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두 글자 선물로 받으소서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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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글 모음집

여자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그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은 가장으로서 형벌에 가깝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타국을 전전할 때 그의 마음은 외롭고 스산하다. 지난 11월9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탄신 1백2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흥사단을 설립한 사람으로서만 널리 알려진 그가 20세기 초에 37년간 12개국 1백20개 도시를 종횡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서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독립운동을 펼쳐온 도산은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37년 결혼 생활에 도산이 가족과 지낸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가 아내 이혜련과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이다. 책은 ‘당신은 놀라거나 슬퍼하지 마소서’로 시작한다. 도산이 눈을 감기 전까지 1932~1938년 간의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36년 8월7일 송태산장에서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나의 사랑하는 혜련에게. (중략) 당신과 내가 이름은 부부라고 하나 일평생 단란한 가정 생활을 못 하였으니 늘그막에 아이들 데리고 한 집에 모여 고락을 같이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친구들하고도 말하지만 나는 늙어가면서 아내가 지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했고 당신이 지어주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후략)’ 이때 도산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필부로서 가족을 그리는 그의 마음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도산은 아내 혜련이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읽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병석에 누우신 어른 전상서. 병이 그리 침중한 가운데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허락하신다면 아무쪼록 병이 나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병이 속히 나으시기를 믿습니다. (중략) 1938년 3월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혜련 상서.’ 도산은 아내가 이 편지를 쓴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수신자를 찾지 못한 편지는 반송되었다.
모두 1백10여 통의 편지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도산이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나의 사랑하는 혜련에게’라고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화기 초입에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다.

아내가 보낸 마지막 편지 못 읽고 눈 감아

부부일망정 내외를 하는 것이 당시 풍습이었음에도 도산은 아내에게 천연덕스럽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움이 그에게 이런 용기를 준 것은 아닐까. 그는 또 ‘하시옵소서’ ‘전하소서’ ‘대답하소서’와 같은 경어체를 써 부부 간에 예절을 지켰다. 도산은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사랑 두 글자를 보내오니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이 보내는 선물로 받으소서’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자식 얘기만 쓰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항상 멀리 두어 외롭게 지내는 것이 참 아니 되었소이다. 그러나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잘 참고 스스로 안위하소서. 이번 일에 설혹 내 몸이 위험한 땅에 들어가더라도 상심하지 말고 당신은 직분을 다하여 아이들을 잘 교육하여 그들도 나라와 동포들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후략)’ 1920년 8월3일 상해에서. ‘나의 몸을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쳤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 하옵니다.(후략)’ 1921년 7월14일 상해에서. ‘가는 곳마다 청년들이 만나기를 원하여 많은 시간이 갑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 혹은 2시까지 사람을 대하고 보니 몸은 피곤하나 그네들이 성의로 말하자고 하니 재미도 있고 감복했소이다.(후략)’ 1925년 5월9일 뉴욕에서.
가족을 저버리고, 무국적자로서 전세계를 누볐던 한 젊은이의 편지는 오늘 우리에게 나와 남, 이웃과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깊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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