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아줌마’의 눈물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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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아이와 여자의 만남…엄마 김혜수의 연기 돋보여

 
부모를 주제로 한 영화는 언뜻 생각하면 많을 것 같지만 별로 없다. 우선 꼽자면 지난 2005년 구성주 감독이 내놓은 <엄마>(고두심 주연)가 있고, 1977년 이원세 감독이 찍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와 <엄마 찾아 삼만리>(애니메이션) 정도이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감동시키는 바람에 전국 초등학교 아이들이 단체로 관람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엄마라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기쁘기보다는 어쩐지 슬프다. 항상 빚을 지고 사는 기분을 주는 엄마는 살아 있어도 부담스럽고(효도를 해야 하니까), 돌아가시면 그대로 자식에게 평생 불효자라는 낙인을 찍고 간다.

“집에는 무조건 여자가 있어야 해”

영화 <열한 번째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아줌마’(김혜수 분)로 재수(김영찬 분)네 집에 찾아든다. 봉천동 달동네의 다 쓰러져 가는 집 단칸방에서 재수 입장에서는 밉살스럽기 그지없는 아줌마는 엄마라기보다 식충이었고 먹기만 하면 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 집에 와 있는 걸까. 그 까닭은 나중에 재수의 아버지 입에서 나온다. 집에는 무조건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재수 아버지는 자기가 데려올 수 있는 가능한 여자들을 돌아가며 들여앉혔고 마침내 열한 번째가 된 것이다.
엄마를 소재로 한 영화가 진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자간에 사회적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장감보다는 감정이 먼저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이 우선된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들은 대개 죽거나 집을 나간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와도 다시 나가기 일쑤이다. 자식은 애가 탄다.
<열한 번째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엄마 노릇을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재수는 아줌마가 점점 좋아져서 정말로 엄마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괴롭기만 하다.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천천히 관객들을 울린다. 엄마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김혜수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재수네 옆집에 사는 백중(황정민 분)이 짬짬이 관객들을 웃긴다. 새로 들어온 재수 엄마에게 작업을 걸다가 면박을 당하고 재수에게도 늘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착한 백수로 엄마와 둘이 산다. 이런 거물급(?) 배우가 조연으로 하찮은 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이지만 관객들은 손수건을 적시기에 바쁘다. 열네 살짜리 배우 김영찬의 절제된 연기가 볼만하다. 이 겨울 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전반부는 그럭저럭 넘어가다 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최루탄이 터진다. 11월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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