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에 정책은 없고 탐욕만 넘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2.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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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대선 쓴소리’ / “정당이 이익집단으로 변해 혼탁”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2005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직을 그만둔 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서 자신이 주장하는 ‘선진화’ 논리를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박이사장은 보수와 진보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보수 이론가 중 한 명이다. 국회의원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은 그를, 지난 12월5일 신보수·신진보 인사들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의 노동연구원에서 만났다.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안타깝다. 첫째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지난 과정에 대한 평가·성찰·반성이 깔려 있어야 한다. 무엇을 바꿀 것이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논의 위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갈 것인지 논쟁해야 한다.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하고 대북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이며 지역 발전은 또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것 등 국가 발전과 민생 문제를 놓고 엄청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그 후보가 갖고 있는 국가 비전에 대한 선택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부족하다.
정책 선거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정치와 선거 담론에서 정책이 빠져 있다. 대통령 선거인데 국가 비전과 정책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 슬로건은 보이지만 철학과 시대를 읽는 것은 안 보인다. 정책이 실종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민생과 국가 발전은 구체적인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 정치는 민생과 국가 발전이 빠진 정치이다. 정치가 국리민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정책과 정당이 실종되었다. 정당 정치가 완전히 실패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정당은 정치적인 이념과 가치·비전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봐라. 지금 시도 때도 없이 정당 간에 이합집산이 일어난다. 아무런 원칙과 명분이 없다. 또 대통령 후보를 뽑는데 여론조사로 뽑는다. 여야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당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이 두 가지 사례만 보아도 우리나라에는 정당 정치가 없다. 정당이 가치 집단이 되어야 하는데 이익집단이 되었다.
정당 정치가 왜 실패했나?
꿈과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 우리 정치에는 꿈이 없다. 꿈이 있으면 그 꿈을 중심으로 모여서 정책을 정하는데 그것이 없다. 대신 권력욕만 있다. 대통령 자리나 국회의원 자리만을 노리는 욕심 중심의 정치를 하고 있다. 자연히 정당은 이익집단용 정당, 선거대책용 정당이 된다. 과거 독재 시대 때는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꿈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국가 경영이 꿈이 되어야 한다. 정책·꿈이 나와야 하는데 과거 민주화 세력은 반독재 투쟁을 할 때의 사고에 고착되어 있고, 보수 세력은 과거 민주 세력을 탄압할 때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보 모두 자기 정체성이 실종되어 있다.
이합집산을 통해 양당 구도가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정당이 자기 원칙과 비전·정책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정책적 자기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타나는 것이 붕당, 사당,  개인 정당이다. 이러다 보니 선거에서는 네거티브, 지역 정치가 더 살아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 모든 과정에서 정치가 사유화한다. 정치는 공적인 과정인데 개인, 즉 몇몇 지도자들의 포로가 된다. 정치는 시대 문제를 풀지 못하게 되고 국민은 소외된다.
사회가 ‘진보 대 보수’로 나가는 것은 건강하다. 두 측면이 다 필요하다. 둘이 진지하게 토론하면 국가 정책의 70%는 같다. 이념적인 양당제는 나라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양당제가 정립되면 정치의 질이 높아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이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대선 때마다 보수가 분열했다.
맞다. 이번 대선만이 아니라 지난 두 번의 대선 때에도 보수는 분열했다. 분열해서 정권을 잡는 데 실패했다. 1997년에는 JP가, 2002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진보에 투항했다. 두 사람 다 누가 뭐라 해도 보수주의자들 아닌가. 보수의 실패는 변화하지 못한 데서도 오지만 이처럼 정치적 욕심에서 온다.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투항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적 욕심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심, 권력 욕심에서 분열했다. 이념성·가치 지향성·정책 지향성이 깨지니 보수가 분열한다. 아무 명분이 없다. 진보는 보수의 분열을 바탕으로 성공했다.
 

과거와 달리 보수 후보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고통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보수가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진보의 무능과 오만에 힘입은 바 크다. 보수도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미래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세력이 만들어져서 국민들에게 보답하겠다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제2당이 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정책과 비전을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진보 세력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5년 동안의 혼란에 대해 누구도 진솔하게 반성하지 않았다. 정동영·문국현 후보는 시대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참회할 것은 참회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보수는 지난 5년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참회 없이 다르다는 식으로 거리를 두면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역사적으로는 잘못이다.
지난 5년에 대해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지 않나?
그렇다. 한나라당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우선 정권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해 굉장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야당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탄생하겠다고 해야 한다. 지난 5년간 여야가 국민을 힘들게 했다. 그런데 사죄하는 정치인이 없다. 단단히 잘못되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이회창 후보가 지지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수 세력 안에서도 한나라당의 국정 운영 기본 방향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2 정당이 되어 내년 총선에 참여하겠다는 과거 지향 세력, 이익 중심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인 이해관계 말고 분열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책적인 차이는 토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가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손을 잡아야 한다. 단일화를 해내지 못하면 그것이 보수의 수준이고 원칙과 법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의 수준이다. 큰 욕심을 지키고 작은 욕심을 버려야 큰 정치가 아닌가.
이번 대선은 유난히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고 인물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정당 정치가 실종되고 가치와 이념을 중시하는 정치가 해체되면 남는 것은 개인이다. 네거티브는 저질 정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거티브와 관련해 정치인들이야 원래 그렇다고 쳐도 언론이 왜 부화뇌동하는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펴면 함부로 기사화하지 말아야 한다. 근거 없는 얘기를 언론이 왜 실어주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화뇌동하거나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진보·보수 언론이 똑같다.
대선 이후 정치권 지형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는가?
가치와 비전·이념을 통해 재편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 있다. 사당, 네거티브 정당, 붕당, 개인 정당, 지역 정당으로 한없이 갈 수 없다. 국민의 힘이 양당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인재들이 나올 것이다. 신진보·신보수로 분화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할 것이다. 이 둘을 합친 세력이 선진화 세력이다. 이 선진화 세력이 커져야 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합리적인 세력이 주류를 형성할 것이다.
보수의 자기 혁신 노력은 계속되는가?
보수가 자기 혁신을 하겠다고 드러낸 깃발 가운데 하나가 뉴라이트이다. 보수가 한없이 밀릴 때 보수의 가치에도 좋은 것이 있다고 한 것은 굉장히 잘했다. 역사 발전에 기여했다. 이제 뉴라이트도 분화하고 있다. 일부는 정치권에 들어갔고 일부는 밖에 남았다. 나는 밖에 남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속적으로 사상·문화·생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들은 일류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 5년을 평가한다면?
우리 사회의 억눌려 있던 부분, 잊혀져 있던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역사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틀렸다. 문제 제기는 좋았는데 푸는 방식이 잘못되어 크게 볼 때 실패한 쪽이 많았다.
양극화가 왜 생겼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장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실패했다. 성장에서 실패하고 양극화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교육도 개혁해야 한다. 부자들만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했다. 지역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수도를 이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수단이 없다. 권력이 없고 돈이 없다. 중앙이 다 쥐고 있다. 현 정권은 문제를 푸는 방식을 20세기적 좌파, 구 진보의 방식으로 접근해 실패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기업 경영 관행에서 잘못된 것이 많았다고 본다. 삼성 스스로가 과거형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루어왔던 것이 터졌다. 선거 때라는 시점이 좋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삼성을 위해서도 고쳐야 한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는데 삼성이 변화하지 못했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타율적인 변화 요구가 생겨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마녀 사냥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명히 자기 변화를 요구해내고 못하는 부분은 정부나 법원이 고치면 된다. 선악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차분하게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치권도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역사 바로 잡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광복 후 우리 역사를 보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그러나 긴 눈으로 보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역사이다. 광복 후 신생 독립 국가 가운데 우리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가 없다. 잘못된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보아서 정의가 성공했기 때문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국가 품격의 기본은 국민 자부심이다. 역사를 자학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변호사나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로 위원회를 만들어 현대사를 정리하는 것보다는 역사학자들이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96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있을 때 정신문화연구원에 현대사연구소를 만들어 이런 작업을 하게 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났을 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조 조정되었다. 연구·조사를 축적했으면 축적된 부분이 많았을 텐데 아쉽다.
박이사장이 꿈꾸는 선진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경제적으로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이루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넘어 자유화 단계까지 가는 사회이다. 신뢰받고 따뜻한 공동체 사회, 국제적으로는 이웃 나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회이다. 지도층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는, 자기 헌신성·도덕성을 가질 때 선진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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