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병원들 “온몸이 아프다”
  • 왕성상 (wss4044@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4: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자들, 너도나도 서울·수도권 병원으로…경영 악화→투자 위축으로 ‘총체적 난국’

 
병원 업계에도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환자들이 서울·수도권 대형 병원행을 멈추지 않아 중소 병원들은 ‘죽을 맛’이다. 특히 대학병원들의 신·증설과 KTX 개통 등 교통이 편해지면서 대형 병원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자연히 중소 병원들의 입지가 좁아들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지방 도시에서 더욱 심하다.
지방 중소 병원을 위협하는 가장 큰 상대는 대도시 대형 병원들. 상당수 대형 병원들이 병상 수를 늘리거나 최신 장비를 들여놓는 등 환자 끌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특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건국대 병원, 중앙대 의료원,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등 대형 병원들의 경쟁이 뜨겁다.
대형 병원의 흐름은 ‘새 병원 건립에 따른 대형화’와 ‘진료 분야 특화에 따른 병상 증설’. 지난해의 경우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8백70병상의 건국대 병원, 1천 병상의 동국대 일산병원이 문을 열면서 대형화에 탄력이 붙었다.
더욱이 주요 대학병원들이 ‘새 병원 짓기’에 앞장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5월 현대건설과 공사 계약을 맺고 신축에 들어간 가톨릭대 새 병원은 2008년 10월 준공된다. 지상 20층 지하 6층, 1천2백 병상 규모로 강남성모병원 단지 내에 세워진다. 단일 면적으로는 국내 으뜸이다.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도 서울 신내동으로 이전을 확정하고 지금의 두 배인 1천 병상 규모로 신축하는 안을 짜고 있다. 중앙대 병원은 ‘1천 병상 시대’를 열기 위해 내년 3월 흑석동병원 증축 공사에 들어간다. 병원 주차장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9층 건물을 지어 4백6병상을 추가한다. 준공 시점은 2009년 9월. 현재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

대학병원 신·증설 러시도 양극화 심화 부채질

이화여대의료원은 11월 중 서울 신정동에 3백50병상 노인 전문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하고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이길수 홍보과장은 “가까이 있는 8백50병상의 이대 목동병원과 접목시키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서울시 공원화 계획에 들어있는 3백 병상 규모의 동대문병원은 인공관절센터 등 특화 분야로 운영된다”라고 말했다. 이화의료원은 또 경기도 파주에 제2캠퍼스를 추진하면서 부속 병원 건립도 검토하고 있다. 경희대는 2008년 8월 용인 국제캠퍼스 안에 1천2백 병상의 병원 건립에 들어가 2011년 완공한다.
지방대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2006년 6월14일 ‘1천 병상 시대’를 열었다. 이 병원은 별관에 1백60병상을 늘려 본관을 포함해 1천여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아주대 병원은 경기도 광교신도시에 1천 병상의 병원을 짓는다. 22층 규모로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에 들어설 1천 병상의 해운대백병원은 2009년 개원 목표로 2006년 말에 착공했다. 부산대 제2캠퍼스 내에 세워지는 양산 부산대병원은 2008년 부분 개원, 2011년 완전 개원을 목표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순수 공사비만 2천4백35억원으로 7백 병상과 2백 병상의 치과진료대, 1백70병상의 간호 센터가 들어선다. 또 1백50병상의 어린이병원도 2008년 개원 목표로 병원 부지 안에 지어지고 있다.
대형 병원들의 공통점은 암 분야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것.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제일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 초 완공될 삼성암센터는 6백50병상 규모로 △세계적 수준의 암 치료 시스템 구축 △환자 중심의 진료 문화 정착 △암 진료의 아시아 의료 허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연세암센터를 옮겨 짓는 것으로 지금의 1백60병상에서 5백 병상 규모로 키운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2008년까지 기존 암센터를 7백 병상의 독립 암센터로 넓힐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짓고 있는 신관 공사 후 13층 규모의 서관 전체가 암센터로 바뀐다. 서울 중구 제일병원은 국내 최초 ‘여성암센터’를 2006년 12월 착공해 2008년 완공 목표로 공사 중이다. 병원측은 암센터가 지어지면 여성전문병원으로서 위상을 굳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형 병원들의 신·증설 외에도 중소 병원들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문 인력의 절대 부족. 환자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도 환자들을 대형 병원으로 몰리게 하는 데 한몫 한다. 대한암협회에 따르면 보장성 강화 정책 후 수도권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은 암환자 수는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지방 중소병원은 20% 이상 환자가 준 것으로 집계되어 대조적이다.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보장성 강화책으로 본인 부담금이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병원비 부담으로 빨리 퇴원하려는 환자들이 많았으나 요즘에는 퇴원을 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례까지 생긴다는 것이 의료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문제는 대학병원의 대형화가 중소 병원들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데 있다. 환자들이 가벼운 병에도 대학병원을 더 많이 찾아 이런 흐름을 부채질한다. 동네에 중소 병원이나 의원이 있어도 먼 곳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기 일쑤이다. 이런 가운데 대학병원의 대형화는 중소 병원 환자 유치를 잠식할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KTX 때문에”…시설 투자는 꿈도 못꿔

대학병원 등의 이같은 대형화 바람에 지방 중소 병원들의 경영은 말이 아니다. 환자가 줄어 휘청대고 있다. 병상 증설, 병원 건립, 최신 장비 구입은 엄두도 못 낸다. 부도 소식도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고사 직전이다. 2006년 지방 시·군의 1백60병상 이하 중소 병원들의 순이익은 ‘-7.3%’였다. 대한중소병원협회 관계자는 “중증도가 심한 환자들의 경우 대학병원으로 몰리고 KTX로 교통이 좋아지면서 웬만한 환자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중소 병원 10곳 중 1곳이 부도났다.
중소병원 의료원장이기도 한 정의화 의원(한나라당)도 병원 종합 학술대회에서 대형 병원들의 몸집 부풀리기를 비판하며 병원 업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대학병원들이 분원을 늘리고 재벌 그룹 계열 병원들이 이익 창출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상으로 중소 병원들의 경영은 더욱 악화되고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대형 병원 사람들은 현실을 모른다고 반박하고 있다. 장세경 전국사립대학병원협의회 총무이사(중앙대병원장)는 “대형 병원의 몸집 불리기는 시설 노후화에 따른 불가피한 면이 있다. 게다가 의료 시장 개방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병원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더 큰 이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입원 환자 식대의 의료보험 적용으로 병원에 엄청난 손실이 따르고 선택 진료제 또한 병원의 목을 죄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병원 대형화를 탓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다. 정책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뒷다리를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 중소 병원들이 운영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 진료과목을 앞세워 전문병원으로 거듭나고 경영 다각화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얼마 전 의료법 개정 작업을 통해 ‘왕진 제도’ 도입을 거론했다. 환자들이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이다. 이를 도입하면 또 지역 간 의료 서비스 불균형과 지방의료 공동화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되어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한 데다 의료인이나 환자들에게 생소한 시스템이어서 효과는 미지수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