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포기한 ‘그녀의 일생’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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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찬양한 서사극…무적함대와의 전투 장면 볼만

감독: 셰카르 카푸르주연: 케이트 블란쳇, 클라이브 오웬, 제프리 러쉬
전기 영화의 성격은 사실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인물이 제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일부러 미화시키거나 연출자가 자기 잣대로 그릴 경우 실존 인물은 사라지고 가공의 인물이 관객에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볼 때 지난 1970년에 제작되었던 <패튼 대전차 군단>은 인간 패튼(조지 C 스콧 분)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집불통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패튼은 영웅도 아니었고, 그저 고약한 한 장군에 불과했던 것이다. 1996년에 개봉되었던 <닉슨>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 영화가 주는 재미는 적었지만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는 되새김질

영화 <골든 에이지>는 엘리자베스 1세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그녀의 영광을 두 시간 가까이 보여준다. 제작사 ‘워킹 타이틀’은 영국 영화사로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로 알려져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1, 2>나 <오만과 편견>을 제작한 워킹 타이틀은 이번 <골든 에이지>로 첫 사극을 찍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첫 걸음이 영국의 황금기를 열었던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거물이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케이트 블란쳇 분)의 인생 역정은 안쓰럽다. 끊임없는 암살 음모에 시달려야 했고 처녀라는 굴레는 그녀에게 평생 족쇄처럼 매달려 있었다. 1500년대 영국 왕실을 재현한 영화는 화려해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고 라일리(클라이브 오웬 분)와 궁녀 베스(애비 코니시 분)를 통해 구경했다. 라일리에게 딱 한번만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엘리자베스는 여왕이 아닌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이기도 포기한다.
반역으로 죽음에 이른 메리(사만사 모튼 분)의 사형 집행서를 집어던졌지만 메리는 결국 참수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동생을 죽였다는 고통에 절규한다. 타이틀 롤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돋보인다. 메리를 여왕으로 옹립하려 했던 스페인은 그녀의 죽음을 핑계로 무적함대를 앞세워 영국으로 진군하는데 컴퓨터 그래픽이기는 하지만 그 광경이 볼만하다. 가톨릭 스페인과 개신교 영국의 전쟁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 용사들을 격려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연설을 하면서. 잔 다르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영화 <골든 에이지>의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는 그동안 드라마로, 영화로 많이 다루어져서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그러므로 이 여왕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무적함대가 깨지는 장면에나 기대를 걸어야 할 듯하다. 11월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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