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한글에 숨은 ‘특급 뇌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7.12.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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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김경준 메모의 진실은 무엇일까. 검찰의 BBK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끝나자 김경준 메모가 사건을 다시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메모가 사실을 전달한 것이라면 검찰은 ‘반이명박 연대’측의 주장대로 이명박 후보를 위한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김경준씨 본인이 자신의 생각을 옮겨 적었거나, 아니면 누나 에리카 김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조작한 것이라면 ‘이명박 진영’에서 제기한 정치공작설을 방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이든 진실이 밝혀지면 양 진영 중 한쪽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날(12월4일) 김씨의 자필 메모가 공개되자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 김씨가 작성했다는 이 메모에는 ‘(검찰은) 저에게 이명박 쪽이 풀리게 하면 3년으로 맞춰주겠대요. 그렇지 않으면 7~10년’이라고 적혀 있다. 메모는 지난 11월23일 검찰청 조사실로 면회 온 장모와 대화를 나누면서 김씨가 자필로 메모를 써 전달한 것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그의 친인척들이 전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김씨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는 조건으로 형량 조절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즉각 “수사 전 과정이 녹음·녹화되었고 조서를 작성할 때도 변호인이 모두 입회했기 때문에 회유는 절대 있을 수 없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 작성 시점·전달 경위 등 수사 착수 밝혀

그러나 김씨를 접견했던 반이명박 후보 진영의 정치권 인사들은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김씨가 처음 조사를 받을 때는 영상 녹화 장치가 있는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제3차 피의자 신문 때부터 영상 녹화 장치가 없는 검사실에서 단둘이 앉아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김씨의 변호인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최소한 이틀 가까이 변호인의 입회 없이 수사가 진행되었다고 했다. 두루뭉술한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김씨의 메모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검찰도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재반격에 나섰다. 검찰은 메모가 공개된 12월4일 김씨로부터 “(메모에 적힌 것처럼) 검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내가 느낀 대로 썼다”라는 진술을 받았고 이를 녹음해놓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메모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검찰은 지난 12월7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메모의 작성 시점과 전달 경위 를 밝히는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도 지난 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메모와 관련해 “그 사람은 자기 표현을 한글로 쓰는 경우가 없다. 아마 누가 써준 것을 보고 썼을 것이다”라며 진실 공방에 가세했다.
검찰은 우선 메모에 담긴 내용이 김씨가 직접 작성한 것인지를 가리겠다고 밝혔다. 김씨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글로 자신의 심경을 또박또박 쓸 여유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수사 관계자들과 김씨의 신병을 맡고 있는 교도관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김씨가 직접 메모를 작성했더라도 그 내용은 사실을 거꾸로 전했다는 것이 검찰측 주장이다.   
검찰은 오히려 김씨가 먼저 형량 협상(플리바겐)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형량 협상은 김씨가 처음 귀국할 때부터 요청한 것이며, 수시로 형량 협상을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김씨의 변호인인 오재원 변호사는 이에 대한 답변을 피하며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만일 이 메모가 로스앤젤레스 등 다른 지역에서 조작된 것이라면 파장은 더욱 커지게 된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에 의해 거짓 메모를 내놓은 것인가. 당연히 정치공작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11월23일 작성되었다는 메모가 검찰 수사 발표 직전에 나왔다는 사실이 그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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