로인, 코데인 등을 섞어 만들었는데 강한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한 알만 복용하면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각성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해 사회 문제로 번진 적이 있다. 쿤사의 힘은 이처럼 대단했다.
참다못한 미국이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1989년 미국 뉴욕 지방법원은 마약 밀매 혐의로 쿤사를 기소했으며 당시로는 큰 액수인 2백만 달러를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2000년에는 백악관이 국제 마약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12명의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쿤사를 직접 지명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인과 거래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쿤사는 결국 버마의 양곤으로 피신해버렸다. 쿤사는 당시 버마 정부군과 대립하던 샨족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버마 정부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갈 곳이 필요해지자 자신의 병력과 장비를 버마 정부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사면을 받고 양곤으로 숨어들어간 것이다.
미국도 잡지 못한 쿤사를 잡은 것은 병이었다. 쿤사의 최측근 인사는 “쿤사가 최근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을 앓았다”라고 사망 원인을 밝혔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것을 염려해서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선택했다는 것. 아마 악행 때문에 자신이 편히 누울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대검찰청 마약부는 우리나라 마약 투여자 수를 약 20만명으로 보고 있다. 우리 이웃 2백명당 1명이 쿤사의 후예들로부터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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