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가 쓴 서울 일기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 승인 2007.12.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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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1년 동안 체험한 다큐멘터리…우리가 우리를 보다

구한말, 택시 운전수는 가장 잘 나가던 직업이었다. 차가 귀했던 시절에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직업이라니 다들 선망의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았고 기생들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손님도 부호이거나 고관대작들이었다. 사회적 지위로 보아도 택시 운전수는 상류층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택시 운전수, 아니 택시 기사들의 처지는 하류 인생 중에서도 막장 인생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는 광부로 일하는 것이 인생 막장으로 통했으나 지금은 그것이 택시 기사가 되었다. 그만큼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 된 것이다.
<택시 블루스>는 독립 영화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속한다. 최하동하 감독은 택시 기사로 일하다 어느 날 문득 승객들을 소재로 한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적고 있다. 서울 바닥에 돌아다니는 7만대의 택시와 그 택시를 하루 12시간씩 몰며 10만원가량의 사납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기사와 평균 25명씩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모습이 날것으로 다가온다.

 

택시 기사는 승객을 태우며 관객이 된다

승객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무심코 타는 택시에서 우리들은 아무렇게나 떠들어댄다. 핸들을 잡은 기사는 싫든 좋든 그들이 내뱉는 말을 들어야 한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손님을 깨워 돈을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택시 기사라면 무조건 경멸하는 손님도 목적지에 데려다줘야 한다. 택시 기사가 벌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사납금 액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골라 태워야 하고 동료 기사가 말하는 이른바 자신만의 노하우는 믿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노하우는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된다.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못 벌면 남이 번다.
택시 안에서 12시간의 노동은 사람을 만나는 노동이다. 돈을 지불하기 전까지 승객들은 더러 희망을 말하고 더러 절망을 말한다. 그동안 기사는 관객이 된다. <택시 블루스>는 98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우리를 보여준다. 택시 안에 5대의 광각 카메라를 설치해서 영화는 마치 관객이 택시를 타고 가는 느낌을 준다. 시종일관 들리는 라디오 소리 역시 승차감을 실감나게 한다. 최하동하 감독은 무엇을 주장하지도 않고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 듯하다. 있는 그대로 실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기 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서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독립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이 깨진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잘 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다는 감독이 헛웃음을 웃었다. 잘못해서 관객이 많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보였다. 12월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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