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돈’ 실체 드러내려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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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재계에 특검 태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11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에 관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삼성 특검’이 현실화한 것이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통장에 괴자금 50억원이 들어 있다며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지 한 달 만이다. 검찰이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구성하고 정치권이 특검을 의결하면서 이 사건은 예상보다 빠르게 대선 정국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검과 검찰이 수사할 핵심 내용은 1997년 이후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 2002년 대선 자금과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 자금 등 각계 로비 의혹, 비자금 조성과 사용을 숨기기 위한 전·현직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 사용 의혹 등이다. 그러나 사실상 자본 권력의 핵심인 삼성그룹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처음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이른바 ‘떡값 검사’ 파문에 휩싸이면서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것도 향후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독 오른 검찰, 삼성 수뇌부 출국금지 등 강도 높은 수사 다짐

특히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또 지난 2003년 10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이루어진 ‘2002 대선 자금 수사’ 때 덮인 내용들이 밝혀진다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정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 이회창 후보가 수사 과정에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거나 기소되는 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5백억원대 삼성채권’의 향방이 밝혀지느냐, 대선 잔금 실상이 밝혀지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대선 자금 수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당선 축하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특검 도입’이라는 악재를 만난 검찰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정도를 걷겠다는 입장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나름의 수사 성과를 올려야 하는 만큼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청문회에서 “의혹 없이 하겠다고 한 만큼 특검이 시작할 때까지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조만간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와 전략기획실을 비롯한 삼성 주요 관련 부서에 대한 압수 수색이 연쇄적으로 강도 높게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검찰은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 관련해 삼성 전·현직 주요 임원들의 계좌를 전부 추적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의 사활을 걸고 수사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임금 뻥튀기 수법’이 거론되고 있다. 임직원들의 임금을 실제 지급액보다 많이 주는 것처럼 처리한 뒤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한철 울산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해서 강찬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1부장, 김강욱 대검 중앙수사 2과장, 지익상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진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이들은 모두 검찰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정통 수사 검사들이다.
겉으로 보면 이 사건이 오는 12월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준비 기간 등을 거쳐 특검 자체가 실시되는 시기가 빨라야 내년 1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삼성 특검’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서 주목하는 것은 2002년 대선 자금과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 자금 등 각계 로비 의혹이다. 삼성 특검법안 통과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권이 부패-반부패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특검에 적극적이었다’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2002년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권의 전선 자체가 부패-반부패로 정확히 나누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를 거치며 ‘세탁’을 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다.

 “노무현·이회창, 공동 운명에 처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다른 측면에 주목했다. “삼성 특검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공동 운명에 처했다. 삼성 특검이 현실화하면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을 수 있다.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때와 같은 상황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두 사람에 대한 수사가 주목될 것이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2002년 대선 때 상대방이었던 노대통령에게 칼을 들이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삼성 특검 정국을 통해 ‘노무현-이회창 연대’라는 새로운 틀이 생겨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관계자의 분석은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낙마’를 고대하는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기묘하게도 삼성 특검 정국에서도 일치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해관계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이명박 낙마’를 둘러싼 이들 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연대 전선은 앞으로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삼성 특검은 이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설 수 있는 상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12월6일을 전후한 시기까지 BBK 사건 등을 고리로 한 ‘이명박 죽이기’의 강도는 더욱 높아갈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11월21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정치적 목적이 다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말한 데 이어 2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정략적·정치적 목적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해 ‘삼성 특검’에 대한 불편함을 나타냈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여부를 저울질했다.
정치권과 관련해 삼성 특검에서 주목되는 것은 ‘2002년 대선 자금과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 의혹’이다. 또 이 의혹의 핵심은 ‘삼성채권의 행방’이다. 2004년 5월 발표한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 결과에서 최대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가 이 문제였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사채 시장에서 8백억원이 넘는 무기명 채권을 사들였다. 2002년 1월부터 대선 직전인 12월10일까지 채권 중간상을 통해 명동 사채업자로부터 현금으로만 무기명 국민주택채권 4백39억원어치를 사들였고, 2001년에도 2백억원대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수사에서 용처가 드러난 것은 한나라당에 제공한 3백억원과 노무현 후보 선거 캠프에 지원한 15억원, 2002년 6·13 지방선거 때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 간 15억원이 전부였다. 나머지 5백억원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삼성으로부터 받은 3백억원 가운데 쓰지 않고 보관 중이던 1백38억원을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2003년 11월에야 삼성측에 돌려주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을 위해 쓰지 않고 있다가 검찰의 칼날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반환한 모양새이다. 2003년 1월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자금이 남았다”라는 김영일 사무총장의 보고를 받고 남은 돈을 당이 아닌 2002년 대선 때 자금 모금을 담당했던 서정우 변호사에게 맡기라고 지시했었다. 불법 자금을 은닉하라고 지시한 만큼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 정가의 화제가 되었던 ‘대선 잔금’ 이야기는 이런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노무현·이회창 두 사람의 처리에 대해 정치적으로 결론내렸다. 노대통령에 대해서는 “불법 자금을 모금하는 데 직접 관여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결정하고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가 있는데도 불입건 조치했다. ‘불입건’은 불기소와 달리 정식 수사가 아닌 내사 단계에서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제든 사안에 따라 다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고 기소될 여지가 있다.

재수사 이루어지면 노대통령과 측근들 타격 입을 수도

한동안 잊혀졌던 ‘삼성채권’은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 삼성이 발행한 1백억원짜리 채권 다섯 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부터이다. 홍의원은 이것이 삼성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금으로 준 삼성채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당선 축하금’은 그동안 말은 무성했으나, 한 번도 그 실체가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 대선 자금 수사 당시 삼성이 노무현 후보 캠프에 준 돈은 모두 합쳐 30억원에 불과했다. 어떤 경우든 재수사가 이루어질 경우 지난 수사 때 낱낱이 파헤쳐진 한나라당 쪽과 달리 노대통령과 측근들이 다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홍의원은 검찰·특검 수사가 본격화하면 검찰에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의원이 갖고 있는 채권 관련 자료가 진짜라고 해도 이것만 가지고 사용처를 추적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현금화하지 않으면 사실상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이 돈을 준 사람을 고백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홍의원이 주장하는 채권을 검찰 또한 이미 확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현 상황을 “예측 불허이다”라고 표현했다. 특검의 칼날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그만큼 파괴력이 크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이 인사는 “삼성의 로비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고 핵심 인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것 같다. 본격화하면 파문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검의 칼날이 김대중 전 대통령 주변까지 미칠 가능성도 있다.
‘삼성 특검’의 현실화는 또 하나의 성역이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자 정치권과 재계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를 잘 극복할 경우 삼성은 그야말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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