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더 싸게’ 할인점 삼국지
  • 왕성상 (wss4044@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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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PL 상품 앞세워 전면전…재래시장·구멍가게 초토화

 
할인점 업계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마트가 최근 PL(자가 브랜드) 상품을 내세워 가격 파괴를 선언하자 다른 할인점들이 대응책을 쏟아내면서 일대 혈전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PL이란, 제조사 대신 유통 업체 상표를 제품에 붙이는 것이다.
싸움을 벌이는 할인점은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른바 국내 ‘할인점 빅 3’이다. 이들은경쟁적으로 자가 브랜드 제품을 내놓고 값을 최대한 낮추어 손님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짜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달 중순 새 PL 상품들을 무더기로 내놓으면서 값을 20~40% 줄이기로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이다. 각사마다 이마트의 공격 경영에 따른 시장 반응을 체크하면서 대응하느라 바쁘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공격당한 만큼 반격에 나서 시장을 빼앗기지 않겠다며 전열을 추스르고 있다.
이마트 선공에 홈플러스, 롯데마트에는 비상이 걸렸다. 연말 특수에 맞추어 맹공을 퍼부을 태세이다. ‘빅 3’는 제품 값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 PL 제품 판매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할인점 업계 선두인 이마트는 한 해 매출의 9.7%(9천2백억원)인 PL 제품 매출 비율을 2010년에는 23%, 2017년에는 30%까지 높일 계획이다.
할인점 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18%(7천8백억원, 옷 판매 제외)를 차지했던 PL 제품 비중을 곧 20%대로 올릴 방침이다. 롯데마트 또한 지난해 매출액의 12%(4천5백억원)에서 연말까지 14%로 높이고 2010년에는 20%로 확대할 방침이다.
물론 회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할인점 업계 관계자는 “품질이 보장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자가 브랜드 상품 값을 얼마나 더 깎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PL 제품 종목 수, 홈플러스가 1만여 개로 최고

‘빅 3’의 PL 제품 종목 수는 2001년에 이 제도를 첫 도입한 홈플러스가 1만여 개로 으뜸이다. 이어 이마트 3천여 개, 롯데마트 3천9백여 개 순이다. CJ제일제당, 농심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1~2위 회사들까지 PL 제품을 납품해 갈수록 종목이 늘고 있다. 할인점들의 입김이 자꾸 세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이마트가 PL 제품 판매 강화를 선언하기 한 달 전에 ‘가격 할인을 않겠다’라는 연막 작전을 펴 의혹을 사고 있다.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이 “국내 물가가 뉴욕, 도쿄 등지보다 너무 높아 가격 혁명을 꽤해야 한다. 생필품 값을 10년간 묶자”라고 간부들에게 밝힌 것이다. 업계 사람들은 이마트의 이런 이중적 태도에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국내 최대 할인점 업체로서 도의상 있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이마트가 경쟁사의 따가운 질책 속에도 PL 제품으로 공세를 펴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국내 유통 업계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인식에서이다.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길은 유통 과정에서 군살을 뺀 PL 제품 판매가 가장 빠르다고 본 것. 게다가 PL 제품을 내놓을 바에는 경쟁사에 뒤지지 않는 데 만족하지 않고 업계를 이끌어가겠다는 승부욕도 짙게 깔려 있다.

 
빅 3의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가격 전쟁’ 2라운드가 펼쳐지고 있다. 이마트는 ‘물가 인하’를 주제로 2천여 품목 값을 깎아주는 행사에 들어갔다. 개점 14주년을 맞아 ‘사전 계약 직거래’ ‘8개월 전 사전 기획’ 등으로 유통 단계를 줄여 50%까지 싼 값에 파는 행사를 11월 중 세 번에 나눠 펼친다. 이마트 관계자는 “기존 PL 상품을 포함해 값을 낮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쟁사인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가격 인하로 맞불을 놓고 있다. 홈플러스는 ‘절반 값 행사’와 ‘20대 브랜드 파격 가격 행사’를 벌이고 있다. ‘패밀리카드 10억명 돌파 기념 절반 가격전’을 펼치면서 자가 브랜드 제품 구매자에게 매출액의 10%를 포인트 점수로 주고 있다.
제품 값의 20~30%를 깎아주는 일반 행사 때와 달리 이번에는 ‘최대 50% 할인’을 강조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롯데마트도 11월1일부터 모기업인 롯데쇼핑 창사 기념 행사를 갖고 있다. 6개월 전에 기획한 9백여 품목, 1천억원어치 물량을 선보이는 초대형 행사로 계절 감각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인기 생필품 100대 기획 △김치 냉장고 대박람회 △방한 의류 100만점 판매 △6억원 경품 대잔치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경쟁사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절반 값 제품을 늘리는 등 행사 규모를 키웠다는 것이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빅 3’들의 새해 전략도 벌써부터 눈길을 끈다. 이마트는 올해 말 신상품개발본부를 출범시키고 인력도 크게 보강한다. 새 조직은 가격 혁명을 끌고 갈 전략 상품과 PL 제품을 맡는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하반기 선보였던 고급화된 ‘와이즐렉 프라임’ 자가 브랜드 제품을 100여 개에서 다섯 배로 늘린다. 대상 범위도 소비자들이 자주 사는 식품, 생활용품, 유아용품 등으로 넓힌다. 또 올 3월 할인점 최초로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내놓은 자체 패션브랜드 ‘UL’ 판매력을 강화한다.
하지만 ‘빅 3’ 과당 경쟁에 따른 후유증이 예사롭지 않다. 중소 제조·납품 회사들의 출혈 경쟁, 연구 개발 위축 우려 등이 그것이다. 소비자들은 싼 값에 제품을 살 수 있지만 생필품 업계의 이익이 줄어 경영 구조가 약해진다는 분석이다. PL 제품으로 싼 값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상품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얼마 전 홈플러스의 장난감이 안전상 문제로 리콜된 것과 이마트의 가루 녹차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나와 시끄러웠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 구멍가게 등이 쓰러지는 것은 뻔하다. 광주시 향토 유통 업체인 빅마트가 ‘빅 3’의 진출로 자금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올봄 롯데쇼핑에 매장 일부를 팔았다.
몇 해 전만 해도 제조사가 유통사들보다 우위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이다. 유통 업체들이 ‘저가 판매=소비자 이익’을 내세워 가격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할인점이 ‘소비자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제조사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항변이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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