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열풍’, 몇 표나 몰아갈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07.12.10 12: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보 캠프에 연예인 등 ‘선언’ 줄지어 …“이름 빼달라” 항의성 요구도

 
'BBK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한 검찰 발표 다음날인 12월6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는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정부 재투자기관인 한국전력 KPS(주) 노동조합을 비롯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뉴라이트의사연합, 월드리듬스포츠단체총연합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인사들이 앞다투어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다.
낯익은 얼굴도 눈에 띄었다. 점심 무렵 박상규·이덕화·독고영재 등 중견 연예인을 비롯해 김건모·변우민·이훈·이지훈·김재원·소유진 등 인기 연예인 15명이 대거 당사로 몰려왔다.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소속인 이들은 ‘대중문화 선진국의 위업을 달성할 유일한 대안’으로 이후보를 꼽으며 지지의 뜻을 공개 표명했다.
‘릴레이 지지 선언’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정보기술(IT) 분야 대학 교수와 전문가 20여 명은 역시 기자회견을 갖고 “IT 분야에서 경제를 살리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해결사는 이명박 후보뿐이다”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특정 후보를 향한 지지 선언이 열풍처럼 번져가고 있다. 지지율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해지는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당기려는 후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유력 후보들은 ‘장외 전쟁’을 펼치듯 지지 선언을 경쟁적으로 이끌고 있다. 후보 지지는 그 성격과 효과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유력 정치인의 ‘세(勢) 보태기’가 있다. 정몽준 의원에 이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이날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명박 후보를 돕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 모두 대권 도전 경험이 있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각각 수도권 중도 성향과 충청권 보수 성향의 표를 모으는 데 기여할 것으로 한나라당은 기대하고 있다.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가 높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은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에 합류했다. 범여권 인사로 분류되어온 만큼 예상된 행보이기는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청·중년층의 표심 공략에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통합신당은 내다보고 있다.
앞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는 후보직을 사퇴하고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심대표는 이후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 대연합’을 주창했다. 충청권에 지역 기반을 둔 국민중심당을 등에 업은 이후보는 자신의 고향인 이 지역의 지지율 상승 기류가 전국으로 확산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적군의 수장’ 지지하는 ‘깜짝 선언’도 나와

예상치 못한 ‘깜짝 선언’도 있다. 지난 12월4일 장전형 전 민주당 대변인이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 입당을 선언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한나라당을 ‘차떼기 부패 정당’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나라당 정형근·남경필 의원 등으로부터 10년간 무려 16번이나 고소·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장 전 대변인이 ‘한나라당호’로 배를 갈아탔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그는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했다.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에 적합한 사람은 이명박 후보라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에 가서도 호남 발전을 위해 여러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약속도 했다.
같은 날 이윤수·안동선 전 의원 등 민주당 원외당협위원장과 당직자 등 38명은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보는 지난 대선 때 ‘적군의 수장’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각종 단체들의 지지 선언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대부분 당과 후보의 정체성과 부합하지만 다소 의외인 곳도 있다. 이 경우 단체·회원 간에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명박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한 연청동우회가 그 예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앞장섰던 대표적 청년 조직이다.
연청동우회는 지난 11월26일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이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연청동우회는 연청이 지난 대선 이후 유명무실해져 올 2월 동우회로 출범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청중앙회는 성명을 통해 “연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을 계승하기 위한 단체로 민주개혁 세력의 대선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자칭 ‘연청동우회’라는 단체는 연청의 법통을 계승하는 연청중앙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한때 범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의 팬클럽과 지지 단체 등의 연합체인 고건대통령추대범국민운동본부 간부 30여 명은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반면 고 전 총리 본인은 이번 대선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고 전 총리는 12월5일 보도 자료를 통해 “지난 1월 대선 불출마 및 불관여 원칙을 밝힌 바와 같이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 지지 등 선거와 관련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겠다”라고 명확히 했다.
‘지지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는 항의성 요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단체로 지지 선언을 하면서 개별적으로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았거나 지지 여부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경우이다.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소속 연예인들의 ‘이명박 지지’ 선언에서 이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홍경민·박진희·김정은 등은 지지 의사를 철회했지만 미리 배포한 보도 자료에 이름이 올랐고, 일부 다른 연예인도 “지지한 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장 개인의 입장 표명이 집단 전체의 지지 선언으로 부풀려져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지난 11월28일 전국 42개 대학 총학생회장 명의로 이명박 후보 지지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명단에 포함된 일부 총학생회장들은 “서명에 동의하지 않았다”라거나 “개인 자격으로 지지한 것이다”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는 추세에 비추어볼 때 자발적 지지 선언은 분명 권장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한 ‘명단 부풀리기’나 ‘줄 세우기’ 행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선 열기 확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