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바다를 죽였나
  • 류청로 (부경대학교 해양공학과 교수) ()
  • 승인 2007.12.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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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가 기름으로 오염되고 있다. 지난 12월7일부터 현재 약 11만t의 원유가 유출되어 양식장으로 갯벌로 해안선을 따라 길게 유착하고 있다. 줄잡아 20~30%의 기름은 연안, 갯벌, 양식장 등 환경 민감 지역에 유착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피해는 계산방식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으나, 수천억원대가 되리라는 예측을 쉽게 하게 된다. 갯벌에 기름 오염은 가장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게 된다.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라고. 왜 크레인선은 충분한 안전 조치, 그리고 주의를 무시했는가? 또 왜 유조선은 자항 능력이 없이 떠내려오는 대형 크레인선을 피하지 않았는가? 불가피한 급박성도 없었고, 해상 상태의 위험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조선 통항로의 관리 상태도 최악의 조건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외부에서 위험성을 인지했으나 주의를 환기시키는 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충돌 당사자 간의 사고 회피 노력은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크레인과 유조선은 왜 사전·사후 조치를 하지 않았나

첫째로 사고 직후 초동 대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의 원인이 된 충돌 과정은 정말로 어이가 없다. 그러나 사고 직후 대처라도 잘 했으면 이런 재앙은 막을 수 있었다. 배가 두 동강 난 대형 사고도 아니고, 대수심의 해저에 침몰하거나, 좌초된 선박의 유출 사고도 아니다. 이번 사고와 같은 조건에서 그 유출구(파공)를 틀어막는 기술은 선박이나 해상안전 시스템을 생각하는 기술자라면 적어도 수 시간, 또는 하루 이내에 모든 유출 원인을 차단할 수 있었어야 했다. 유조선측이나, 크레인선측이나, 그것을 인지한 관리 기관이나, 어느 한 쪽이라도 대응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더라면 문제를 이렇게 키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해양 대국, 최강 조선 대국, 해운 대국, 유류 수입 대국의 위상과 품위를 단 한 순간에 날려버린 처참한 사고였다. 종전의 어떤 기름 오염 사고에서도 볼 수 없는 단순 사고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적 요소가 거의 없었던 사고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라서 세계 유류 오염 사고의 가장 불명예스런 사례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고 후 며칠이나 지난 뒤지만 파공을 막아 유출을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출된 유류의 거동과 방제 과정에서 반성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지난 1995년 ‘씨프린스 사고’ 이후 줄기차게 외치면서 방제 장비, 방제 조직의 정비가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방제 체제 구축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경주해왔다. 특히 초기에는 방제 시스템 구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꽤 높았다. 예산의 지원도 있었다. 정부, 정유사 등의 관심도 커서 연구 개발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방제선 개발, 방제 장비, 소모적 방제 용품의 구입과 비축에 점차 회의적 시각을 보이기도 하고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로 지금 가동성이 좋은 유회수선의 활동상은 전혀 보이지 않고, 고속 해군함정이 기름 막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과 그리고 유화제를 쏘아대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촌극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기름과의 전투 현장 모습에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이왕 벌어진 사고이니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안이나 갯벌에 표착한 기름, 그리고 모래 속에, 바위틈에, 자갈 속에 묻힌 기름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걷어올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열심히 동원 체제를 가동해 체계적으로 수거하고 청소하고 처리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이것을 원시적이라고 탓하거나 질책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과 자원 봉사자가 일일이 바다를 청소하고 바위를 닦아가면서 병든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 간호사로, 보호자로서 바다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 갯벌, 해안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 복원하는 일에 전문가, 시민, 어업인, 정부가 모두 달려들어야 한다.
해상을 표류하는 기름을 유회수선, 유회수 장비를 총동원해 수거할 수 있는 한 수거해야 한다. 그것만이 연안으로 표착할 수 있는 유류의 오염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안으로 그리고 양식장으로 기름이 확산되거나 표착하지 않도록 오일펜스의 활용 등 물리적 수단을 다하여야 한다. 넓은 바다에 떠다니며 자연적으로 정화되는 것이 연안에 표착하는 것보다는 환경적 피해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1997년 1월 일본 연안의 대형 중유 오염 사고(나호트카호 사고)를 떠올리게 된다. 러시아 선박이 중유를 싣고 동해를 통해 러시아로 가던 중 큰 파도에 휩쓸려 배가 두 동강이 나 선미 부분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고, 선수 부분은 연안에 표착하면서 중유가 대량 유출되어 후쿠이 현과 이시카와 현 해안을 대대적으로 파괴한 황당한 사고였다. 당시 이런 대형 사고에 대비한 시스템이 없었던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 한 사람의 공무원이 고집스럽게 유화제나 환경 회복을 위한 미생물 제제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오직 물리적 수거와 자연 회복의 원칙을 세워 방제 및 환경 회복 과정을 관리했다. 그는 후일 환경론자들의 영웅이 되었다. 일부 특징적 오염 해안(바위 해안, 자갈 해안, 모래사장 해안 등)은 차후 환경영향 평가 및 관리, 회복 과정에 관한 추적 연구 조사를 위한 현장으로 보존하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언론이나 감독기관 역시 책임을 묻는 데만 급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방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조직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으로 공조하는 분위기를 창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조선 원유 유출구 차단 등 시스템 전체에 문제 드러내

셋째, 이번 태안반도 기름 오염 사고를 재앙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후일을 위한 소중한 교훈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10여 년 전의 씨프린스호 사건의 교훈에 대한 우리의 소홀함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종종 한 시스템을 만들면 다 완성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 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바다는 그런 오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서 실증적으로 알 수 있듯이 사고 선박의 유출구를 차단하는 일,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일, 유회수 장비 및 시스템의 가동, 갯벌과 해안에 유착한 원유의 수거 시스템, 연안 해역의 각종 양식 시설 등에 유착한 기름의 수거 및 처리 시스템, 그리고 오염된 해안의 회복 및 재생 시스템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진행시켜나갈 기술도 시스템도 전무했다고 악평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우리 정부는 해양경찰청을 중심으로 환경부·해양수산부의 각종 관련 국책 과제, 연구 과제, 정책 사업으로 방제 장비, 방제 선박, 방제 용품의 개발과 비축은 물론 기초적인 방제 시스템을 미국식 모델에 근거해 구축해 왔다. 줄잡아 수백억원 내지 천억원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정부는 “부족하지만 잘 준비하고 있다. 다만 투자가 조금 지연되어 비축 장비가 완전히 확보되고 있지 못한 정도의 문제만 보완하면 된다”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하고 있다. 이번 사고의 피해를 생각하면, 더 투자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염 사고, 재해 대책 등에 대한 기술 개발, 예산 투자에 대한 우리의 시행착오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어버렸다.
이제라도 씨프린스호 이후의 체제 구축에 자만하지 말고 이번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얻은 답답함과 경험적 지혜를 새로 만드는 시스템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서해안의 갯벌, 양식 시설에 뒤엉킨 기름을 수거하는 장치, 이번같이 황당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유출구를 조기에 차단하는 기술,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해양 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더욱 다양한 유류의 거동 예측 기술, 유류 회수 장치 및 첨단의 대형 유회수 및 처리 선박 등은 현재의 상태에서 만족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더 개선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름의 최종 수거와 청소에 필수적인 기름 흡착포, 개인 방제 장비 등 필수 도구는 전국적으로 분산 배치하더라도,  위급시에 기동성을 가지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이번 사고 규모의 2배 이상의 사고에도 대비할 수 있는 물량을 안정적으로 비치해야  할 것이다. 
언론의 과대 포장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에만 집착하는 보도 관행에도 문제는 있다. 현재 바다에 떠 있는 오일볼이 내년 봄에 떠올라 폭발하면 만 배의 기름이 확산된다는 등등의 보도를 그럴듯하게 영상화해서 보도하는 과대 포장과 공포심 조성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정부나 국가 연구기관에서는 우리나라의 해양 유류오염 방제 시스템이 지난 시프린스호 사건 이후 최고 수준으로 갖추어져 왔고, 외국에 충분히 수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만에 불과했음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아직도 서해안에서 기름과의 전투는 진행 중이지만, 냉정하게 우리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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