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교장’에 돈 냄새 ‘풀풀’
  • 이나연 (미술경제전문지 기자) ()
  • 승인 2007.12.0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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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은신처로 눈총받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연이은 악재로 국내 미술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신정아씨 사건에 이어 삼성미술관 리움이  작품 구입에 삼성그룹 비자금을 사용했다는 의혹의 폭로는 또 다시 미술 시장을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지난 11월28일에 열린 K옥션 경매에서는 낙찰률이 70%대로 급락했다. 올 한 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블루칩 작가 이우환씨의 작품(유화의 경우 추정가 1억~7억원) 16점 중 8점이 유찰되었는가 하면, 대다수 작가의 작품이 추정가 범위 안에서 거래되었다. 장 샤오강(추정가 2억5천만~3억원), 위에 민준(추정가 1억1천만~1억5천만원), 요시토모 나라(추정가 1억4천만~2억원) 등 인기 해외 작가의 작품은 모조리 유찰되었다. 고가 작품의 상당수가 유찰된 점으로 미루어 ‘큰 손’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한국 미술계에서 ‘큰손’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재벌가의 안주인들이다.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립 미술관은 대개 기업을 끼고 있는 데다가 관장직은 그 안주인들이 맡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의 비자금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장 먼저 뜨끔한 이들도 바로 재벌 부인들일 것이다. 미술관은 이들이 품위를 유지하며 나름으로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우아한 사교장이었다. 그런데 성곡과 리움에서 잇따라 스캔들이 터졌으니, 우아한 사교장이 졸지에 비자금 은신처로 오해받게 생겼다.

재벌가 안주인들은 왜 미술관 운영을 선호하나

재벌가 안주인들이 미술관 운영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품은 복잡한 여러 세제에서 혜택을 받는 재산이다. 특히 상속세와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벗어나기에 용이하다. 미술품은 ‘실물 동산’이므로 재산으로 신고하지 않아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 ‘절세’의 방편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을 비롯해 실명으로 거래되는 재산들에 부과되는 세율은 경우에 따라 50%를 넘기도 한다.
 따라서 미술품은 자식들에게 재산으로 물려주기에도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해가는 미술품은 세후의 가치를 셈했을 때 더욱 빛난다. 미술품은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므로 1억원에 사서 10억원에 팔아 9억원의 차익을 남겨도 세금을 물지 않는다.
또한 미술관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대개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는 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할 경우에는 건축비의 0.7%를 반드시 미술 장식에 써야 한다. 이 돈을 장식에 사용하지 않을 경우 공공미술 후원비로라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 미술 장식 시장 규모만도 8백억원대로 추산되고 있고, 조형물 거래 과정에서는 작가가 알선자에게 40~60%의 리베이트를 지불하는 것이 관행이다. 신정아씨가 박문순 성곡미술관 관장에게 상납했다는 돈이 이런 성격의 리베이트에서 나온 것이었다. 리베이트만 챙겨도 쏠쏠한 수익이 생기는 데다 건축물 리베이트는 자기 소유의 미술관에서 챙길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유명 사립 미술관의 기획 전시는 작가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인 만큼 대형 화랑의 오너가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 작가의 개인 전시회에서 일어난 일이 미술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지난 9월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오치균 화백의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전>에 홍라희 여사가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술계 사람들은 오치균이라는 작가가 미니멀리즘 작품을 선호하는 홍여사의 취향이 아님에도 그녀가 다녀간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홍여사의 왕림’은 대단한 홍보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나들이를 앞두고 있던 오화백의 작품들은 ‘비매품’이라는 단서를 달았기에 당시 얼마나 팔렸는지 셈을 해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이 전시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컬렉터는 대부분 중산층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30여 년이 넘게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한 베테랑 화상과 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다.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미술 작품 구입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는 말과 함께, 미술 시장의 호황을 느끼고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림 수집이 상류층의 전유물이라고? 그런 적이 없어. 우리 컬렉터의 대부분은 중산층이야. 상류층은 자기 일 하느라 바빠서 그림 보러 못 다녀.”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선한 정보였다. 최근에서야 미술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개미 투자자들이 몰려 컬렉터 층의 저변이 넓어진 줄 알았던 상식을 확 깨는 답변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류층은 바빠서 미술품을 살 시간이 없다? 3O여 년이 넘게 직접 미술품을 거래한 화상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믿어야 하는 것일까?

 

또 하나 이상한 현상은 세금에 대한 엄청난 불안감이다. 출품 작품들이 매진되거나 해외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는 이른바 잘나가는 작가를 관리하는 갤러리에서는 언론을 대하는 감정이 복잡하게 나타난다. 언론 보도를 잘 해주면 더 잘 나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돈 잘 버는 갤러리’로 소문나 세무조사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과거에 해외 아트페어를 취재하기 위해 작품 판매 결과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한 갤러리 대표는 “6점이 팔렸는데 그냥 3점만 팔렸다고 써주세요”라고 어이없는 답변을 했다. 작품을 잘 파는 능력 있는 딜러가 되고 싶으면서도, 세무조사는 받기 싫은 이중적인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최근 미술 시장, 특히 경매 시장이 과열되면서 생긴 기현상이 하나 더 있다. 미술 애호가, 또는 컬렉터를 자처하던 기업 CEO들이 미술 경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주)쌈지의 천호균 사장이 세중나모여행 천신일 회장, 톰보이 김명희 회장 등 동료 기업인 7명과 함께 경매회사 옥션별을 출범시켰다. 로또복권 사업을 하던 KLS 남기태 회장도 (주)인터알리아를 설립해 내년 상반기부터 경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엠포리아 정연석 회장은 D옥션을 설립해 두 차례 경매를 실시한 바 있다.
이같은 큰손 컬렉터들의 미술사업 진출과 관련해 민중미술 컬렉팅으로 유명한 고 조재진씨나 런던의 국립 미술관에 자신의 기증품을 남기고 작고한 사이먼 세인즈베리의 사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들은 당당하게 작품을 사서 후세에 명예롭게 컬렉션을 남겼다. 검은돈을 세탁하느니,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하느니 하는 잡음 없이 미술품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안목을 살려가며 매력적인 컬렉팅을 하는 진정한 컬렉터가 나타나기는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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