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기술 CB 왜 샀을까
  • 소종섭·김회권기자 ()
  • 승인 2007.11.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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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경 삼성전자 상무, 김변호사 폭로에 첫 등장…경영권 승계 과정의 ‘역할’에 관심

 
“이건희 회장의 평생 여비서이다. 그래서 수사를 정말 세밀하게, 치밀하게 했느냐, 나는 그 부분이 의심스럽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11월13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수사’는 1996년 11월 서울통신기술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에게 싼 값에 발행해 준 사건이다. 김변호사의 말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이건희 회장의 평생 여비서’라는 새로운 인물의 존재이다. 김변호사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이전무가 삼성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는 누구이고,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또 김변호사는 왜 이 시점에서 그녀를 거론한 것일까.
하루 전날인 11월1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열린 삼성 비자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JY(이재용 전무)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사제단은 이 문건이 삼성 이재용 전무가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측은 “2003년 10월 변론을 위해 검찰에 제출한 자료일 뿐, 어떤 목적을 위해 미리 기획한 자료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어쨌든 이 문건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이재용 전무와 함께 1996년 11월27일 주당 순자산 가치가 1만5천원에 달했던 서울통신기술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주당 5천원에 인수한 것으로 나와 있는 ‘박명경’이라는 인물이다. 당시 이전무는 15억2천만원어치를 사 지분 50.7%를 취득하며 일거에 서울통신기술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박씨는 4억8천만원어치를 사 15.9%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박씨는 이학수 삼성 부회장에게 일부 주식을 팔았고, 평가액이 9만3천원이던 2000년 4월 나머지 주식 전량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노비타에 7만원에 팔았다. 낮은 가격에 사 낮은 가격에 파는 이상한 거래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전무와 박씨는 큰돈을 벌어들였다.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발행 사건은 그 모양새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과 똑같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런 과정에 ‘박명경’이라는 인물이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한 것이다. 삼성의 후계 구도 설계 작업에서 이재용 전무와 함께 움직일 정도로 비중이 있는 이 미스터리의 여인은 누구일까.
박씨의 현재 직함은 삼성전자 상무이다. 2005년 1월 승진했고, 지금은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회장실 1팀에서 근무한다. 회장실 1팀은 이건희 회장의 의전과 경호 업무를 전담하는 팀이다.

최측근에서 이건희 회장 보좌… 이재용 전무와 전환사채 공동 인수

박상무가 어떻게 해서 삼성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단,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으로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95년이다. 그녀는 1998년까지 삼성생명 과장을 지냈고, 그해 차장으로 승진하며 삼성전자로 소속을 옮겼다. 이후 4년 만에 차장에서 상무보로, 3년 뒤에는 상무로 승진했다. 박상무는 삼성전자의 중·장기 사업 전략을 세우고 실행을 챙기는 수뇌 부서인 경영기획팀 소속이다.

 

박상무의 오빠도 삼성전자 상무이다. 공교롭게도 박상무가 상무보가 된 2002년 3월 오빠도 상무보가 되었고, 박상무가 상무가 된 2005년 1월 오빠도 상무로 승진했다. 
이 정도면 박상무가 언론에 주목되면서 여기저기 인터뷰도 나올 만하건만 공개된 사진 한 장 없다. 삼성에서 앞장서서 홍보할 만도 한데 그런 적도 없다. 박상무는 삼성 내에서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전략기획실 소속 직원들 가운데서도 ‘MK’라고 불리는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드물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전략기획실 여러 명의 임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라고 비중을 낮추려 애썼다. 
김변호사의 폭로가 있기까지 언론에서 박상무를 다룬 기사는 <일요신문>이 유일하다. 2006년 9월 ‘박명경 상무는 삼성의 숨은 실력자?’라는 기사에서 출입국 기록에 근거해 ‘이건희 회장이 출국한 날과 귀국한 날 박상무 또한 같은 동선을 보였다. 완벽한 수행비서라는 외부의 평가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닌 셈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박상무가 이학수 부회장이나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등이 살고 있는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박상무는 2003년 8월부터 삼성이 만든 최고가 주상복합아파트인 타워팰리스 꼭대기층 이른바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박상무가 살기 전에 이 아파트는 삼성전자가 90%, 삼성SDI가 10% 지분을 갖고 있었다. 
삼성 안팎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상무는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최측근이다. 이회장의 해외 출장길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 가족 여행에 같이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공개한 문건에 박상무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런 남다른 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삼성가의 승계 과정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이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발행 사건은 2005년 10월31일 참여연대가 서울통신기술 대표이사 등 여덟 명을 서울중앙지검에 배임죄로 고발한 사건이다. 고발 요지는 ‘이들이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전환사채 발행 요건을 정해 가능한 최대한의 자금이 서울통신기술에 납입되도록 할 업무상의 임무를 위배했다. 또 이재용에게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하게 하고 서울통신기술에 손해를 입혔다’라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며 사건을 종결한 상태이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계기로 삼성 비자금과 후계자 승계 과정 전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이 사건 또한 주목되고 있다.
삼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김변호사는 삼성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로 박상무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회장의 최측근 인사인 박명경 상무가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인수 과정에 깊이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향후 펼쳐질 삼성 수사에서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역할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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