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밥그릇에 금테 두르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7.12.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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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 지자체 의정비 일제히 올려…“재정난에도 제 몫만 챙긴다” 비난 줄이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의 화려한 돈 잔치가 끝났다. 최근 각 지자체는 내년도 의정비를 일제히 올렸다. 동결한 몇몇 지자체를 빼놓고는 적게는 2.89%에서 많게는 98.1%까지 올렸다. 지방의원들이 밥그릇 하나는 확실히 챙긴 셈이다. 공무원 보수인상률 2.5%와 물가상승률 2.5%를 감안하면 엄청난 인상률이다. 대다수 자치단체들은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의원들은 제 몫 챙기기에 바쁘다. 
<시사저널>은 전국 2백46개 지자체 지방의원의 내년 의정비를 다각도로 분석해보았다. 천차만별이다. 최저 2천만원대에서 최대 7천만원대까지, 지역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

 

자치단체의 의정비는 지난해 유급제로 전환되면서 광역의원은 평균 50%(3천1백20만원→4천6백83만원), 기초의원은 평균 30%(2천100만원→2천7백76만원) 인상되었다. 2년 사이 기초의원은 1천7백22만원(81%), 광역의원은 2천2백19만원(71%)이 오른 것이다.
내년 의정비가 가장 많이 오른 지방의회는 광역·기초의회를 통틀어 충북 증평군이다. 무려 98.13%(1천9백20만원→3천8백4만원)로 2배 가까이 인상되었다. 그 뒤를 이어 전북 무주군이 98.11%(2천1백20만원→4천2백만원)이며, 충북 청원군이 91.5%(2천2백2만원→4천2백18만원)였다. 강원 인제군도 90.1%(2천3백4만원→4천3백80만원)가 올랐다.
광역의회의 경우 경기도가 34%(5천4백21만원→7천2백52만원)로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고, 그 다음은 울산시 22%(4천5백23만원→5천5백38만원), 전라북도 21%(4천68만원→4천9백20만원) 순이다.
서울 시내 자치구 중 인상률이 가장 높은 자치구는 강동구이다. 올해(2천8백68만원)에 비해 88.3% 인상된 5천4백만원으로 결정되었다. 그 다음은 종로구 5천7백만원(86.6%), 금천구 5천4백24만원(79.4%), 용산구 5천4백60만원(75.0%) 등이다. 강남구는 올해(2천7백20만원)보다 1백24.3% 오른 6천1백만원으로 잠정 결정했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55.7% 인상한 4천2백36만원으로 확정했다.
 

전국 지방의회 중 의정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곳은 경기도이다. 올해 5천4백21만6천원에서 내년 7천2백52만원으로 33.7% 올렸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받게 될 의정비는 웬만한 중견 기업 임원의 연봉과 맞먹는 금액이다. 또 지방의회 중 의정비가 가장 낮게 책정된 경북 예천 의회 2천3백78만원보다 4천8백74만원이 더 많다. 예천 의원 3명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경기도의회 의원 1명의 연봉이 더 많은 셈이다. 
지난해 꼴찌 연봉을 받았던 전남 순천시는 내년 의정비를 3천9백84만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2천2백26만원보다 79%가 인상된 금액이다. 광주·전남 광역 및 기초의회에서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서울시(6천8백4만원), 광주시(4천2백91만원), 충청남도(4천4백10만원), 경북 예천(2천3백78만원), 광주 동구(2천7백78만원), 대구 남구(2천5백89만원), 부산 부산진구(3천6백만원) 등 7개 의회는 의정비를 동결했다.  광주시의회는 당초 1.44%를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밀려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충청남도의회도 당초에는 1.5%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인상안을 정례회에 상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주민들 요구에 부응한 지방의회는 6곳 불과

주민들이 인상 상한선으로 정하고 있는 5% 이내에서 의정비를 인상한 지방의회는 6곳이다. 광주 서구 2.8%(2천7백90만원→2천8백70만원), 광주 북구 3.7%(2천8백21만원→2천9백26만원), 대구 북구 4.9%(2천9백52만원→3천99만원)이며, 광주 광산(2천8백만원→2천9백40만원), 전남 장흥(2천4백만원→2천5백20만원), 대구 달성(3천2백54만원→3천4백17만원)은 5.0%를 인상했다.

 

 
내년에 최다 의정비를 받는 지방의회는 경기도(7천2백52만원), 서울시(6천8백4만원), 부산시(6천77만원), 인천시(5천9백51만원) 순이다. 최저 의정비를 받는 의회는 경북 예천(2천3백78만원), 전남 고흥(2천4백89만원), 전남 함평·장흥(2천5백만원), 충남 청양(2천8백만원) 순이다. 의정비는 올 연말까지 지방의회별로 의결을 거쳐 조례로 확정된다.
지방의원들이 받는 의정비는 크게 의정 활동비와 월정 수당으로 나뉜다. 의정 활동비는 말 그대로 의정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료 수집이나 의정 연구에 들어가는 돈이다. 월정 수당은 회의 참석비 명목으로 주는 수당이다. 그렇다고 의정비 사용처에 대해 영수증을 제출하거나 감사를 받는 일은 없다. 지방의원들의 의정비 인상에 대해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밥그릇 챙기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정비를 인상한 전국 지자체는 지역 주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의회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시민의 정서와 다른 의정비 인상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전국 곳곳에서 의정비 인하 투쟁과 주민 소환 등을 요구하는 성명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의정비 인상률이 가장 높은 충북 증평은 재정 자립도가 17.1%로 전국 2백30개 기초자치단체 중 1백58위 수준이다. 증평군은 전국에서 행정 단위가 가장 적은 1읍·1면에 불과하다. 그만큼 군의원들의 활동 영역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의정비 인상률이 최고인 것에 대해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증평시민회 등 시민단체들은 군의원 주민소환제 등의 추진을 검토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시민단체 회원들은 구의원들의 의정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며 서울시에 감사를 청구했다. 광진주민연대, 성동·광진시민연대 등 광진구 지역 시민단체 회원 13명은 최근 서울시에 광진구의 올해 연봉 결정 과정에 대한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광진구의회 의원의 내년도 의정비는 올해(3천2백52만원)보다 69% 오른 5천5백만원으로 결정되었다. 광진구 시민단체들은 “구의회가 의정비를 결정할 심의 위원으로 부적절한 인사를 위촉했고 여론조사도 엉터리로 진행했는데 광진구가 이에 대한 감독에 소홀했다”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잡 의원’들도 상당수이다. 광역의원 5백34명에 대한 조사 결과 절반이 넘는 56%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겸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 의원 32명 중 18명이 의정비 외에 따로 수입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인천연대는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직업이 상임위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회기 때만 얼굴을 비치며 투잡에 열중하는 의원들이 무슨 명목으로 수십 퍼센트의 의정비를 인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의정심의위원회 구성도 제멋대로…여론 조작해 인상하기도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의정심의위원회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이 복수로 추천하면, 그중에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이 5명씩 선정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주민 여론을 수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 지자체들이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의정심사위원회를 임의로 선정했다.

 

인천 옹진군의 경우 심의 위원 전원이 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는 관변 단체와 공무원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탓에 의정비 심의과정에서부터 지방의회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전북 지역의 경우 주민 공청회를 연 곳은 정읍시가 유일하다. 전북도와 무주군의 경우는 전문 기관을 통해 주민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다른 시·군은 인터넷 등을 통한 형식적 여론조사를 하는 데 그쳤다.
여론을 조작해 의정비를 올린 곳도 있었다. 경북 김천시의회의 의정비 심의를 앞두고 일부 시의원들이 시청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여론조사를 조작했다. 여기에는 김천시 의원 2명이 가담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지방의원 1인당 조례 발의가 채 한 건이 안 된다. 지방의원 1인의 지방 의정 질의가 한 해 한 차례 정도인 지자체가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급화 1년 만에 또다시 거액을 인상한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라고 성토했다.
한편, 행정자치부는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의정비 지급조례 개정 과정에 지방자치법령에서 정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쳤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문제가 있을 경우 지방의회에 돌려보내 재심의·의결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데도 대폭 인상한 곳에 대해서는 교부세 배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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