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꼬집고, 달래고…피 말리는 ‘미디어 대선’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2.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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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보도를 둘러싸고 정당과 방송·신문사의 전투가 치열한 가운데 유권자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한 광고·홍보전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대선 막바지 ‘미디어 전선’에서 펼치는 후보들 간 건곤일척 대결의 향

미디어 대선이 본격화하고 있다. 각 후보 진영에서 신문·방송사를 항의 방문하거나 TV 토론회에 불참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TV나 신문 홍보전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후보들은 남은 선거 기간 동안 미디어가 대선 판세를 움직인다고 보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미디어 대선’에 가장 크게 신경을 쓰는 곳은 한나라당이다. 지난 2002년 김대업씨 등의 거짓말을 언론이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은 올 대선을 앞두고 언론 대책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언론인만 100명에 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규모 언론 군단을 꾸렸다.
한나라당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된 신문은 한겨레, 방송은 MBC이다. 한나라당은 ‘김경준 옥중 인터뷰’ 등 BBK 사건과 관련해 보도한 한겨레를 상대로 6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기자회견을 할 때 한나라당측에서 한겨레를 지목하며 여러 차례 ‘편파 보도’ 운운하는 바람에 한겨레 출입기자가 “한 번 얘기했으면 되었지, 또 얘기하느냐. 그만 하자”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낸 일도 있을 정도였다. 11월21일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겨레를 항의 방문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사석에서 “한겨레를 뺀 나머지 신문은 거의 평정되었다. 문제는 방송이다”라고 말했다.

 

MBC·한겨레, 항의 방문으로 몸살

이 관계자의 걱정대로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한나라당은 신문 대신 방송과 싸우기 시작했다. 상대는 MBC였다. 11월22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BBK 사건의 주역인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를 30분간 인터뷰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나라당 의원 13명은 다음날인 11월23일 30분 분량의 반론 인터뷰에 응하는 대신 MBC를 찾아가 항의하는 길을 택했다. 한나라당은 11월22일 밤에 진행될 예정이던 MBC <100분 토론>에도 불참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피의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방영해 한나라당 후보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MBC에 법적·정치적 대응을 하겠다”라고 불참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관계자는 MBC에 대한 소송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이후보의 한 측근이 “집권하면 MBC를 민영화시키겠다”라고 말한 것도 MBC 관계자들을 자극하며 갈등을 키웠다. MBC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 언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박과 탄압을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한나라당을 강력히 규탄했다.
한나라당 홍보기획팀 관계자는 “MBC 뉴스는 그래도 형평성을 갖는다. 하지만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나 <PD 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이 문제이다. 민감한 시기에 일방적으로 한쪽 주장을 내보내면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MBC와 첫 전투(?)를 벌인 11월22일이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11월28일 다시 포화를 퍼부었다. 이방호 선거대책본부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객관성마저 포기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정동영 방송’이라는 지탄이 나오겠느냐. 개개인 한 사람에게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 11월29일 한나라당 의원 일곱 명은 MBC를 방문해 최문순 사장을 만났다. 이날 밤 ‘성장이냐 분배냐’를 주제로 방송할 예정이던 MBC <100분 토론>에도 불참하면서 한나라당과 MBC의 갈등은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의 압박에 맞서 MBC는 노동조합이 선두에 서서 한나라당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연이어 특보를 발행하며 ‘한나라당이 노골적으로 MBC를 협박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11월23일에는 전국언론노조, 대선미디어연대 등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한나라당을 강력히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MBC를 방문한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도 MBC를 항의 방문했다. ‘대선 싸움에 방송사 등터진 격’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천 의원 등 네 명은 11월19일 MBC 최문순 사장을 만나 BBK 사건과 관련해 MBC가 불공정하게 보도했다고 항의했다. 이들은 이날 KBS도 방문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윤흥렬 가족행복위원회 총괄기획본부장은 “기호 순서에 따라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송 가운데 MBC가 ‘미디어 대선’ 한복판에 서 있다면 신문 중에는 한겨레가 그런 상황에 있다. 11월21일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항의 방문하더니 다음날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찾아가 따졌다. 이날 민노당 최규엽 공동 선대본부장과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 등은 한겨레 김종구 편집국장과 김이택 편집부국장을 만나 한겨레 보도 태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가며 격렬하게 따졌다.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은 “그날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한겨레가 민노당이 마치 내부 갈등으로 날을 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도 순서이다. 방송사와 보수 언론들은 기호 순으로 보도하는데 왜 한겨레만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민노당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으로부터 탄압받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민노당, 노선투쟁 다시 불붙어’ ‘전략도 비전도 감동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두 신문이 보도한 민노당 기사에 대해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일선에서 취재하는 기자들도 ‘미디어 대선’ 한복판에 서 있다. 특히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후보를 담당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기자들 사이에 정보가 조·중·동으로만 흐른다는 불만이 높다. 마치 ‘인의 장막’을 친 것처럼 이들 회사 소속 기자들을 중심으로 일이 돌아간다. 어떤 때는 후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어 취재에 어려움이 많다”라고 말했다.
외부적으로는 정당과 방송·신문사를 둘러싼 전투가 치열한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한 광고·홍보전이 불붙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눈물’이라는 CF 한편으로 홍보전에서 단숨에 이회창 후보를 제압한 것과 같은 ‘대박’이 터지지 않았다. 통상적인 선거전과 마찬가지로 광고·홍보전에서도 감동이 사라졌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TV 광고와 신문 광고를 차별화해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TV 광고는 인간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서민’ ‘가족행복’이 키워드이다. ‘안아주세요’가 대표적이다. 정후보가 거리에서 사람들을 안아주는 장면이 나오면서 “따뜻하고 행복한 나라 함께 만드시지요. 여러분의 희망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CF이다.
반면 신문 광고는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에 주력했다. 11월28일자 일간지 1면에 실린 신문 광고의 키워드는 ‘위장’이었다. ‘군대는 안 갔지만 위장 하나는 자신 있다!’라는 제목으로 이후보의 위장 전입, 아들·딸의 위장 취업 문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광고였다. ‘1번 생각하면 좋은 대통령이, 2번 생각하면 나쁜 대통령이 보인다’라는 광고도 냈다. 한나라당은 정후보의 신문 광고에 대해 흑색 선전을 하고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등 격렬히 반발했다.
정후보 캠프의 홍보 전략을 총지휘하는 사람은 윤흥렬 가족행복위원회 총괄기획본부장이다. 스포츠서울 사장을 지낸 윤본부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의 처남이기도 하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DJ와 춤을’이라는 광고를 기획해 정치권에 일대 화제를 불러왔던 주인공이다. ‘DJ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키워드를 만들기도 했다. TV 광고는 광고대행사 ‘아프리카’에서 제작했고, 애니콜·BMK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한 김희규 감독이 작업했다.

돈 싸움이 된 광고·홍보전…군소 후보는 발만 동동

윤본부장은 “우리는 따라 가는 입장이다. 네거티브를 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상대 후보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아니냐. TV 토론에도 안 나오니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 이명박이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안아주세요’ 캠페인을 통해 국민과 통하는 후보, 화합하는 후보로서 정동영 후보의 모습을 부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후보와 달리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TV 광고와 신문 광고를 한묶음으로 통일했다. 키워드는 ‘실천’이다. 한나라당 미디어홍보기획단 한 관계자는 “이후보가 집권에 성공하면 차기 정부는 ‘실천정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보는 첫 TV 광고에서 순댓국집 욕쟁이 할머니를 등장시켰다. 할머니가 ‘경제는 꼭 살려라이’라고 이후보에게 투박한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문 광고 제목도 ‘이젠 실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였다. 이후보가 경제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살려가면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미디어홍보기획단 홍보기획팀 박승하 간사는 “실천, 추진력, 리더십에서 ‘이명박다움’으로 이어지는,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 기본 개념이다”라고 설명했다. TV 광고가 나가고 신문 광고가 뒷받침하며 마지막에 라디오 광고가 따라 가는 형식으로 메시지의 일관성을 추구하고 있다.
정병국 의원이 이끄는 미디어홍보기획단은 1실3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광고·홍보 분야는 홍보기획팀에서 맡고 있는데 제일기획 출신인 이우찬씨가 박승하·황부영·한영만 씨를 이끌면서 팀장을 맡고 있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12월5일 첫 광고를 내보낸다.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은 “신문 광고는 하지 않고 TV와 라디오, 인터넷 광고만 할 계획이다.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개념을 강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 특검’을 ‘권영길 법’이라고 부르는 권후보는 삼성 비자금 사건과 관련 있는 광고도 내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2월1일 첫 광고를 내보냈다. 새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을 강조했다. 창조한국당 신동진 미디어기획단장은 “옛 정치는 싫고 새로이 마음 둘 곳은 없는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자금이 부족해 광고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광고 속에서도 ‘국민 속으로’ ‘낮은 곳으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1월27일 밤 첫 전파를 탄 TV 광고 ‘알았습니다’의 광고 카피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소녀 가장의 마음을 알았습니다’였다. 과거 대선 때 이후보를 도왔던 석철진 경희대 겸임교수가 정보통신 업계 출신인 김관중씨 등과 만든 작품이다. 석씨는 “반듯한 후보, 국민 속으로 가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대선’ 광고·홍보전은 사실 돈 싸움이다. TV 연설은 후보가 11번, 찬조 연설자가 11번까지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시간대면 한 번(20분 동안) 연설하는 데 4억6천1백45만원이 든다. 이 시간대에 22번 연설한다고 가정하면 거의 1백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라디오 연설도 20분에 3천6백만원이 든다. TV와 라디오의 경우 광고는 30회까지 할 수 있는데 TV의 경우 1회 광고에 2천2백만원 정도가 든다. 단, 방송이 나가기 전에 선금을 내야 한다.
한나라당 미디어홍보기획단 방송전략실 곽경수 기획팀장은 “한나라당은 규정된 연설과 광고를 모두 할 계획이다. 약 1백억원에서 1백1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외에는 채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너무 비싸 군소 후보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사람은 12명이지만 TV 연설 신청을 한 후보는 네 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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