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보고 뛰나, ‘클럽’ 보고 뛰나
  • 한준희(KBS 축구해설위워 <풋볼위클리> 편집장) ()
  • 승인 2007.11.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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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문화로 본 유럽 프로축구의 이면 / 라이언 긱스 등 ‘한 클럽 사나이’들 돋보여

 
1990년대 들어 심화되기 시작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요즈음의 유럽 클럽 축구는 가히 ‘돈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판에 넘실대는 과도한 돈의 물결이 ‘피플스 게임(people’s game)’의 기본 정신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도 금전적 측면은 어느덧 유럽 축구에서 제거되기 어려운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클럽의 살을 찌우는 천문학적 중계권료와 스폰서 비용뿐 아니라,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선수들의 이적료 및 연봉 등 다양한 유형의 ‘돈’이 포함된다. 물론 후자의 ‘돈’은 클럽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핵심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점점 더 많은 돈이 축구판에 흘러다니면 다닐수록, 축구판에서 ‘헌신’ 혹은 ‘신뢰’와 같은 단어를 발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특히 선수에게는 더 높은 연봉을, 에이전트에게는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선수들의 이적은 그것이 어떠한 유형의 것이든지 간에 이제는 그렇게 큰 놀라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여러 해 전 토튼햄의 솔 캠벨이 ‘철천지 원수’ 아스날로 둥지를 옮겼던 유형의 이적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태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이전 팀 서포터들의 ‘분노’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제3자적 입장에 있는 팬들에게는 어쩌면 그러한 이적조차도 ‘거액이 왔다갔다하는’ 현 세태의 많은 이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실상 요즈음의 축구팬들은 “저는 클럽을 위해 평생토록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 클럽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라는 선수들의 (지극히 교과서적인) 인터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뢰하기 어렵다. “저는 클럽을 위해 계약이 끝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이 어찌될는지는 모릅니다. 축구 세계에선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이지요”라는 (역시 교과서적인) 유형의 인터뷰가 차라리 더 현실적이다.

‘천연기념물’ 뒤에는 ‘정성과 자존심’이

우리는 니콜라스 아넬카가 일곱 번째 클럽에서, 호삼 미도가 여덟 번째 클럽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 놀라지 않는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에게는 카디프시티가 열 번째 클럽이고, 크리스찬 비에리에게 피오렌티나는 열네 번째 클럽이다. 피에르 반 호이동크가 열 개의 클럽에서 활약했다는 사실도, AEK가 히바우두의 열 번째 클럽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팀을 옮기는 선수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은퇴 이전에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선수의 기본적 권리이자 프로 선수로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뿐만 아니라, 축구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적의 모든 이유가 돈 때문인 것도 결코 아니다. 큰 무대, 큰 리그, 큰 클럽으로 나아가 자신을 빛내고자 하는 것은 돈 문제와는 별개로 선수가 지닐 수 있는 축구적 목표요, 야망이다. 현재의 소속 팀이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선수들이 자신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나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소속 팀이 ‘강등’을 당하는 경우도 충분히 이해해줄 만하다. 게다가 ‘보스만’‘웹스터’와 같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선수들의 권익이 점점 더 존중되는 규정상의 경향 또한 선수들의 둥지 옮김을 유리하게 만든다. ‘돈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선수들이 계속해서 한 클럽에 봉사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조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선수들이 유럽 축구에도 존재한다. 얼마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백 전 노장’ 라이언 긱스는 클럽과의 계약 연장에 성공해 2009년 6월 말까지 올드 트래포드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는 사실상 그를 ‘프로 선수 커리어의 처음부터 끝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할 수 있게끔 하는 계약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1987년 11월의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직접 방문해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정성에 감명 받았던 열네 살 천재 소년 라이언 윌슨-라이언 긱스의 당시의 성(family name)-은 이제 유럽 축구의 ‘천연기념물’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것이다. 물론 긱스와 더불어 올드 트래포드 ‘유스 신화’를 써내려왔던 다른 두 사나이 폴 스콜스와 개리 네빌 또한 긱스와 같은 황혼녘을 꿈꾸고 있다.
요즈음에 비해 ‘헌신’과 ‘상호 신뢰’의 모습이 훨씬 더 쉽게 발견되던 옛 시대에조차 ‘커리어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한 클럽에서 보내는 선수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산토스의 펠레도, 벤피카의 에우제비우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바비 찰튼도, 바이에른 뮌헨의 프란츠 베켄바워도, 그리고 요한 크루이프와 디에고 마라도나, 미셸 플라티니도 결코 한 클럽에서만 뛰었던 선수들이 아니다.  설사 이들이 각각의 대표적 클럽에서 ‘전설’로서 추앙받기는 하더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박차고 나와 수많은 클럽을 전전하고 다녔던 조지 베스트의 이야기는 말하면 입이 아프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라이언 긱스가 걸어온 그간의 여정은 요즈음의 축구 세계에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커리어 전체를 한 클럽에서 보낸 잉글랜드 리그의 ‘천연기념물’이 올드 트래포드에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계를 오래 전으로 돌리게 되면 톰 피니(프레스톤 노스 엔드에서 16년), 재키 찰튼(리즈 유나이티드에서 21년)과 같은 현대 축구의 중요한 이름들이 발견된다. 2차 대전의 비극이 낳은 ‘포로’ 출신 골키퍼 베르트 트라우트만은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시티에서만 15년 간 맹활약, 클럽의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팀을 옮기는 일이 훨씬 더 용이해지고 ‘돈’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현대에 이르러 가장 괄목할 만한 사례는 매튜 르 티시에일 것이다. 1990년대 프리미어리그‘멋진 골’의 대명사인 르 티시에는 국내외의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전 커리어를 작은 클럽 사우스햄튼에서만 보냈다.

 

숱한 유혹 뿌리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클럽의 영웅’에 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이탈리아 세리에A이다. 이탈리아 축구는 긱스에 비견되고도 남음이 있는 현역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AC밀란의 파올로 말디니, AS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가 대표적 인물들이다. ‘수비수의 대명사’ 말디니는 1984~1985년 시즌부터 시작해 지난 시즌까지 오직 밀란 한 클럽에서 세리에A 6백1경기, 모든 대회 통산 8백46경기에 출장한 전설 중의 전설이라 할 만하다. 세리에A 현역 최고 선수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토티는 소속 팀 로마를 위해 많은 유혹을 뿌리친 것은 물론,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마저 ‘초개’와 같이 버렸다.
물론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도 ‘살아 있는 전설’이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골 기록 보유자이자 스페인 국가 대표에서도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라울 곤잘레스가 바로 그 주인공. 올해로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열네 시즌째를 맞는 라울 또한 현재진행형 기록의 사나이이다. 시계를 약간 앞으로 돌릴 경우, 언급되어야만 하는 또 한 명의 ‘한 클럽의 사나이’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훌렌 게레로이다. 1990년대 초 번뜩이는 재능에다 잘생긴 용모를 겸비,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이 플레이메이커는 마드리드 거함들과 해외의 유혹을 뿌리치고 빌바오의 ‘영원한 최고 연봉 수령자’로 남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의 활약상이 커리어 후반까지 한결같이 빛나지는 못했지만, 훌렌 게레로는 분명 ‘바스크족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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